북핵 불능화 단계에 숨겨진 지뢰들

제5차 북핵 6자회담 3단계 회의를 통해 마련된 ‘2·13 북핵 합의’가 미북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1차 회의로 이어지면서 순항하고 있다.

6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미북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1차 회의는 2·13합의 부대행사처럼 양국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협상 시작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우호적 분위기는 초기단계 이행에 대한 양국의 합의가 전제돼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60일 초기단계까지는 북한의 합의 이행이 가능 하겠지만, 그 이후 조치는 합의가 불투명해 산 넘어 산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2·13 합의에 따라 영변 핵시설 등에 폐쇄(shutdown)조치까지는 별다른 파열음 없이 이행되겠지만, 다음 단계인 불능화(disablement) 단계에서 첫번째 시련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미북, 관계정상화 첫 발=미북 관계정상화 실무회담 미측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양측 모두 2·13 합의의 초기단계 이행과 모든 목표의 완수에 대해 낙관적인 기대를 갖게 됐다”고 자평했다.

북측 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건설적이고 진지했다”고 밝힐 만큼 이번 실무 회담은 서로의 기대 속에 막을 내리게 됐다.

이번 회담에서 두 나라는 주요 관심사였던 외교 정상화를 포함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대적성국 교역법 종료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한반도 평화협정 문제까지 다양하고 포괄적인 논의가 전개됐다.

양국이 4년 만에 공식적인 자리에 마주앉아 국교 정상화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됐다.

하지만 낙관적 분위기 속에 종료된 1차 실무회담과는 달리 향후 실무회담의 핵심의제인 양국간 관계 정상화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문제가 그리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미국은 비핵화를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북한은 관계개선이 먼저라고 어깃장을 부렸다. 이는 단순히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와 관련 있다.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명시하지 않는 한 관계개선은 말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관련, 북한은 당장 4월 발표 예정인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지원국에서 삭제되면 장기 저리 국제차관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기수출금지 대상에서도 빠지게 돼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미국이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있는 북한 핵물질에 대한 제3국 또는 테러조직으로의 이전 가능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명단 삭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납치자 문제도 걸림돌이다.

이러한 양국의 인식 차이는 2·13 합의 이행을 확인하고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열릴 예정인 6자 장관급회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불능화 단계 숨겨진 지뢰들= 북한이 2·13 합의에 따라 이행해야 할 영변 원자로 등에 대한 폐쇄 조치가 정상적으로 마무리 된다면 2단계인 ‘불능화’ 조치로 넘어가게 된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초기단계 조치가 큰 무리없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불능화 단계로 넘어가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북한의 핵폐기 의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불능화 단계에서 북한이 이행해야 할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가 얼마나 성실하게 이행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북 실무회담에서 북한이 먼저 해결의 필요성을 밝혔다는 HEU 문제를 비롯해 이미 만들어졌거나 추출된 핵무기와 플루토늄에 대한 신고가 여기에 포함된다.

북한은 HEU 핵프로그램 의혹을 불능화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해소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통보했다. 뉴욕 회담에서 양측이 HEU 의혹 해소를 위해 전문가 수준의 협의를 갖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그러나 북한은 HEU 문제와 관련, 원심분리기 등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그를 이용한 핵개발에 착수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치적 절충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의외의 기싸움이 계속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IAEA 사찰단의 사찰권한과 범위를 놓고도 한차례 공방이 예상돼 있다.

북한은 모든 필요한 감시 및 검증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IAEA요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2·13 합의에 명시됐지만 IAEA사찰단이 실제로 북한 안에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지는 합의문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추후 북한과 IAEA가 협의해야할 상황이다.

때문에 북한이 IAEA 사찰단에 어느 정도 권한을 부여하느냐는 북한이 핵폐기에 얼마나 적극성을 갖고 있는지, 또 미국 등 6자회담 나머지 참가국들의 상응조치 공약을 신뢰하는지 여부를 가늠할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경수로 문제도 불능화 단계에서 돌출될 수 있는 문제다. 북한은 원자로를 폐쇄하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동력장치를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2·13 합의에선 경수로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김 부상이 지난 4일 찰스 카트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전 사무총장을 만나 경수로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경수로 제공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2·13 합의 3단계로 넘어가는 폐기 단계 이전에 경수로 제공에 대한 확약 없이 3단계(핵폐기)로의 진입은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결국 ‘경수로 카드’를 손에 쥐고 쥐락펴락 하며 속도조절에 나설 가능성은 언제고 노출돼 있는 형국이다. 때문에 북핵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선 42.195km 풀코스를 달리는 마라토너가 난코스(불능화 단계)에서의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듯 완주(핵폐기)를 위해선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