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어디서 자고 어디서 일하나?

▲ 창성초대소, 식당 배에서 반바지 차림의 김정일

김정일은 김일성 생존 시 “수령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수령과 관련된 모든 시설을 지하에 구축하고 이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놓았다. 그러나 사실은 미래의 자신을 위한 시설물들이다.

이런 공사를 전담하는 특수공병부대를 창설하고 지난 수십 년간 지하요새화 사업을 추진해왔다. 따라서 지하를 뚫는 기술에 있어 북한은 아마 세계 최고를 자랑할 것이다.

북한은 ‘지하공화국’

평양의 지하철도는 지하 80m∼100m 깊이에 주로 암반층을 뚫고 건설하였다. 김일성, 김정일을 위한 지하도로는 지하철도보다 훨씬 더 깊이 파고 건설했다. 이렇게 지하 건설에 치중하는 이유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주민들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한편으론 경제 실리도 챙기는 일거양득을 취하고 있다. 북한은 친선관계에 있는 국가들에 지상전과 핵전쟁에 대비한 갱도 굴설(掘設) 기술을 전수하는 것으로도 이익을 얻고 있다.

지하요새화의 극치는 김정일 관저와 별장이다. 전시에 대비해 김정일 관저는 지하에 주요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관저와 관저 사이, 관저와 별장, 그리고 별장 내 부속건물도 모두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김정일 관저]

▲ 김정일 집무실

평양시 중구역에 위치한 김정일 집무실은 원래 김일성이 사용하던 곳이다. 김일성이 형제산 구역에 주석궁을 짓고 옮겨 간 1976년에 건물을 개조, 지금까지 김정일이 이곳을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수백 미터 길이의 3층 건물로 철근 콘크리트로 축조하고 내부는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장식하였다. 포격에도 끄떡없도록 건물 두께는 80센티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본청사로 들어오는 입구마다 40t 이상의 자동철문이 7개나 있고, 리모콘으로 열고 닫게 되어있다.

자동문은 탱크로 공격하기가 힘들고 납판으로 된 문을 썼기 때문에 핵 방사능의 피해도 막을 수 있다. 지하통로를 이용하여 비상시 지하 건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주변은 11미터의 담장을 둘렀다. 인근에 러시아대사관이 있는데, 마주 보이지 않게 고층건물을 지어 장막을 형성했다.

15호 관저까지는 지하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100m 정도 내려가면 지하도로가 나타난다. 김정일은 15호 관저까지 운동삼아 걸어가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지하도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폭이 4~5m, 높이는 3m 정도 된다. 걸어서 가면 6분 정도의 거리이다.

▲ 김정일 관저(15호)

김정일이 성혜림과 동거 생활을 했던 곳으로 평양시 중성동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도로를 따라 김정일 집무실인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청사와 연결되어 있다.

▲ 동평양 관저 (85호)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이는 15호 대기보다 훨씬 크다. 사슴도 키우고 낚시터도 있다.

▲ 창광산 관저

김정일이 고영희와 동거 생활을 했던 곳이다. 성혜림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던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살았다 한다. 고영희가 사망한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지 의문이다. 평양시 중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 보통강구역 서장동 관저

▲ 김정일 공식 관저(16호 관저)

평양시 중구역 노동당 본청사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김정일 관저로 알려져 있다. 2층 건물에 놀이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정문은 당 창건 건물 뒤쪽에 있고, 후문은 중앙당 당역사연구소 뒤쪽에 있다. 관저의 지하에는 역시 외부와 연결되는 비밀 루트가 있다. 관저부지는 2정보이고, 둘레에는 11m 높이의 담장이 쳐져 있다.

[김정일 별장]

북한 전역에 널려진 김정일의 별장은 대략 10개 정도가 파악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서로 다른 별장을 이용하였다. 따라서 김일성의 별장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별장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 용성 21지구

북한의 ‘지하 전시사령부’다. 전쟁이 일어나면 최고사령부와 문서고, 정무원 각 부서, 노동당 각 부서가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에도 안전하도록 철근 콘크리트와 납판 등으로 지하시설을 갖추었다고 하며 1983년에 완공했다.

