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과속이 6자회담 역효과 부른다

‘2·13 합의’에 따른 관련국들의 대응 조치가 가시화 되는 와중에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특수성을 앞세워 지나치게 대북지원을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13 합의’에 따라 회담 참가국들은 30일 이내에 5개 워킹그룹을 구성해 회의를 갖기로 돼있다. 회의 결과는 6자회담 개막(3.19) 전 각국 수석대표들에게 보고서로 제출된다.

정부는 북한이 초기조치를 이행할 경우 지원할 중유 5만t 준비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중유지원에는 1500만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보여 재원 조달 방안을 관련 부처와 협의할 예정이다. 다음 달 10일 이내로 6자 회담 당사국 대표들이 참가하는 에너지·경제협력 워킹그룹 회의를 국내에서 개최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해 7월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중단된 남북장관급회담이 27일부터 나흘간 평양에서 개최된다.

지난해 7월 부산에서 열렸던 19차 장관급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재개된다. ‘2·13 합의’가 나오기 전인 12일 우리 측에서 먼저 북측에 회담을 제안했다.

장관급 회담을 급하게 서두른 이유에 대해 신언상 통일부 차관은 “이번 6자회담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했었다”면서 “설령 이번 회담에서 만족할만한 결과가 안 나온다 하더라도 남북관계가 오랫동안 교착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방치할 수만은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신 차관은 “정부는 ‘남북 관계’와 ‘북핵 문제’ 해결은 동시에 진전시킨다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를 복원하면 6자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 차관의 발언은 6자회담의 진전과 관계없이 대북지원을 할 수 있었는데, 마침 합의가 나와서 잘됐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통일부는 20일 2007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가급적 정치문제와 인도적 대북지원을 분리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말이 인도적 지원이지 사실상 수천억이 넘는 경제지원이다. 정부는 북한 핵폐기 여부와 상관없이 이러한 대북지원을 밀어 붙이겠다는 의미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행동대 행동을 규정한 ‘2·13합의’ 원칙을 넘어서는 ‘퍼주기’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북한이 핵 폐기를 위한 초기단계 이행조치에 대한 구체적 진척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 대북지원은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고, 북한 핵무기 가격만 올려준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김대중 정부에 이어 현 정부 초기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은 “흔히 남북 장관급 회담을 연다니까 또 쌀과 비료를 퍼주기 위해 연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것이 없으면 북한 사람들이 남북관계에 아무런 매력을 못 느낀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대북지원은 남북관계 유지용이자, 북한 환심사기용이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정부는 ‘6자회담 서포터’를 자처하며 장관급 회담을 제안했다고 설명하지만, 본심은 7개월간 중단된 남북관계 복원과 남북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15일 유럽 순방길에서 “북한이 달라는 대로 다 줘도 이것은 투자이자 남는 장사”라는 발언은 북핵의 몸값만 불려 예산 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북한의 핵폐기 의지도 감소시킬 우려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2·13합의’가 곳곳에 구멍이 존재한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장미빛 낙관에 의존해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6자회담에서 미국이 HEU 문제를 거론했지만, 북한이 반대해 합의문에 넣지 못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2·13합의’의 문제점은 더욱 불거지는 추세다.

한국과 미국은 ‘2·13 합의’에 따라 60일(4.13) 내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 목록을 신고하게 돼 있기 때문에 당연히 HEU 프로그램도 명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프로그램 존재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가, 이후 입장을 바꿔 HEU프로그램 존재 자체를 부인해 오고 있다.

이 문제는 다음달 초까지 구성될 ‘한반도 비핵화 워킹그룹’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 안에서 HEU 문제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지 못한다면 ‘2·13 합의’는 근본적으로 힘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60일 이후 초기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불능화 조치’도 마찬가지다.

이번 장관급 회담을 통해 남한에서 쌀·비료 지원이 재개되면 이는 6자회담 진전여부와 관계 없이 추진될 공산이 큰 것이다.

대북지원이 6자회담 진전과 무관하게 진행될 경우 이는 결국 남북정상회담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낳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러한 접근이 북한에게 6자회담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북한에게 6자회담에서 북핵 폐기 시늉만 내도 남북관계를 통해 보상 받을 수 있다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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