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을 이유로 핵 불능화 작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미 행정부는 북한이 영변 핵 시설에 대한 시료 채취(샘플링)만 허용한다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RFA는 26일 미국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은 북한에 영변 핵시설에 대한 시료 채취 외에도 영변 외 핵시설에 대한 사찰,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통한 핵개발, 그리고 핵확산 문제 등에 대한 완전하고도 정확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 검증의 핵심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시료 채취 허용 여부”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은 플루토늄 생산의 핵심 시설 중 하나인 영변 핵시설에 대한 시료 채취만 이뤄진다면 이를 분석해 북한의 핵개발 행적을 낱낱히 밝혀낼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북한으로서는 핵개발의 전모가 드러날 수 있는 시료 채취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며, 따라서 “핵 사찰단의 핵시설 방문과 북한 핵 과학자 면접 등 ‘둘러보기’ 수준의 검증만 고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외교소식통도 “북한 핵문제에 관한 미국 행정부의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기 보다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보다 진전됐다는 평가만 받으면 된다는 것”이라며 “1994년 당시 미국이 관철해 내지 못한 핵 시료 채취만 이뤄진다면 이를 북한 핵문제 해결에 대한 진전이자 부시 행정부의 업적으로 간주해 북한에 대한 ‘성의’ 표시로 테러지원국에서 해제시켜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지연을 이유로 북한이 영변 핵 시설 불능화 조치를 중단했다고 선언한 데 대해 북한이 먼저 의무를 이행해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것이라고 26일 밝혔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 머물고 있는 백악관 토니 프래토 부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이 불능화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했으며, 북한이 불능화 재개를 테러지원국 지정해제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래토 부대변인은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에게 북한이 핵신고내역 검증에 관한 약속을 완수하면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혀왔다”고 말해, 북한이 핵 검증체계에 합의해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이날 북한의 영변 핵시설 불능화 중단 발표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 부처 관계자들로 구성된 대표단이 영변 핵시설에서 계속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북한이 영변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도 미국 정부 불능화팀이 영변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번 조치가 미국과 협상하기 위한 것임을 드러내주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