주변에는 전시에 이곳을 방어하기 위한 대공무기를 소유한 부대들이 조밀하게 배치돼 있다. 부지면적은 북한의 한 개 구역에 맞먹으며 전시물자들을 보관하여 그 속에서 외부와 연계 없이도 10년은 건재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았다.

지하터널을 통해 평양이나 부근의 주요 별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지하철도까지 뚫어놓았다. 평양시로부터 약 40㎞ 떨어진 순천군 자모산별장까지 연결되어 있다.

▲ 자모산 별장

장수별장이라고도 불린다. 1976년부터 공사를 시작, 1982년에 완공됐다. 공사 기간 중 김성애(김일성의 후처)가 김정일과의 권력다툼에서 밀려나 약 6개월간 ‘근신’하기도 했다. 전 조선노동당 비서 황장엽의 증언에 의하면 1996년에 자모산별장에서 약 50㎞ 떨어진 영원별장(강동별장)까지 지하도가 완공되었다고 한다.

[사진출처: 후지모토 겐지 著, <金正日의 요리사>]

▲ 1989년 6월 10일, 강동의 ‘본관’ 건물. 강동에 있는 32호 초대소는 분수가 있는 연못을 중심으로 김정일 전용의 ‘장군 건물’, 김정일 일가(고영희 부인, 왕자, 공주)를 위한 ‘1호 건물’,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당 경공업부장)와 남편 장성택(당 제1부부장) 부부를 위한 ‘2호 건물’, 그리고 ‘본관 건물'(초대소 내부를 총괄함) 등이 배치되어 있다.

▲ 1989년 6월 10일, 강동의 ‘5호 건물’. 후지모토 겐지는 오로지 연못 앞에 있는 ‘5호 건물’에만 체류했다. 초대소가 광대할 뿐 아니라 볼링장, 사격장, 롤러스케이트장 등의 오락시설이 갖춰져 있다.

▲ 1989년 6월 10일, 강동 ‘장군 건물’

▲ 향산별장

묘향산에서도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호랑령(해발 1,909m)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1년 11월 착공해 1984년 7월에 완공됐다. 50만㎡의 부지에 한옥 형태의 대형 복합건물로 지어졌으며 별장 1동과 경비 및 지원시설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산별장은 김일성이 죽은 곳이어서 그 이후 김정일이 가지 않는다.

김정일은 향산별장의 의료시설이 평양에 있는 중앙정부 병원 시설보다 못하지 않다고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김일성, 김정일을 위한 별장들의 수준이 얼마나 훌륭한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이 향산별장에서 응급조치를 취할 겨를도 없이 급사했다는 것에 대해 북한 정권의 상층 관리들 사이에서 내색은 못해도 의심을 갖기도 했다.

묘향산은 지리적으로는 평안북도 향산군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곳의 주소는 평양시 중구역으로 되어 있었다. 김일성이 죽은 후 향산군은 평안북도로 귀속되었다. 평양시 중구역 소속이던 시절에 향산군은 평양시처럼 주민들에 대한 배급도 잘되고 여행제한도 심했다. 평안북도에 속하면서 여느 농촌마을의 생활형편과 같이 되었다.

▲ 신천별장

김정일이 가족과 측근들을 거느리고 여름휴양을 자주 하는 곳이다. 기생놀이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 1990년 12월 2일, 신천 초대소 ‘본관 건물’. 신천 초대소는 커다란 건물이 없고 작은 건물이 여러 채 곳곳에 분산되어 있다.

▲ 후지모토 겐지에게 할당된 ‘5호 건물’은 역시 작은 편이었고 이 무렵 차는 벤츠가 아니라 BMW가 지급되었다고 한다.

