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前 통일위원장, 北 선교가 변신

▲ 중국에서 5년째 선교활동중인 허베드로 목사

DailyNK는 몇 달 전 중국에서 북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어느 목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선교활동의 어려움을 담은 메일 내용에 진실함이 묻어났다. 그런데 마지막에 적힌 약력이 눈에 띄었다.

민주노총 초대 부위원장 겸 통일위원장. 한국사회 좌파진영의 거대 축인 민주노총 고위 간부 출신이 어떻게 해서 북한 선교와 인권개선 활동에 뛰어들게 된 것일까?

지난 주 한국에 잠시 들어온 허 베드로 목사(속명 허장, 53세)를 만나 노동운동의 한 복판에서 북한 선교가로 전향(?)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들어봤다.

허 목사는 건국대 법대를 졸업하고 81년 신동아화재보험에 입사, 87년 6월 항쟁 당시 넥타이부대로 이름을 날렸던 사무직 근로자 노조를 시작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北동포 외면하면 노동운동 정당성 없어”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로 노동조합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이 확산되며, 힘을 모아 만들어진 것이 민주노총이다.”

정부를 상대로 9년간의 투쟁 끝에 95년 11월 합법적인 민주노총 창립대회가 개최됐다. 허 목사는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선출된다.

오랜 노동운동의 고생이 빛을 보기 시작하는 그 때, 허 목사의 인생을 바꿔놓는 사건이 찾아오게 된다.

▲ 중국내에서 허 목사가 보호하고 있는 탈북자들

창립대회 1주일 뒤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기 위해 속리산으로 향하던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생의 큰 위기에 처했다. 신앙의 힘으로 다리 부상을 이겨낸 그는 그때까지 살아온 노동운동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9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주위 동료들이 과장, 부장으로 승진할 때 만년 대리로 머물면서도 노동자의 권익과 이 시대의 민주화를 위해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교통사고 이후 주님이 죽을 고비에서 나를 구원해주셨으니 앞으로는 나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의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신학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퇴임을 발표한 97년 3월. 허 목사는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북한동포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 대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게 된다.

“나도 모르게 굶어죽는 북한 동포를 도와야 하다는 말이 나왔다. 주님의 뜻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우리가 저들을 외면하면 우리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잃지 않겠느냐. 우리 몫만 찾으려고 투쟁할 것이 아니라 휴전선 너머 동포들을 위해서도 투쟁하자. 사업장에 돌아가서 헌금을 모아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양식을 보내자고 호소했다”

北 종교 자유화, 국제사회 신뢰회복 첫째 기준

이날 발언 후 허 목사는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의 설득으로 북한돕기운동의 책임을 맡게 된다. 90년대 후반 한국사회 시민운동계를 휩쓸었던 북한동포돕기 운동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북한동포를 돕는다고 하니까 한총련, 전국연합 등 56개 단체가 순식간에 모였다. 각자 의견은 달랐지만, 내 주장을 관철시켜 ‘겨레사랑 북녘동포돕기 운동’으로 이름 지었다. 그곳에서 실행위원장을 맡았다. 처음엔 10억을 목표로 했지만, 총 37억을 모아 적십자를 통해 북한에 구호물자를 보냈다”

▲ ‘겨레사랑북녘동포돕기운동’에서는 강냉이 2만 1,500톤, 어리이 분유 150톤 등 400만 달러의 구호물품을 지원했다.

대규모 지원 이후 허 목사는 98년 봄, 북측의 초청으로 함북 온성을 방문해 지원상황을 살펴보게 됐다.

“5월임에도 불구하고 겨울 옷을 입고, 가난에 찌든 북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다. 식량지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땅에는 인간이 존귀를 심어주는 복음의 전파가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됐다”

허 목사는 중국에 오래 있다보니 노동운동 당시 지인들과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현 민노당은 북한인민들의 생존권을 비롯한 기본적 인권신장에 관심을 갖기보다 북한 당국의 입장만 너무 두둔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후 허 목사는 본격적으로 북한 선교 활동에 뛰어들어, 지난 2000년부터 북-중 국경지역에서 탈북자 구호활동과 복음 전파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허 목사는 북한에 복음 전파를 통해 북한의 인권신장뿐만 아니라, 각 계층ㆍ지역간 갈등이 깊어져가는 북한 내 관계 회복, 남북한 이질성 해소라는 남북한 교회의 사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 종교 자유의 허용은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 기준이 될 것이라며, 하루빨리 북한에 종교의 자유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에는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일도 겪었다. 신변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는 생명을 걸고 완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말 다시 중국에 들어가 선교활동을 계속한다.

북한 형제들을 위한 그의 호소가 민주노총에 올바른 대북관을 심어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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