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제와 오늘] 건군절 변천사와 김정은의 고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1주년 건군절(8일)을 맞아 인민무력성을 방문하고 경축공연에도 참가했다. 지난해까지 건군절 때는 열병식, 보고대회 등을 진행했는데, 이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날은 북한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선 노동당 창건일(10·10)이나 공화국 창건일(9·9)과 달리 2월 8일은 실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점이다. 1945년 10월 10일에 조선노동당이 창건되지 않았고, 1948년 9월 9일에도 그 어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포’도 없었지만, 1948년 2월 8일에 실제 조선인민군이 창건되었다.

당시 소련은 북한 무력을 1945년에 건설해 왔다. 또한 1948년 볼셰비키 당 정치국의 승인을 받아 북한 준군사 조직들은 정식 군대인 조선인민군에 재편성되었고, 1948년 2월 8일 바로 첫 번째 열병식이 열렸다.

북한 열병식 태극기
북한 열병식(1948년 2월)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 모습. /사진=북조선 중앙텔레비전(現 조선중앙TV) 영상 캡처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열병식에 태극기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당시엔 인민군 휘장도, 병사의 모자표에도 태극 무늬를 볼 수 있었다. 1959년경부터 북한 열병식 사진에서 태극기가 사라진다.

또한 중국이나 러시아 지도자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점도 눈에 띈다. 1940년대에 김일성 옆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1951년부터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화도 나오게 되었다. 이는 스탈린의 사망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상황이 달라진다. 바로 김일성의 초상화가 단독으로 나오게 됐다.

건군절 김일성 소련 중국 지도자 초상화
건군절 행사 기념사진에 김일성뿐만 아니라 소련(左)과 중국(右)의 지도자 초상화가 걸려있다. /사진=조선인민군 신문 캡처

북한에서 사상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이었지만, 실제 2.8절은 군사(軍史)엔 영향을 거의 안 미쳤다. 유일하게 영향을 미쳤던 사건은 1953년 2월 8일 직전에 김일성에게 공화국 원수, 최용건 민족보위상에게 공화국 차수 칭호를 수여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2.8절에 김일성도 최용건도 군복 없이 등장했어야 했는데 좀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던 중 1978년 이 기념일은 느닷없이 없어졌다. 1978년 2월 8일 로동신문의 첫 페이지에 게재한 사설은 30년 전에 김일성이 군대를 정규군으로 ‘강화발전’했다면서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에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한 날이 실제 건군절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조선인민혁명군’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조직이었지만, 이 ‘군대’는 존재했고 일본제국과 싸워 이겼다는 설정은 북한 사상 핵심 주장 중에 하나가 돼 버렸다.

그래서 1978년 4월 25일 북한 당국은 조선인민군 창건 ‘제46째 돌’을 기념하는 행사를 했고, 1979년부터 2월 8일은 기념일 자격을 잃었다.

재미있게도, 4월 25일은 새로운 기념일은 아니었다. 1962년 북한에선 ‘항일유격대 창건일’을 기념했다.

그러부터 37년 후 2015년 2월 8일에 노동신문이 갑자기 2월 8일이 중요한 날인 것처럼 보도했다. 1978년 2월 8일과 나온 사설과 어느 정도 비슷한 기사였는데,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조선인민군으로 ‘재편성’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2016년 2월에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해서 2.8절에 대한 아무 보도가 없었다. 2017년에 2015년처럼 기념 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북한 당국은 인민군 창건일을 2월 8일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조선인민혁명군’ 허위를 시인하는 건 아니었다. 창군이 아니라 군대의 재편성한 날이라고 주장했고, 4월 25일도 원래처럼 ‘조선인민혁명군’의 창건일로 기념하고 있다.

필자는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후 고위 간부 모임을 소집해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나라를 발전시킬 만한 조치는 무엇이 있나’를 물어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다. 4.25절을 2.8절로 변경한 것도 이와 같은 생각에서 이뤄진 건 아닐까. 북한이 주장해온 가짜 역사관을 부인하지도 않고, 실제 역사와 더 가까운 날을 기념하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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