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거부와 희망고문’ 北 종전선언 반응이 갖는 의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1일(미국 현지시각) 제76차 유엔총회에 참석하여 기조연설을 통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하면서 “종전선언이야 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이미 2018년과 2020년 유엔총회 연설을 비롯해 주요 계기마다 수시로 강조해 오고 있는 사안이다.

이번 제의는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주한미군 철수 요구, 전략미사일 시험 발사 등의 긴장국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복원·발전시키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상생과 협력의 한반도를 위해 남은 임기 동안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2021. 9.21. 문재인 대통령 유엔총회 기조연설), 나는 결국은 북한도 대화와 외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북한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믿습니다(2021.9.23. 방미귀국길 기내 기자회견).

이에 대해 북한은 9월 24일 리태성 외무성 부상과 김여정 부부장이 7시간여의 간격을 두고 다소 상충되는 반응을 보여 주목된다.

리태성 외무성 부상 담화 : 거부

리태성은 24일 담화를 통해 종전선언 추진은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하였다.

종전선언이 현시점에서 조선반도 정세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미국의 적대시정책을 은페(은폐)하기 위한 연막으로 잘못 리용(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종전선언이 그 누구에게 주는 《선사품》이 아니며 정세변화에 따라 순간에 휴지장으로 변할 수 있다는 립장(입장)을 공식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이중기준과 적대시정책철회는 조선반도 정세안정과 평화보장에서 최우선적인 순위에 있다(2021.9.24.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일개 부상(차관)을 내세워 대통령의 제안을 일거에 거부하거나 망말을 한 것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조금 차원이 다르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남은 임기 동안 남북관계 개선에 매진하겠다고 하면서 종전선언을 회심의 카드로 재차 제안한 데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손뼉을 마주쳐 주기는커녕, 원론적인 소리만 했는 데다가(외교에서는 이런 건 거부를 의미한다고 한다), 총회가 열린 뉴욕의 한복판 타임스퀘어 전광판에는 “종전선언에 속지 마세요”라는 광고판이 내걸리는 등 우군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리태성의 담화는 문 대통령의 제안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다.

문 대통령은 아팠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말렸는데 첫사랑에 눈먼 청년처럼 고집스럽게 흘러간 레퍼토리를 다시 들고나간 게 본인이니 자업자득이라고 할수 있다.

지난 2019년 3월 2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할 때 모습. /사진=연합

김여정 부부장 담화 : 희망고문

그러나 몇시간 후에 작은 반전이 일어났다. 김정은의 복심인 김여정이 리태성에 이어 후속담화를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흥미롭다”고 평가하면서 “적대정책·이중 기준 철회”의 전제조건이 실현되면 회담 재개가 가능함을 시사했다.

“종전선언은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지금 때가 적절한지 그리고 모든 조건이 이런 론의를 해보는데 만족되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것이다…..종전이 선언되자면 쌍방간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지독한 적대시정책,불공평한 이중기준부터 먼저 철회되여야 한다….이러한 선결조건이 마련되여야 서로 마주앉아 의의있는 종전도 선언할수 있을것이다….우리는 남조선이 때없이 우리를 자극하고 이중자대를 가지고 억지를 부리며 사사건건 걸고들면서 트집을 잡던 과거를 멀리하고 앞으로의 언동에서 매사 숙고하며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얼마든지 북남사이에 다시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며 관계회복과 발전전망에 대한 건설적인 론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2021.9.24. 조선중앙통신).

리태성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꿈깨라고 일갈한 후 김여정이 대화의 희망을 살리는 발언을 내놓은 것은 짜고 치는 고스톱, 얼르고 달래는 전술이다. 남남갈등ㆍ한미이간을 노린 전형적인 대남통일전선 전술의 일환이다.

즉 문재인 정부에게 “미국과 떨어져 북한 편에 확실히 서라”, 미국에게는 “적대정책 ㆍ이중기준을 철회하고 제재를 풀어라”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인데. 이같은 움직임은 금명간 대화 재개 가능을 시사한다기보다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의 명분을 확보하면서 ▲한국사회 내 감상적 평화 논의·투쟁에 불을 지피고 ▲언젠가 마주 앉을 회담테이블에서 높은 위치를 점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마디로 단기적으로는 ‘문정부 길들이기·바이든 압박’을 통한 핵·경제실리 확보의 2마리 토끼 잡기, 장기적으로는 ‘전 한반도 공산화 통일’ 기반 확보를 노린 대남통일전선 전술의 전형이라고 평가한다.

공동선언문 서명식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결어 : 긴 안목과 냉철한 전략전술로 대처해야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행태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 소망적 사고에 입각해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김정은과 북한의 대남전략전술을 정확히 판단·대처해 나가야 한다.

특히 과거 김정일 시대에 재미 본 당근 제공과 밀약은 김정은에겐 더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여전히 옛날 레퍼토리에 매달리면서 대통령과 국민들을 희망고문시켜서는 안된다. 그럴 경우 국격과 안보가 심각히 흔들린다.

김정은은 근본문제를 정조준하며 고도의 전략전술적 포석을 놓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으로 얻을 수 있는 대화 재개, 인도적 지원, 남남갈등 유도 등은 작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얻을수 있다. 아니 더 크게 우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작은 실리보다는 당분간은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미국이 더 큰 양보(대북제재 해제 등)를 할 때까지 버텨 나가겠다는 속셈이다. 핵능력을 고도화하면서 버티면 내년에 중요한 선거가 있는 한국(3월 대통령 선거)과 미국(11월 중간선거)이 급해질 거라는 판단이다. 가깝게는 하반기부터 베이징 동계올림픽 국면이 전개되기 시작하고, 대형 이벤트인 교황 방북도 있을 수 있다.

김정은의 속으로 들어가 보면, “지금은 자칫 소탐대실할 수 있으니 어렵더라도 인내하며 자기 길(정면돌파전2.0: 김정은식 인간-사회개조 실험)을 계속 간다.

그러면 ‘핵-미사일을 보유한 사회주의 강국 건설’과 ‘전 한반도 공산화 실현’이라는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추론된다.

이러는 동안에 국제사회에 북한의 핵개발 정당성을 부각하고, 한국사회 내부에 남남갈등도 부추킬 수 있는 부수효과도 도모할 수 있다.

이 같은 목표(대전략)를 달성한 이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활용해 유엔사해체·주한미군 철수 등 북한이 말하는 근본문제 해결 즉 안보대 안보 카드, 대대적인 통일전선전술 책동에로 활용해 나가겠다는 속셈이 보인다.

이는 북한이 종전문제를 “아직은 시기상조, 언젠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리태성), “선결조선이 충족되면 건설적인 론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김여정)며 여지를 계속 남겨둔 데서 알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때이다. 종전선언은 남북관계가 대결에서 공존으로 가는 상징적 사건, 평화통일의 문을 여는 좋은 점도 있지만, 자칫 북한에게 대남통일전선전술 전개를 위한 고속도로를 열어줄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모든 건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은 튼튼한 안보태세 구축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하에 북한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조치를 해 나갈 때이다.

종전선언은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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