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통일연구원은 북한 전역에 404개의 종합시장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는 2017년 468개라고 밝혔다. 이러한 추세면 조만간 500개를 돌파할 전망이다.
북한 주민들은 식량도 시장에 의존한다. 정기적으로 정부 배급을 받아 생활하는 대상은 공무원과 교원(교사), 군인, 군수공장이나 일부 특급 공장 노동자 등 특정 계층으로 제한돼 있다. 이들도 가족 전체가 배급으로 생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시장에서 식량을 충당한다.
북한 시장에서 쌀값은 현재 5000원 수준이다. 다른 상품들의 물가상승률에 비하면 가장 낮게 오른 품목이 바로 쌀 가격이다. 대북제재 상황에도 시장에서 쌀값이 안정된 흐름을 보이는 것은 최근 몇년 간 쌀 생산이 증가했고, 중국에서 저렴한 쌀이 수입되기 때문이다.
중국 수입쌀은 북한 식량 수급과 가격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국에서 들여온 쌀은 중국 시장의 쌀값과 환율 등이 반영되는데 이 가격이 북한 시장 쌀값의 하한선을 형성한다. 북한에서 그해 생산된 햅쌀은 미질이나 신선도가 좋기 때문에 가격이 가장 비싸다.
이렇게 시장으로 유입되는 쌀을 주요 도매상과 업자들이 환율과 수급 상황을 시장에 공급하고 가격이 결정된다.
북한 쌀은 협동농장과 개인 농장원들이 쌀 도매상들에게 판매해 시장으로 유통된다. 이 외에도 공기관이나 군대에서 빼돌려지는 쌀이 시장으로 흘러들어온다. 개인들이 뙈기밭(소토지)에서 생산한 곡물들도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북한 협동농장은 농사를 시작할 때 영농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양곡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추수 후에 쌀로 갚는다. 휘발유나 디젤유, 비닐박막과 수동분무기 등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금액을 곡물로 상환하거나 시장에 팔아서 현금으로 갚는다.
농장 단위가 클수록 영농자재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장으로 나가는 현물도 많아진다. 영농자재가 없으면 생산량 자체가 급감하고 정부수매량도 감소하기 때문에 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한 탈북자는 “농사를 짓는데 필수 자재들인 비닐박막과 비료 등은 열성을 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현물이 없으면 그만큼 소출이 나지 않기 때문에 가을내기(고리대)를 해서라도 구매해서 사용하려는 것이 보편적이고, 이런 모습은 현재 대부분 협동농장들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영농자재 확보를 주요 과제로 제시한 것도 정부수매량을 늘리고자 하는 고육책이나 다름없다.
북한 내부 소식통은 “협동농장들에서 나가는 것은 주로 쌀이나 강냉이 같은 현물이고 개인들이 필요에 따라 시장에 내오는 곡물은 수수나 기장 등 대부분 잡곡”이라며 “자체 생산이 중국 곡물보다 비싸게 팔린다. 중국 수입쌀은 밥맛이 떨어지고 먼지도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중국 곡물은 무역회사가 세관을 통해 수입해 내부로 유통시킨다.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쌀은 각 지역의 쌀 상점을 통해 유통업자의 손에 들어가고, 일부는 당국이 관리하는 고아원과 양로원, 국영학원 등 공공기관들에 분배된다. 대형건설 현장의 돌격대에도 제공하기도 한다.
내부 소식통들에 따르면, 무역회사는 중국에서 구입한 곡물을 톤 단위로 가격을 정해서 상점에 넘긴다. 국경도시에서는 쌀 상점들이 보통 10톤 이상의 쌀을 비축해 놓는다. 시장 매대를 운영하는 장사꾼들은 이 상점에서 보통 사흘 간격으로 쌀을 가져간다. 도시마다 이렇게 수입쌀을 공급하는 상점이 3~5개 정도 있다고 한다.
황해도와 평안도 같은 곡창지대에서 양강도와 강원도 등으로 쌀을 유통시키는 ‘달리기꾼(유통업자)’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방식으로 국내 시장에 흘러들어온 곡물은 최종적으로 쌀 장사꾼들의 시장가격에 의해 주민들에게 매매된다. 최근에는 손전화(휴대전화)로 환율과 쌀값이 조정되기 때문에 지역별 격차가 크지 않다.
현재는 생산자와 유통업자(무역회사포함), 상점, 도매꾼, 쌀 장사꾼 등 생산지에서 4단계를 거치는 쌀 유통구조가 효과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지난해 식량 작황 부진에도 북한에서 식량난이 심각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