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자존심 상해가며’ 옥수수 1만톤 받는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뭉개고 있다. 북한은 18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또 특유의 깡짜를 부렸다.


“우리가 제재의 모자를 쓴 채 6자회담에 나간다면 그 회담은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평등한 회담이 아니라 피고와 판사의 회담이 되고 만다.” 한마디로 유엔제재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6자회담에 복귀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북한의 외무성 담화를 접해보면 이들의 ‘정치 감각’에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자신들이 잘못해놓고 남들에게 ‘불평등’ 운운 덮어 씌우면서,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쇼를 하는 것을 보면 아주 세련된 자해 공갈단을 보는 듯하다. 자칫하면 속아 넘어간다.


지난 수십년동안 북한의 이같은 ‘정치 감각’에 속아서 진짜로 북한은 피해자이고, 미국은 가해자이며 대한민국은 미국의 ‘괴뢰’이며, 그래서 미국이 북한에 적대시 정책을 하지 않고 협상을 잘 하면 북한은 핵도 포기하고 개혁개방도 하며, 나아가 한반도평화체제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바로 지난 10년 햇볕론자들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후 첫 미국 방문지였던 로스엔젤레스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이유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주변에 포진했던, 정동영 씨 같이 북한정권에 대해 잘 모르는 정치인들, 그리고 이들에게 대북정책 논리랍시고 제공했던 이종석 씨 등 햇볕론자들 탓이었을 것이다. 당시 햇볕론자들이 언급한 신문, 논문, 보고서, 각종 토론을 지금 와서 모두 모아보면 국민들은 아마도 기가 막힐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판단을 잘못해서 수많은 국민세금과 헛되이 소비한 귀중한 시간, 그리고 투입한 공무원들의 노력에 대해, 다시 말해 투자한 시간, 노력, 돈 대비 효과 면에서 소득이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성찰도, 대국민 사과도  한 적이 없다.


이들은 ‘우리가 북한정권을 잘못 판단해서 많은 국민 세금을 북에 갖다바치고 북한이 핵개발 하는데 본의 아니게 도움을 주게 되어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쓴 적도 없다.


그러고도 북한이 화폐개혁을 하자 이들은 또 “북한은 대외개방을 하지 않을 없는 상황” 운운의 아전인수식 분석(?)을 하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들은 북한에 대한 분석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햇볕론이 틀리지 않음을 강변하는게 더 큰 목적이다. 이미 객관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북한이 외국의 돈을 유치하려고 해온 것은 길게 잡아 1960년대 이후 차관(借款) 도입 시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조총련계의 돈을 투자 받아 자기 돈처럼 썼다. 그래서 북한에 투자한 사업가들은 다 망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80년대 이후 대우그룹 남포공단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북한에 투자해서 돈을 벌어들인 회사가 없다. 왜? 중국처럼 시장경제적 방식을 제도적으로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다. 


만약 북한이 중국, 베트남처럼 지도자의 강력한 개혁개방 의지와 현실 가능한 개혁개방 프로그램 및 그 후속 조치를 취한다면 북한도 개혁개방에 성공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영농개혁부터 하고 한국이 비료, 농기구 등을 지원해주면 2년내 북한 식량문제는 완전히 해결된다. 잘 하면 식량 수출도 할 수 있다. 논밭 합친 경작지 기준으로 북한이 남한보다 넓고, 인구는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개혁개방 하면 2300만 인민들은 살게 되지만, 김일성-김정일-3대 세습 왕조는 망하기 때문에 김정일 파쇼정권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핵무기로 남한과 주변국을 협박하면서 양아치 전술로 정권 명맥을 이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북한이 지금 6자회담에 복귀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국민들도 이젠 다 잘 알고 있다.


지금 북한이 하고 있는 냉탕 온탕 행태는 아주 ‘논리적’이다.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하고, 이익이 안되는 것은 안 하는 것이다. 그런 각도로 보면 최근 옥수수 1만 톤을 받겠다는 것, 국방위 ‘보복 성전’ 발언 등도 다 이해할 수 있다. 무슨 복잡한 교란전술이 있는 게 아니다.


지금 김정일 정권은 과거처럼 일면 대담하고 일면 정교한, 그 무슨 치밀한 대남 전략전술이 있는 게 아니다. 압축해서 말하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즉물적 전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것은 김정일의 사고방식과 우리의 상식적인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괴리 비슷한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북한이 냉탕 온탕 왔다갔다 하는 것이 마치 북한의 내부 사정이 아주 다급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옥수수 1만톤도 받자고 판단한 것으로 믿는다면, 그건 분석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지금 김정일이 옥수수 1만 톤 받는 것이 무슨 ‘자존심 상해가면서’ 받는 게 아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말해 ‘핵무기를 보유한 데 따른 나름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남조선 너희들이 옥수수 1만톤 준다며? 참 쩨쩨한 놈들이지만 그래 받아줘라. 너희들이 또 타미플루 준다며? 그래 받아주마, 하는 식이다. 


이같은 모습은 물론 과거와 다르다. 지난 10년동안 북한은 남조선이 당연히 갖다바칠 것을 갖다 바친다고 생각했다. 또 그렇게 남조선을 ‘길들이는’ 게 전술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갖다 주고도 뒤통수 맞으며 “왜 이렇게 적게 갖고 왔냐?”는 핀잔까지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행태에서 좀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정일이 정말로 자존심 상해가면서, 우리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은 게 결코 아니다. 만약 김정일이 그런 유형의 심약한 인간이라면, 90년대 중반 벌써 정권 내놓고 외국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우리는 경제가 안되면 미래가 불안하다. 우리는 그러한 경제우선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은 대남 군사적 우위에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지난 1960년대부터 계속되어온 군사우선주의 사고방식이다. 지금 김정일을 안심시켜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핵무기다. 


우리의 경제우선적 사고방식과 북한정권의 군사우선적 사고방식은 각자의 ‘생존방식’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만 김일성 시절에는 국방경제 병진노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김일성 사망후에는 김정일이 ‘선군’이라는 표현을 내세우며 핵개발을 주제로 군사주의를 강화했을 뿐이다. 지금 김정일에게는 핵무기가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생존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는 것도, ‘우리는 어차피 핵보유국인데, 지금 6자회담에 피고 신분으로 나가봐야 별로 득도 없으니, 미국에게 先 유엔제재 해제, 先 평화회담 논의 등으로 뻗대면서, 한편으로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협박하고 있으면, 미국도 좀 양보하고 중국도  좀 경제적으로 신경 써주지 않겠느냐’는 심리일 것이다. 그외에는 다른 뾰족한 해석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김정일을 좀더 괴롭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그 방법은 역시 한미일이 중국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또 한편 6자회담 개최를 위해 북한을 제외한 先 5자회동 개최를 미 일 중 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제 그렇게 할 시기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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