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수용소 출신] 김정일, 95년 새 총살법 지시

나는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공개총살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함을 보고 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 마음은 왜 저들 만큼 놀라지 않는 것일까? 혹 북한에 살면서 그러한 사건을 너무 자주 보아 마음이 모질어지고 감정이 무뎌진 것은 아닌지?

사실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공개총살이 있으면 짜증나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강제로, 조직적으로 모집시키기 때문이다.

나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 시간을 이용하지 못하면 나도 굶어 죽을 판이라 남 죽는 것을 볼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 보았기에 아무런 관심도 유발시키지 못한다. 그런데도 노동당은 소학교 학생들, 특히 불량 청소년들과 그 가족을 맨 앞줄에 앉히고 공개총살을 진행한다. 공포로 교육한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북한에서 공개총살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데 오래 전부터 실행되어 왔다. 나는 교수형까지 보았는데 평안남도 회창군에서는 화형식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은 지금까지 해오던 총살방법으로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지 않기에 새로운 총살 방법을 택했다.

1995년 장마철 평안남도 평성시 은덕동 장수골에 시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을 강제로 모아 놓고 공개총살을 하였다. 그의 죄명은 농장 밭에서 옥수수 훔친 것이 전부였다. 재수 없이 시범에 걸려 총살된다고 하였다.

공포감 극대화 위해 새로운 총살방법 채택

그때 3명의 사수가 각각 총탄 3발씩을, 사형수의 머리에 쏘아 뇌가 쏟아지게 하고, 다음으로 심장부위와 복부를 쏘았다. 그 후 화력지휘관이 권총을 뽑아 들고 사형수 앞에 나아가 죽음을 확인한 다음, 보안서원들이 나아가 발목의 끈을 단도로 끊으면 시체는 앞으로 떨어진다.

그러면 가마니로 만든 들것에 담아 적재함에 실어 간다. 적재함 안에는 모래가 깔려 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적재함 바닥에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소문에 의하면 시체는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고 의학대학 해부학습용으로 쓰여 진다고 하였다.

*이 글은 <북한민주화운동본부>(www.nkgulag.org)에서 전재하였다.

* 김태진
– 1956년 중국 길림 출생
– 1971년 조선인민군 자동차양성소 입대
– 1988년 요덕 15호 정치범수용소 수감
– 1997년 탈북
– 2001년 6월 대한민국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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