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커스] 남북공동연락소 철수-복귀 해프닝

남북연락사무소 청사 전경. /사진=통일부 제공

최근 북한의 대외정책 행보에는 커다란 변화가 감지된다. 과거와 같은 ‘벼랑 끝 전술’로 복귀하지는 않으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행태가 그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대외정책은 특히 대미 외교에서 노정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한국 정부가 외세 눈치나 보면서 남북경협에 주저하고 있다는 비난을 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들이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한국 정부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22일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철수했다. ‘상부의 지시’라는 언급을 한 것으로 보아 김정은의 결정에 따른 조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날은 미국 재무부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대북 추가제재를 발표한 날이었다. 구체적으로 미 재무부는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중국 해운회사 2곳을 제재 명단에 올리고 선박 대 선박 환적 등 북한의 해상 무역을 봉쇄하여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자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전격 철수한 이유는 이 같은 미국의 대북 제재 강화에 대한 반작용이었다고 사료된다. 북한 당국은 그간 한국 정부에 대해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남북경협을 하루빨리 추진하자고 채근해왔다. 지난 25일 북한 매체 <메아리>는 ‘외세공조는 민족문제에 외세의 개입을 초래할 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남조선(한국) 당국이 말로만 북남(남북)선언 리행을 떠들고 실지에 있어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자기 민족의 힘을 믿지 못하는 외세의존적이며 민족허무주의적인 태도”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 안에서 남북경협을 모색하고 있는 데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었다.

이 같은 주장이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행태라는 점이 밝혀지는 데에는 3일이면 충분했다. <메아리> 기사가 나온 바로 그날(25일) 북한은 돌연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일부 직원을 출근시키면서 남북 협의 채널을 복원시켰다. 23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제재를 철회하겠다는 트윗을 공개하고 난 지 이틀만이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을 위해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남북경협 안을 천착하고 있는데 막상 북한 당국은 미국 정부의 움직임에 곧바로 반응하면서 남북관계를 미끼로 활용한 것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만일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철회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면 북한 당국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미국의 유화적인 반응을 끌어내려 남북관계를 퇴행시키는 또 다른 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하지는 않았을까. 북한 당국은 버릇처럼 9.19 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을 남북 군사공동위원회 구성이나 공동유해발굴과 같은 합의의 실천에는 아직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산가족 화상상봉에도 여전히 미온적이다. 이 같은 합의들을 백지화하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을까.

3일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동안 한국 정부는 미, 북 양측으로부터 중재자 혹은 촉진자의 어떤 역할도 인정받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방향 감각을 잃고 당황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북한 당국이 그간 이뤄놓은 합의들을 하나둘 무효화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 그렇게 강조하는 민족 공조의 실체가 이런 것인가. 미국과의 기 싸움을 위해 한국과의 관계는 손바닥 뒤집듯 쉽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민족끼리 정신인가.

미국의 제재 강화 여부와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소 철수 사이에 확실한 인과관계가 있는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철회 언급과 북한의 공동연락사무소 복귀 간에도 결정적인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두 변인이 발생한 시점을 감안할 때 북한 당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남북관계를 저울질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야 말로 민족 공조 허무주의가 아닐까.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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