▲ 신천 ‘5호 건물’

▲ 원산별장

김정일과 측근들이 겨울에 바다오리를 사냥하거나 물개사냥, 수상스키를 타는 곳이다. 아들이나 가족들도 동행, 보천보전자악단 배우들이 시중 든 기록도 있다. (김정일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증언)

▲ 1992년경 원산 초대소 본관 건물에서 후지모토 겐지

▲ 1988년 5월 26일, 원산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강관주(왼쪽)와 김영명

▲ 삼지연별장

양강도 삼지연군 삼지연읍에서 서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포태노동자구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김일성이 여름철인 7∼8월에 즐겨 찾았던 곳이다. 1980년 9월 준공됐고 총부지면적은 95만㎡에 이른다. 삼지연못가의 별장과 포태비상집무실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 1990년 6월 16일, 백두산 초대소의 ‘본관 건물’

▲ 연풍호별장

김정일 별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평남 안주시 연풍리에 소재하고 있다. 1966년 10월 준공된 후 1979년 8월 한차례 보수작업을 했다. 총부지면적은 30만㎡이고 별장 1동, 경비 및 지원시설 10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일성이 주로 봄에 찾았던 이 별장은 호수주변의 낚시터와 함께 김일성•김정일 전용의 완벽한 사냥터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사냥터는 1978년부터 조성을 시작, 1984년에 완공됐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냥터로는 이곳 외에도 평양 역포구역 무진리의 전용 꿩사냥터가 있다.

▲ 창성별장

합각(合閣 ; 지붕 위의 양 옆이 ‘人’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 각) 형식의 조선식 기와를 얹은 별장이다. 북한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업토의 초상화’라는 것이 있는데 이 사진이 찍힌 곳으로 공개된 별장이다. 압록강의 수풍호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낚시와 수상오토바이를 즐길 수 있는 명소다. 압록강 아래 지하통로로 중국으로 갈 수 있는 지하터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990년 8월 25일, 창성의 김정일 총비서 전용 건물, 본관, 기타 간부 건물

▲ 1990년 8월 25일, 건물의 옥상에 파라볼라 안테나가 있다. 김정일이 위성방송을 보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이곳 창성뿐만 아니라 김정일이 묵는 곳에서는 항상 위성방송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채널을 체크했다.

▲ 1990년 9월 13일 창성 발코니에서 촬영. 사진 왼쪽 위에 보이는 것이 ‘본관 건물’

▲ 72호 별장(서호별장)

함경남도 락원군 여초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한 내 별장 중 가장 큰 별장이다. 바다수평선에서 아래로 3층, 수평선 위로 7층 건물이지만 일반건물에 비하면 25층 정도의 고층건물 높이와 맞먹다. 수심 100m 바다 속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된 해저별장으로, 두께 10센티미터 이상의 특수유리로 바다 밑에 수중 휴게실을 만들어 놓아 안에서 밖을 보면 바다세계의 황홀경에 매혹되어 피로가 풀리고 마음이 상쾌해진다고 한다.

▲ 함흥에 있는 72호 초대소는 바다에 접해 있어 경치가 근사하다. 모래사장도 아름답고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후지모토는 이곳에 있는 동안 수상오토바이를 탄 적이 많았다고 한다.

김정일 층, 김경희의 층, 김정남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 사람당 2층씩을 사용했다고 한다.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증언). 김정남이 김정일의 눈 밖에 나고 김경희가 장성택 문제로 김정일과 애매한 관계가 되면서 그 용도가 바뀌었을 것이다.

별장은 1호각, 2호각, 3호각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 2호각은 3층 건물로 김정일 호위과가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2차선으로 된 4.5km 구간의 지하터널이 놓여 있어 동해함대 사령부와 연결된다. 재정경리부 8과 직원들이 숙식하는 5층 건물이 있고, 그 지하에 행사물자, 냉동 창고, 일반 창고를 두고 있다. (김정일 경호원 출신 이영국 증언)

정리/ 한영진 기자(평양출생,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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