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식 사회주의 질서가 크게 무너지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정일 장군님이 먹여 주는 것이 없다면 왜 그를 존경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사고방식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발행하는 소식지 ‘NK Vision’(8호)은 북한 내부 사정을 15년간 취재해 온 ‘아시아프레스 오사카’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가 아사히신문사의 월간지 ‘론자(論座)’에 기고한 글을 저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시마루 대표는 ‘시장의 힘으로 변화하고 있는 북한을 추적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북한주민들이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줄어들어 가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북한 내부의 취재 파트너의 말을 인용,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근 북한 사회의 변화는 정부나 노동당, 김정일의 지도에 따른 변화가 아닌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아래로부터 시작된 시장경제의 증식, 확대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마루 대표는 북한사회의 이러한 변화를 ‘공공주택의 매매’와 ‘사적(私的) 고용’ 현상을 통해 설명했다.
국가로부터 제공받은 주택이 매매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집의 매매는 농촌 이외의 지역에서는 당연한 것이 됐고, ‘거간꾼’이라 불리는 부동산업자까지 생겼다”며 이러한 현상은 90년대 중반 대량 아사자 발생 이후 “주택(아사자들이 살았던 집)의 대량 공급이 급속히 발생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군을 제대한 장교나 새롭게 부임한 당, 경찰, 보위부 간부들에 대해 국가가 주택 배당을 거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택 매매를 통해 새로운 집을 확보하는 것이 일상화 됐다”고 말했다.
또 “청진이나 함흥 시장의 경우 방 두 개와 부엌이 있는 단층집이 시 중심부에서는 2천~3천 달러에 매매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부패한 특권층 주변에서 돈을 번 ‘돈주’라는 신부유층들이 공동으로 돈을 모아 입지 조건이 좋은 지역에 고급 아파트를 세워 매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법제도가 바뀐 결과 부동산의 개인소유가 인정된 것은 아니다”며 “‘입사증’(국가주택이용허가증)의 명의 등록 변경을 관할 기관에 신청하는 방법으로 공무원은 뇌물을 받고 등록해 준다”고 설명했다.
이시마루 대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정권이 주택문제에 대한 사회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하며 “‘주택거래의 암시장’은 누가 지도한 것이 아니지만, 국가 대신에 주택 유통기능을 훌륭히 대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적 고용이 활성화 되고 있는 현상과 관련, “직장에 일정한 금액을 납부해서 장사할 기간을 받아 장사를 하거나, 주부나 학생이 개인적인 노동력을 파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며 대표적인 현상은 봉제가공 일이라고 소개했다.
북한에서 천을 거의 생산할 수 없어 의류는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거나 천을 수입해 가공한다. 이에 따라 의류장사를 하는 사람이 바느질하는 여자를 조직해 옷 한 벌 당 얼마의 가공비를 주는 식으로 일을 시키고 있다는 것.
또한 “어촌에서 12살, 14살인 중학생들에게 어망을 짜는 일에 하루 1100~1300원으로 고용하고 있다”며 이는 “2000원~3000원인 교원 월급과 노동자에게 최고 직장인 국영 탄광 노동자의 월급(10000원~15000원)보다 벌이가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시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남한의) 연속 드라마의 최신작을 빨리 보는 것이 자랑이 됐고, 서울말의 부드러운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며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에도 영향을 끼쳐 체제의 충성심이 낮아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그는 “북조선은 중병에 걸려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국제사회는 그 병이 상당히 악화된 것만 알고 있지 어떤 병인지,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시마루 대표는 “이런 오랜 지병에 걸린 이웃은(북한) 현재 수혈(원조)로 버티고 있지만, 자력으로 치유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며 “적절한 치료를 빨리 하지 않으면 병이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열고 경제를 회복시켜 인권상황을 개선하면 보통국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병의 정확한 진단이 필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