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공화당 의원들이 종전선언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서한을 작성하면서 우리 정부의 종전선언 구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북한 당국이 간부들을 대상으로 종전선언에 대한 강연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당 간부들에게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8일 데일리NK 내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4일 북한 당국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간부들을 대상으로 종전선언과 관련한 정치 강연회를 진행했다.
해당 강연회는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가 주최했으며, 간부들에게 배포한 4쪽짜리 강연자료도 선전선동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연자료에는 ‘전쟁이 없는 나라를 후대에게 넘겨주려는 것이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유훈(遺訓)이었다’며 ‘종전선언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공식화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북한 당국은 해당 강연을 통해 ‘종전선언에 대한 그릇된 관점을 가진 일부 일군(일꾼)들이 있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우리 영토가 북과 남으로 영구 분열되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언급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러한 설명이 포함된 건 북한의 간부들 중 일부는 종전선언이 남과 북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곧 영원한 분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종전선언을 설명하며 선대(先代)의 유훈을 언급하고 이와 관련한 오해를 바로 잡은 것은 당 간부들에게 종전선언의 당위성을 피력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당국은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전쟁이 끝난 것이기 때문에 남조선(남한)에 미군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이 종전선언을 고집하는 속내를 당 간부들에게 풀어낸 셈이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종전선언 이후 북한이 유엔군 해산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후 제기된 야당의 비판에 대해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것이고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라며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선전선동부가 주최한 당 간부 강연 내용을 토대로 볼 때 북한 당국은 종전선언 이후 비핵화 협상에 나서기보다는 대조선(북한) 적대시정책 철회와 주한미군 철수, 우리 군의 군비 축소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5차 회의에서 “불신과 대결의 불씨로 되는 요인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종전을 선언한다 해도 적대적 행위들이 계속될 것”이라며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상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김 위원장이 종전선언을 언급한 것에 대해 “북한의 고위급이 종전선언에 대한 관심을 대외적으로 표명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고 평가했지만 북한이 종전선언에 앞서 대북제재, 주한미군 철수 등을 조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외무성을 비롯해 북한 내각 기관에서는 김정은 정권의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전략 구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위대한 혁명 령도 10년의 가장 큰 업적’을 김 위원장에게 선물로 안겨줘야 한다는 기치 아래 각 기관이 김 위원장 업적 세우기에 돌입했다는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소식통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지고 선전에 나서는 게 앞으로의 중요한 과업”이라며 “종전선언을 외교 성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현재 내부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국제적 분위기에 따라 전략은 수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