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한미동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북한 내부 간부들은 주한미군 철수가 종전선언의 후속절차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종전선언을 두고 남북의 동상이몽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3일 3박 5일의 미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공군1호기 내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종전선언은 비핵화 협상이나 평화협상에 들어가는 이른바 입구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 주둔은 한국과 미국 양국 간에 합의해서 가는 것이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북미 간 수교가 이뤄지고 난 이후에도 한국과 미국이 필요하면 미국이 한국에 주둔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문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또다시 제안한 후 언론과 야당의 반응이 비판적인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한 내부 고위 간부들의 생각은 문 대통령의 언급과 완전히 배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은 2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남조선(한국)도 자기 군대가 있는데 종전이 이뤄지면 다른 나라 군대가 남아있을 필요가 있겠냐”고 주장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종전선언은 남북을 각각 독립된 나라로 인정하는 것이고,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군 철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북한 내부 간부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특히 소식통은 “종전선언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는 자위적 핵 방위력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개발은 종전선언이 이뤄진다해도 이것이 곧 비핵화 절차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은 지난 1월 제8차 노동당 당대회에서도 “(핵무력은) 핵전쟁 억제력과 자위적 국방력의 강화를 위한 투쟁”이라고 주장했으며 “우리 공화국이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하여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람용(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 당국은 간부들의 사상교육을 위해 배포하는 간부 신문을 통해 ‘핵은 군사적 위협 속에서도 주동성을 유지하게 하는 자위력’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미군 철수의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간부들은 ‘종전’과 비핵화를 연계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북한 간부들은 종전선언의 선결 조치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후속 조치로는 대북제재 해제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고위 소식통은 “종전선언은 곧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는 뜻인데, 남조선(한국)만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북한 내부에선 기본적으로 종전선언은 북미가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며,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제재 철회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남측이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얼마든지 건설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며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 부부장은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조선반도(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때가 적절한지 그리고 모든 조건이 이런 론의(논의)를 해보는데 만족되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며 “종전이 선언되자면 쌍방간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지독한 적대시 정책, 불공평한 이중기준부터 먼저 철회되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이날 오전 리태성 외무성 부상이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는 비판 담화를 발표한 지 7시간여 만에 나온 것으로 대화 재개를 원하는 북한의 속심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적대시 정책과 불공평한 이중 기준 철회’라는 조건을 내건 만큼 앞으로 ‘대화도 대결도 가능하다’는 기존입장을 되풀이 하면서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명분쌓기를 지속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