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김일성·김정일주의, 주체사상만 남아 있다. 우리는 주체사상에 대해 “김일성의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 3가지 오해는 있다. 첫째, 주체사상은 사상이 아니다. 둘째,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셋째, 북한에선 주체사상을 배울 수도 없다.
그럼 주체사상은 어떤 내용인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북한은 주체 사상을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으로 찬양하지만, 주체사상 내용을 설명하라면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한 문장밖에 설명을 안 한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주체사상의 전체 “내용”은 한 문장뿐이라는 말인가.
이 때문에 북한 선전원들도 주체사상에 대해 긴 문서를 싸야 할 때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이라는 문장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주체사상을 설명하는 북한 텍스트는 어색해 보인다:
주체사상은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이다. 다시 말하여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자신에게 있다는 사상이다. 사람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 이것이 주체사상의 진수이며 여기에 주체사상의 혁명적 본질이 있다. 주체사상의 주요 구성부분을 이루는 것은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주체사상의 사회력사 원리, 주체사상의 지도적 원칙이다. 주체사상은 무엇보다도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사람중심의 철학적세계관을 밝혀 준다. 주체사상은 세계의 시원문제가 옳바로 해명된 조건에서 사람을 위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를 밝혔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력사상 처음으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옳바로 밝힌 가장 과학적인 철학적 원리이다.(“주체사상”, 정치 사전, 평양:과학, 백과사전출판사, 1985)
또한, 소련 사료를 살펴 보면 “주체 사상”이라는 표현의 저자는 “위대한 사상 이론가, 철학자” 김일성이 아니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김창만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박덕환은 1959년 10월 후기부터 조선노동당 선전 사업에 또 다시 소위 조선의 독특성에 대한 논제(“주체”)가 눈에 띄우게 강조됐다고 하면서 이 논제의 내용이 조선의 모든 것이 외국 것보다 더 좋다고 하였다. 박덕환은 알려져 잇는 것처럼 이 논제가 처음에 1955년에 제출되었지만, 이후에 넓게 전파되지 못 하였다. 지난 2년 동안 이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았단다. 그러나, 지난 해 말기부터 이 논제가 또다시 대대적으로 제한적인 청중 앞에 보고 및 강의 통해 선전되었단다.
이것은 1959년 10월 후기에 평양시 당 및 국가 간부들을 위해 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위원장 김도만의 보고로부터 시작되었단다. 박덕환은 김도만이 자기 보고에 이 문제에 큰 주의를 돌렸단다. 다음에 그는 이 논제 (“주체”)에 조선의 현실을 소비에트 연방과 인민민주주의 국가에 사회주의 건설 경험에 대립시키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돼 민족주의가 보였단다.
조선의 간부들 중에 이 논제 제출의 저자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창만이라는 의견이 있고 이는 이 사실에 대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 소련 대리대사 도르벤코프의 일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일꾼 박덕환과의 토론, 1960년 6월 1일
김창만은 왜 이 논제를 “주체”라고 불렀나? 최근에 나온 북한 전문가 브라이언 마이어스의 ‘북한의 주체의 신화’라는 책에 이 질문에 대답을 수 있다. 공산주의 사상은 원래 독일에서 태어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 시대에 독일 철학에 사용한 개념 중에 Subjekt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Subjekt은 ‘주도 세력’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의 Subjekt”이라면 “프롤레타리아는 역사의 주도세력”이라는 뜻이다. 메이지 시대 일본 학자 이노우에 엔료는 哲學書院(철학서원)이라는 논문에서 Subjekt을 “主體”로 번역했는데, 일본말을 통해 “주체”라는 단어가 중국어, 그 다음에 한국어에 나오게 되었다.
8월 종파 사건 이후에 1950년대 말기 동안에 북한 당국은 문화에 소련의 영향을 줄이고, 조선 민족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김창만은 이를 “주체”라고 표현하였다. 즉, 당시에 “주체”라는 표현은 문화 독립을 강조했던 민족주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1966 혹은 1967년에 김창만이 숙청당해 김일성은 자기중심으로 하는 “유일사상체계”를 도입시켰다. 북한에서 개인숭배는 매우 강화돼 “진보적 인류의 가장 위대한 수령”으로 찬양을 받았던 김일성은 국제 선전을 위해 어떤 새로운 사상 제도를 필요하였다. 이 사상 제도는 바로 “주체 사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식인이 아니었던 김일성은 모택동이나 스탈린과 달리 독특한 사상 제도를 만들지 못 하였다. 이 때문에 외국 기자들이 주체 사상을 설명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김일성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문장만 되풀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계속해서 “주체 사상이 가장 위대하고 혁명적인 사상”이라는 선전을 하였고, 1982년에 평양에서 주체사상탑도 만들었고, 학교 과목에도 “주체 사상”이라는 과목을 도입시켰다. 그런데, 내용이 없는 사상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나? 이로써 이 교육은 사실상 김일성의 위대성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안타깝게도 북한의 조작에 주체 사상이 실체적인 것처럼 보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있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주체사상이 아닌 “주체”라는 단어나 북한 정책을 분석한다. “주체 사상”을 지지한다는 사람들도 실체로 주체사상보다 김일성이나 김일성 체제를 지지하곤 한다. 허울뿐인 사상에 그럴듯한 포장지를 씌어 겉멋만 화려하게 꾸미는 게 아닐까. 우리는 이런 것에 현혹되지 말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슬그머니 없애는 이유에 대해 면밀히 고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