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중국속국론’은 허상이다

▲ 중국 상해 <사진:Jacek Piwowarczyk>

김정일 체제 붕괴 이후 북한의 ‘중국속국화’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근거의 대략을 [기획진단 ①]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이 비교적 복잡하므로 몇 가지 주장을 덧붙여 그 근거를 뒷받침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을 친중적인 방향으로 내모는 동력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이나 남한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공포감이다. 노동당 간부, 군 간부뿐 아니라 하급 국가보위부원, 하급 안전원, 심지어 하급 군인들까지도 미국이나 남한이 지배적인 지위에 섰을 때 자신들이 처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김정일이 죽거나 실권한 상태에서 북한 내부의 역량만으로 더 이상 체제보전이 어렵다고 할 때 북한의 지배계급이 중국에 의존하려고 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은 허상에 기초한 것이다. 미국은 객관적인 제3자이고 남한도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객관적인 제3자다.

미국이나 남한이 북한에 들어가 광범위한 처벌을 할 의사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거의 없다. 설사 미국과 남한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북한 주민의 분노를 달래는 등의 정치적 필요를 위해 극소수 고위층과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극소수 악독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北 붕괴후 ‘군대파견권’은 복잡한 문제

둘째, 북한체제가 붕괴하거나 내전이 일어났을 때, 어느 나라가 합법적인 군대 파견권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은 한국 영토이기 때문에 한국군을 파견하는 것이 국내법상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국내법일 뿐이다. 국제적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비추어 보면 한국군은 ‘국내 반란군’에 해당한다. ‘국내 반란군’이 국내에서 이동하고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국 헌법보다는 조금 더 고려대상이 될 수 있을 지 모르나,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북한 국내법일 뿐이다.

그러나 중국은 좀 다르다. 중국은 ‘조중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에 의해 북한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이 비교적 자유롭다. 과거 미주조약에 기초해서 미국이 중남미 국가의 국내문제에 군대를 파견하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셋째, 미국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 북한을 공격했을 때 UN이 국제법적 정당성을 마련해줄 수도 있겠지만 현재 UN의 분위기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군이 혼란상태에 빠진 북한에 군대를 파견할 경우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미군이 북한의 혼란상태에 군대를 파견하는 명분은 한국의 동맹국이라는 것, 북한과 정전상태에 있는 당사자라는 것, 세계경찰이라는 지위, 북한내부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인도적 파견 등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확실한 명분은 하나도 없다.

미국이 한국의 동맹국으로서 북한을 자신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과 함께 북한에 개입한다는 명분은 국제적으로 충분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어떤 태도로 나올 지도 불확실하다.

북한과 정전협정을 맺은 당사자는 미군이 아니라 UN군이다.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의 지위를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도 많지 않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개입하는 것도 보통 인명피해가 매우 커진 이후에나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것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北 주민 민족주의 강해 ‘속국’ 어려워

넷째, 북한 주민은 민족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 1945년 일제 패망 직후에 크게 고양되었던 반일 민족주의 성향을 북한은 계속 반미 민족주의로 이어갔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극대화되었다. 북한주민의 강한 민족주의는 중국 속국화의 결정적인 방어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더구나 남한의 민족주의도 북한의 속국화를 막는 중요한 방어요소다.

북한이 중국의 영향 하에 있는, 그것도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정부가 들어서 있는 조건에서도 남한의 영화, 드라마, 서적, 음악 등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문화 콘텐츠에 묻어서 들어오는 남한발 민족주의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 수없이 많은 남한의 자발적 민족주의 전사들이 북한에 민족주의를 수출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과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허약한 권위, 허약한 정치체질, 허약한 정치기반을 가진 북한의 중국 예속정권이 북한 내부의 자생적 민족주의와 남한으로부터 음양으로 끊임없이 공급되는 민족주의를 감당하고 견딜 수 있는 가능성은 낮다.

다섯째, 중국의 경우 잠재적 패권 지향성이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주변국가들에 비해 강하다고도 약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세계적인 강대국의 대열에 들어섰으며 날로 강대해지고 있다. 따라서 강대국의 윤리가 요구되고 있는데, 중국 인민들과 정치인들은 이런 조건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딜레마다.

이 때문에 중국인은 스스로에 대한 태도에서 이중적이다. 세계가 중국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이중적이다. 중국인은 스스로 가난하고 약한 나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중국을 강대국으로 대접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세계는 중국이 강대국으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중국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겁내고 꺼려한다.

‘중국 패권론’은 검증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패권을 추구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을 나치 시대의 독일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논거들에 기초하고 있다.

중국이 급속히 경제, 군사적 힘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과 과거 중국이 주변국가들과 불필요한 긴장과 충돌이 있었던 점, 중국의 영토집착이 강하다는 점, 중국이 일당독재 체제라는 점 등이 그 대표적 논거들이다.

중국의 경제력이 급속히 발전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고 그 발전된 경제력을 기초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도 크게 나무라기는 어렵다.

중국이 30~40년 전에 주변국가들과 충돌을 일으킨 원인도 객관적으로 검토해봐야겠지만, 그때 충돌을 일으켰다고 해서 지난 25년 동안 평화롭게 지내온 나라를 호전적이라고 비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시아의 모든 나라, 아니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영토적 집착이 아주 강한데 중국의 영토적 집착에 대해서만 나무라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독도, 조어도, 남사군도, 일본 북방 4개섬 등 적지 않은 지역의 영토 문제를 놓고 중국뿐 아니라 일본, 한국, 베트남, 필리핀 등 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중국의 영토집착만 문제 삼는 것은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을 ‘好戰 국가’로 보기 어렵다

중국이 일당독재라는 측면에서 나치 시대와 비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전혀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자체가 계급투쟁과 세계혁명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호전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일반 국민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마음 속에는 계급투쟁이나 세계혁명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졌다. 국가의 부강이나 개인의 영달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중국은 개개인의 정치적 행동양식이 아직 충분히 문명화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부의 행동양식도 세계적인 강대국 치고는 아직은 거칠다. 이런 측면에서 비판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일당독재라서 호전적이고 침략적일 것이라는 것은 지나친 논리비약이다.

중국의 국가운영의 방향이 이웃나라들과 다르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주변 국가들의 이웃 나라에 대한 인식과 태도 역시 그 경제발전 수준에 비춰봤을 때 매우 협량(狹量)한 조건에서 중국에 대해서만 과도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끝)

김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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