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이후 3대세습이 소프트랜딩(연착륙)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국내 전문가들은 후계체제 안착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지만 현재까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구축되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후계구축 과정에서 가장 큰 변수는 김정일의 건강이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현재 김정일의 후광 아래 군·공안 기관을 장악한 상태다. 하지만 김정은으로 권력이양이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김정일이 사망할 경우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출간한 저서 ‘현대 북한의 정치'(한울)에서 김정일이 사망하더라도 당·국가 체제인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당대표자회(2010.9)를 통해 군·국가에 대한 당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강화·확장됐다는 점에서 김정일 유고시 북한 전체에 대한 당의 통제력이 상실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급변사태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 중 하나로 ‘당·군·공안기관’의 강력한 주민 통제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저자는 “당이라는 주요 권력기관들에 대한 컨트롤 타워, 군대와 공안기관이라는 억압기구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은 채 김정일 사망으로 북한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것을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정일 유고시 당중앙위·중앙군사위 혼란 수습”
이어 “컨트롤 타워 기관들은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시에도 혼란을 수습하고 정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북한체제 붕괴는 이들 권력기관에서 급진적 개혁파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거나 시민세력이 체제 민주화를 쟁취해낼 수 있을 정도로까지 성장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특히 북한의 주요 컨트롤 타워로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를 주목했다. 조선인민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총정치국이 당중앙위원회 직속 정치기관이고, 군에 대한 군령권을 갖고 있는 총참모부도 국방위원회가 아니라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지도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저자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출된 당중앙위원, 후보위원 등 파워 엘리트 200여명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이들이 대체적으로 당의 핵심적 요직에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저자는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와 언론이 국가중심적 시각으로 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만을 바라봄으로써 당중앙위원회가 관심 밖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당중앙군사위에는 군 총참모장을 비롯, 육·해·공 사령관들이 대거 포진됐지만 국방위 위원들은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국방위가 사실상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와 함께 북한 전반에 대한 당의 영향력이 상실됐다는 협애(狹隘)한 사고가 선군정치 이후 ‘당·군 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북한의 전통적인 당·국가 체제는 변화지 않았고 오히려 당의 권한과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군정치는 대내외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군대의 역할을 강조·중시하는 정치로써 군대를 인민대중보다 중시하는 정치이지, 당보다 군을 중시하는 정치가 아니라는 얘기다.
“당의 영도를 받는 국방위, 당과 대중 연결하는 ‘인전대'”
또한 저자는 최근 국내 학계를 비롯 언론에서 국방위원회를 국가의 최고권력기관으로 평가하고 있는 점에서도 일침을 가했다. 북한의 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기관은 당이고, 국방위는 당과 대중을 연결하는 ‘인전대’로서, 군사력 강화를 위해 내각과 주민을 동원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즉, 국방위는 김정일과 노동당의 정책이 군사, 외교, 경제와 사회통제 분야에서 구체화될 수 있도록 하는 집행기구로 체제유지를 위해 복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당을 통한 사회통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군대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떠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분석에 따라 저자는 국가 최고권력을 상징하는 당 직책인 총비서 직이 국방위원장 직보다 앞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