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당국이 외무성 내 대미 전략 조직을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대비하기 위해 적극적인 분석에 나선 것으로 평가된다.
12일 데일리NK 내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외무성 대미협상국 산하에 60여 명 규모의 새로운 조직을 신설했다.
신설된 조직의 정식 명칭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미협상국 산하의 하나의 과(課)로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미국 언론을 모니터하고 이를 토대로 대응 전략을 짜는 것이며 실시간 언론 분석을 위해 일부 인원은 미국 업무 시간에 맞춰 오후 5시에 출근해 새벽 1시에서 2시경 퇴근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언론을 통해 백악관, 국무부 등 정부 주요 기관의 대북 관련 동향과 미 의회와 정당의 움직임, 미국 내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까지 취합·분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이든 정부의 대북 기조에 대한 미국의 여론 동향도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신설 조직을 포함해 외무성 대미협상국의 실질적인 총괄자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아닌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당국은 최 제1부상의 과거 대미 협상 경험과 연륜을 인정하지만 대미 전략을 직접 구상하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대미 정책과 관련한 실질적인 지시는 김 부부장이 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부부장이 실제로 대남·대미 정책을 포괄하는 대외정책을 지휘하고 있고 모든 대외 정보와 전략이 김 부부장에게 직접 보고된다는 전언이다.
북한, 바이든 대북 정책 일부 긍정적 평가…南 배제하고 직접 美와 협상 계획
이런 가운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접촉이나 대화에도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던 북한이 새로운 미국 대응 조직까지 신설하면서 적극적인 대미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을 일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초 북한 당국은 바이든 정부의 새 대북정책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일괄타결(grand bargain)’도 전략적 인내에도 의존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을 긍정적인 신호로 인식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싱가포르 합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새 대북정책에도 싱가포르 선언 계승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 연설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기본 목표로 싱가포르 선언의 토대 위에서 외교를 통해 유연하고 점진적·실용적 접근으로 풀어나가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환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북한은 자신들이 협상에 나갈 수 있도록 미국이 선(先) 행동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적어도 인권 문제로 북한을 압박하거나 당국의 권위를 훼손하는 발언이나 행동이 있다면 협상에 나설 수 없다는 점을 미국에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는 당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 2일 대미 비난 메시지를 연달아 발신했다.
다만 이 같은 담화는 미국과의 대화에서 기선을 잡고, 미국이 인권 문제 또는 제재와 같은 압박 카드를 사용하면 대화에 응할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기 위한 것이지 미국의 대북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북한 당국이 새로운 대미 분석 및 대응 조직을 신설한 데에는 북미 간 협상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을 완전 배제하고 미국의 의도를 직접 파악하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고위 소식통은 “우(위·당국)에서는 남조선(한국)이 북남 수뇌부 간 합의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고 본다”며 “남조선은 믿을 만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조미(북미) 간 협상과 관련해서 어떠한 역할도 맡을 자격이 없다는 평가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