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0년 가까이 평양에서 대동강 맥주 장사로 큰 돈을 번 50대 여성이 별안간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고 재산을 몰수당하자 평양 돈주(신흥부유층)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19일 평양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대동강 맥주를 팔아 제법 큰 돈을 벌어온 김 모 씨는 1월 말 경 보안소 검문에 걸려 구금됐다. 수사 과정에서 그동안 부정하게 쌓은 자금이 밝혀져 몰수당하고 성하지 않은 몸으로 지방으로 쫓겨 나기까지 사건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른 돈주들까지 이 사태가 자신에게도 뻗치지 않을까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당국이 통치 자금 확보를 위해 돈주들을 손 보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양 소식통은 이날 데일리NK에 “10년 가까이 대동강 맥주로 장사를 하다가 올해 1월 말에 보안소 검문에 걸렸는데 갑자기 구속이 되고 정식 조사가 진행됐다”면서 “법에서 금지한 차들이 장사꾼(차량을 동원해 큰 규모로 하는 장사)으로 몰려 호되게 당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2000년대 후반부터 올해 초까지 대동강 맥주를 공장에서 받아다가 지방 음식점에 공급해왔기 때문에 평앙시와 평안남도 일대에서는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대동강 맥주는 북한을 대표하는 맥주로 국내에 알려져 있지만 역사는 비교적 짧다. 영국 주류회사 설비를 들여다가 2002년부터 평양시를 중심으로 병맥주와 생맥주 형태로 공급해왔다.
김정일의 지시로 맛과 온도 등에 각별히 신경을 쓰다보니 빠른 시간에 기존의 룡성, 평양 맥주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가격도 룡성맥주보다 비싸지 않기 때문에 서민들도 즐긴다. 생맥주는 음식점에 관련 기계가 설치돼 있을 때만 공급이 가능하다.
2000년대 이후 맥주 회사들도 공장 운영과 종업원 배급을 위해서는 시장에 맥주를 내다팔아야 했다. 돈주들이 주류 사업에 뛰어든 것은 이 때부터다. 김 씨도 권력기관을 끼고 보증금까지 내서 대동강 맥주를 공급받았고, 수완을 발휘해 제법 돈을 벌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 여성은 인민위원회에서 출장 증명서를 떼서 평안남도 평성, 순천까지 트럭을 몰고 가 맥주를 넘겼고, 증명서가 없을 때도 익숙한 얼굴을 내밀며 돈을 찔러주고 무사 통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1월 말 평양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검문소에서 통과가 불허됐고, 보안원들에게 붙들려 평양시 보안서 구류장에 수감됐다. 소식통은 “그동안 국가 생산품을 빼돌려 부정한 재산을 모으고,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일삼았다는 죄가 씌워졌다”고 말했다.
김 씨의 주류 도매는 대동강 맥주에 적정한 도매금을 지불하고 지방에 물건을 공급하면서 판매대금을 이익으로 남긴 정당한 행위였다.
평양 출신 탈북민들도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돈주들을 내세워 아파트 건물을 지어 넣고도 분양해서 이윤을 남기니 불법이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 여성은 가진 재산을 모두 몰수당한 후 선거를 앞둔 3월 초에 평안남도 개천으로 추방됐다. 세간살이도 제대로 챙겨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 여성의 몰락에 어떠한 불순한 의도나 개인적 원한이 개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은 정권은 공포통치를 하면서도 자본과 시장에 대해서는 일관된 보호 정책을 펴왔다. 국가재산을 횡령하는 것이 아니라면 돈주의 자본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약탈하는 방식은 거의 쓰지 않아왔다는 점에서 이번 김 씨 사건이 갖는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김 씨 사건이 부족한 통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본격적인 자산 약탈의 시작일지, 아니면 돈주 길들이기나 다른 개인적 배경이 작용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소식통은 “아무래도 주류 도매나 차판장사는 주의를 해야 한다”면서 “돈을 빼앗기는 것보다 돈을 그냥 씹으면서 잠자코 있는 것이 낫다는 말이 돈다”고 전했다.
한편, 이 사건으로 대동강 맥주 공장 경리와 인수 담당원도 관련 장부를 들고 나가 보안소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소식통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