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 분야 통합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정치, 행정 분야의 통합작업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반면, 경제통합과 동독 재건사업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동서독 간의 경제격차가 컸던 데다 동독 경제상태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했기 때문이다.


통일 후 경제통합 목표는 10년 내에 신연방주의 평균 생활수준을 서독 ‘못사는 주’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으나, 동독경제의 급속한 몰락으로 실업급여, 의료비 등 소비성 지출이 예상보다 훨씬 많아졌다. 통일독일 정부는 매년 연방예산의 25~30%를 신연방주에 투입했으나 2005년까지 통일독일은 경제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03년 사회당 슈뢰더 정부가 사회보장 혜택 축소를 골자로 한 『어젠다 2010』(Agenda 2010) 계획을 추진한 후 2006년부터 독일경제는 급속히 호전되어 통일 이전의 활력을 되찾고 경제적 통일후유증을 대부분 극복하고 있다.


화폐·경제·사회통합조약과 경제통합


경제 및 사회 통합은 1990년 7월 1일 발효된 『화폐·경제·사회통합조약』에 따라 통일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자유선거로 집권한 동독 드메지어 정부는 동독주민의 서독이주 물결과 동독경제의 붕괴를 막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1990년 5월 18일 서독과 화폐·경제·사회통합조약(일명,『국가조약』)을 체결함으로써 7월 1일부터 동서독이 경제통합에 들어갔다.


경제통합과 충격요법의 채택


경제통합 방법은 일정 유예기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방법과 서독체제를 신속히 이식하는 “충격요법” 등 두 가지가 있었다. 서독정부는 『경제정책자문위원단』(일명,『경제5賢』)의 건의에 따라 시장경제 체제를 신속히 이식하고 국제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과감히 폐쇄하는 충격요법을 선택했다. 이러한 급격한 체제전환은 시장경제 체제를 신속히 정착시키고 장기적으로는 통일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으나, 단기적으로는 동독경제를 붕괴시키고 실업자를 양산하여 통일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동서독 화폐 교환비율의 책정


시중에서의 동서독 화폐 교환비율은 1:7 내지 1:10이었고 동독의 생산 잠재력은 서독의 10%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동서독 화폐의 적정 교환비율은 1:4 정도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콜 총리의 지시로 임금, 연금 및 일정금액 이하의 저축에 대해서는 1:1교환율을 적용하는 등 평균 1:1.83으로 교환토록 함으로써 동독지역의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여 동독경제가 자생력을  잃게 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동독 국유재산의 매각


동독 국유재산 매각은 신탁청이 담당했다. 구동독 시절인 1990년 6월 17일『국유재산의 사유화 및 재편성을 위한 법률』(일명,『신탁법』)에 따라 설립된 신탁청은 9,000여 개의 기업과 33,000개의 상점, 호텔, 식당, 약국, 영화관, 서점을 소유하고 400만 헥터의 농림용지와 250만 헥터의 광산 및 산업 용지를 인수했다. 이에 딸린 근로자는 400만 명, 영업장은 45,000개에 달했다. 신탁청은 1994년 12월 31일 해체될 때까지 15,102개의 기업체를 매각하고 4,358개의 기업체를 재사유화 했으며, 호텔, 식당 등 소규모 영업장 25,030개, 46,552건의 부동산 등 총 91,042건을 매각하여 총 670억 마르크의 매각수입을 올리는 한편, 2,110억 마르크의 투자를 유치하고 1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국유재산 매각대금 670억 마르크는 『화폐·경제·사회통합조약』교섭 당시 추정액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당초 서독 측은 동독이 세계 10위의 공업국이라는 전제하에 동독의 총 자산 가치를 1조 2천억 마르크 규모로 평가했고, 동독 국유재산 매각으로 최소한 6,000억 마르크를 확보할 수 있어 동독정부의 부채를 모두 갚고도 남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때문에 남는 금액을 동독 국민들에게 지분권으로 나누어 주기 위해 통화조약 제2장 10조에 이와 관련된 조항도 삽입해 놓았다. 그러나 동독 기업의 부채청산과 신탁청 운영경비로 총 3,234억 마르크가 지출되었기 때문에 동독 국유재산 매각은 2,564억 마르크의 결손을 기록, 통일독일 정부의 재정으로 결손을 메워야만 했다. 동독의 국유재산은 폐쇄적인 공산체제 하에서는 1조 2천억 마르크의 가치를 가질 수 있었지만 동독경제가 세계시장에 노출되는 순간 자산가치가 폭락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초에는 동독지역은 물론 동유럽 전체에서 매각대상 자산이 폭주, 제 값을 받기는 커녕 매각자체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몰수재산의 처리


동독 치하에서 정당한 보상 없이 몰수된 후 소유권이 확정되지 않은 재산, 소위 ‘미해결 재산권’ 처리문제도 경제통합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동서독 정부는 1990년 6월 15일자 공동성명에서 특별한 투자목적이 제시될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원소유주에게 반환키로 했다. 왜냐하면 시민의 재산권을 존중하지 않을 경우 통일조약이 위헌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 후 반환우선 원칙이 투자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게 되자 1991년 3월 및 1992년 7월 2차에 걸쳐 관련법을 개정하여 반환우선 원칙은 유지하되, 투자우선 규정을 강화하여 투자 장애요인을 대폭 제거했다.


그러나 1998년 6월 30일 현재 173,770건의 기업관련 신청 중 119,946건(69%), 부동산 및 기타 재산 관련 신청 2,357,929건 중 1,535,446건(65%)이 해결되는 등 신청처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몰수기업 관련 신청은 총 119,646건이 처리되었는데 그 중 반환 19.7%, 권리확인 17.1%, 보상 9%, 신청기각이 31%로 나타났다. 부동산 및 기타 재산 처리내역을 보면 총 1,535,466건의 신청 중 반환은 26%에 불과하고 41%가 기각되었다. 이의 신청된 89,712건 가운데 92%가 기각되었다는 것은 불완전한 근거로 반환 혹은 보상신청을 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회보장 제도의 통합


사회통합은 연금보험, 의료보험, 실업보험, 산재보험, 간병보험 등 서독의 5가지 사회보험 제도를 신연방주에 확대 적용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연금의 경우 1990년 7월 『화폐·경제·사회통합조약』 발효 시에는 동독지역 연금이 서독지역의 56%에 불과했으나 1994년 7월에는 95% 수준으로 인상되어 점차 수혜수준이 비슷하게 되었다. 그러나 통일 후 동독주민에 대한 연금 지불액이 대폭 인상된 데다 동독경제의 급속한 몰락으로 사회보장비 지출이 급증하여 통일 후 독일 경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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