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북일관계 해빙 무드 오나

9월 들어 북핵 외교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적극적인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데 이어 제네바에서 북.미 6자회담 수석대표가 만나 속깊은 얘기를 나누면서 북.미간 해빙무드가 급속하게 조성되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에 나서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급변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우선 미국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부시 대통령은 제네바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의를 앞두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기내 북핵 문제 해결을 자신하면서 “이제는 북한 지도자가 선택을 해야 한다”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전략적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때 남북한과 미국 정상이 종전선언에 서명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 부시 대통령이 다시 한번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취임초 북한을 ‘악의 축’의 일원으로 규정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 다음날에는 미 국무부가 나서 북한의 집중호우 참사와 관련된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하면서 대북 식량지원 재개 의사를 밝혔다.

미국의 의지는 제네바에서도 확인됐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1일 북한 핵의 연내 불능화 목표에 대해 “확신한다”거나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논의 중 가장 실질적인 논의를 가졌다”는 표현을 동원하며 만족감을 피력했다.

그의 파트너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도 “오늘 회담이 잘됐다”고 호응, 이번 제네바 회의의 성과를 엿볼 수 있게했다.

외교전문가들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를 포함한 양국간 관계정상화 문제와 비핵화 2단계 이행방안인 핵시설 불능화와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 의혹을 비롯한 핵프로그램의 전면 신고 등을 놓고 양측이 ‘깊은 얘기’를 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적극적인 협상에너지는 9월 중순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6자회담 본회의에서 분명한 실체를 만들 전망이다.

6자회담 소식통은 “이번 6자회담에서는 지난 2.13합의와 유사한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이 합의의 의미는 북한 핵문제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이는 동시에 북.미 관계가 정상화의 길로 들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가 ‘확신한다’고 한 대로 올해안에 북한 핵시설 불능화와 전면신고가 이뤄질 경우 이는 북한과 미국간 관계정상화의 속도가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이뤄질 것임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미 정부 특사로 연내에 북한을 방문하고 한국전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김 위원장,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간 4자 정상회담이 연말이나 내년초에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이달 중순에 열리는 6자회담 본회의에 앞서 한국과 미국은 호주 시드니에서 송민순 외교부 장관과 라이스 장관이 만나고 그 여세를 몰아 오는 7일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는다.

시드니에서의 연쇄 한.미 접촉은 본격화되는 비핵화는 물론 북.미 관계정상화 현안에 대한 미세한 의견조율이 주로 이뤄지는 의미가 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북.미 관계정상화 논의의 속도가 빨리지는 것과 동시에 관심을 모으는 것이 5-6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회의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미국도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있는 문제로 규정한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의제로 다뤄진다.

따라서 이번 회의 또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도모하려는 북한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무대로 평가된다.

부시 대통령은 아.태언론과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에게 확신시켰듯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에 이 문제도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명확히 하도록 일본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도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북한은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회의를 기다리고 있다”며 “그것은 유용한 프로세스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해 이번 북.일 회의에서 이 문제에 진전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일본인 납북 문제가 테러지원국 지정의 한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미국측이 이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북측에 테러지원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의 협의에도 성의있게 임해야 한다는 점을 촉구한 것이라고 외교가는 해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의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신임 외상은 지난달 28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발생한 집중호우 피해에 대해 인도적인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 자리에서 “납치문제와 모든 것을 관련시켜 생각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해 눈길을 끌었다.

납치문제에 진전이 있기 전에는 6자회담 틀에서의 대북지원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것이 일본의 공식 입장이었다.

일본의 이런 변화조짐은 마치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패배 이후 부시 행정부가 북핵 외교와 관련, 대화기조로 급선회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따라서 북.일 양측이 납치문제에서 과거와 다른 유연함을 보여줄 경우 북일관계도 새로운 해빙의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북측이 납치피해 재조사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거나, 최소한 납치 문제를 계속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논의할 수 있다는 정도의 입장만 보이더라도 이번 논의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북.미 관계정상화 현안과 사실상 관련지어 다루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 우호적인 협상을 진행하려면 일본측과도 적어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서는 곤란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북한의 뿌리깊은 불신을 감안, 신중한 전망을 내놓는 외교전문가들이 적지않다.

실제로 김정일 위원장이 2002년 일본인 납치 사실을 화끈하게 시인한 것이 도화선이 돼 그나마 순항하고 있던 북일관계 정상화 논의가 파국으로 치달았던 적이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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