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만능주의 북한의 민낯… “2만 위안이면 정치범도 무죄”

[열린북한 부정부패 보고서] "북한 노동자들, 월급 0.5달러도 못 받지만 평균 20달러 바쳐"
"부정부패 근절하려면 경제적 효율성 먼저 높여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초 열린 당 대회에서 ‘세외부담’ 문제를 거론하는 등 부정부패 근절 의지를 드러냈지만, 현장에서의 비리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의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보고서가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국제북한인권단체인 ‘열린북한’은 4일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 전역에서 발견되는 부정부패에 대해 연구한 ‘북한의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탈취: 현금⋅현물⋅노동력 그리고 뇌물’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열린북한은 “해당 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 전역에서 발견되는 현금, 현물, 노동력의 탈취와 뇌물 행위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다”며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 주민들의 자생적 개별 경제활동을 통해 생계가 이뤄지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다양한 ‘개인소유’의 박탈 관행을 전반적으로 검토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학교와 직장생활, 인민반 생활 및 경제활동 영역에서 그리고 사법체계 등 사회 전반의 8개 영역에서 발견되는 현금, 현물, 노동력의 탈취 행위 패턴 및 원인을 탐구해 해결방안을 권고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경제적 낙후와 경제활동의 경직성으로 전 국가적으로 경제적 이익 창출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단체는 “일상생활 속 광범위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개인재산의 박탈 행위는 1990년대 말을 지나면서 북한의 행정력, 경제력 그리고 법 체제가 붕괴하여, 이후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면서 “이는 취약계층 및 경제활동 종사자 대상 인권유린으로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 1년에 경제과제 등의 명목으로 학부모가 학교에 바쳐야 했던 금액이 4인 가족의 두 달 치 생계비인 200달러를 훌쩍 웃돌았다. 이를 부담하지 못하는 하위 20% 내외의 학생들은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반면 학급당 경제력에서 상위 15% 내외 학생들의 부모가 담임교사 생계를 책임지는 관행이 자리 잡혀있었다.

또한, 보고서는 북한이 공무원의 임금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부정부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보고서는 “국가가 공무원의 인건비를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그들은 주민들에게 거둬들이는 현금과 현물에 기대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며 “이것이 거의 모든 사회영역에서 나타나는 뇌물 행위와 현금 현물 등 주민 재산의 탈취를 낳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이 때문에 위력을 행사하는 상급자나 교사, 보안·보위원과 이들의 보호가 필요한 학생이나 사경제 활동 종사자 사이에 형성되는 특수한 후견인-피후견인의 공생 관계로 인한 사회적 비효율성이 상당히 컸다”고 덧붙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공무원과 북한 주민 간의 공생관계는 청탁을 넘어 교수나 보안·보위원들이 공공연하게 학생이나 주민들에게 용돈을 받아서 생활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는 “대학 입학 뇌물도 정해져 있어 김일성종합대학 법대 입학은 6천 달러, 김책공업대학은 3천 달러면 가능하고 시험점수 받기 위한 과목별 가격도 정해져 있다”며 “심지어 2만 위안 주면 정치범도 무죄가 된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관계를 이용해 공무원의 생계가 유지되는 것은 국가의 법치와 행정 능력이 붕괴하였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며 “오랜 기간 사회적 관행으로 작동함으로써 주민들의 의식 속에 뇌물과 청탁은 통과의례나 대가 지불 또는 고마움의 표시 등으로 인식하는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권은경 열린북한 대표는 “북한의 행정적, 경제적, 제도적, 법적 개선과 함께 당국 및 주민의 의식적 개선 없이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사회 전반의 개선과 의식개혁만이 북한당국도 근절하고자 노력하는 부정부패와 관료주의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미결수에 대한 인권 침해가 심각하고 일부는 뇌물을 통해 형량을 낮추는 경우도 있다. / 사진=’짐승보다 못한: 북한 미결 구금시설에서의 가혹행위와 정당한 절차의 위반’ 보고서 캡처

한편, 다양한 영역에서 상시로 이뤄지는 북한 주민들의 ‘현금, 현물, 노동력’ 제공은 인권 유린으로 점철됐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보고서는 “뇌물 중 일부는 국가에 제공되며 일부는 세금과 유사하거나 행정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 등의 성격을 보였다”며 “동시에 뇌물로써 청탁을 목적으로 당국과 당국자가 주민들의 ‘개인 소유’를 거둬가는데 이것은 공무원들의 인건비이자 행정기관의 관리 운영비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또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곳이 학교, 사법 기관, 그리고 각종 경제활동 영역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뇌물은 학교에서는 아동의 강제노동, 차별, 교육권 박탈 등 아동 폭력 관련 인권유린의 결과로 이어졌다”며 “직장 생활 및 경제영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제약과 개인 재산의 탈취는 적절한 생활을 유지할 권리, 식량권, 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등에서 인권유린을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런 북한 사회 전반의 정상화를 유도해 경제적 효율성을 높일 개선방안에 대한 권고안도 내놓았다.

보고서는 “학교를 중심으로 자행되는 취학계층 아동들 대상 인권유린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농업식량기구(FAO) 등 국제기구의 협조를 받아 북한의 집단농장 기계화를 서둘러야 한다”며 “공무원의 인건비 인상을 국정가격의 시장가격화를 통한 점진적 실행이 필요하며, 먼저 교사와 보위·보안원 인건비 인상부터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고서는 ▲다양한 준조세들을 국가가 일괄적 수납받아 국가 재정을 확보 ▲부정부패에 대한 대국민 교육과 캠페인 ▲주민 의식 고양을 위한 국제적 지원 등도 권고했다.

권 대표는 “이번 연구는 북한의 부정부패 문제와 여기서 파생되는 인권문제들을 짚어보는 것”이라면서 “동시에 현재 북한의 행정적 제도적 경제적으로 낙후한 복합적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연구가 시민단체와 유엔 기구들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 방안들을 연구할 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특히 북한이 대화를 유지하고 있는 SGDs(지속가능개발목표)에 관련해 국제기구들과 국제 규약 기반 조직들에도 활동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