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수령절대주의 체제 ‘경로 이탈’이 시작됐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 국회· 언론· 각 사회단체들은 현재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상들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북한에서는 화폐개혁이 실패하고 시장이 재가동되고 있다. 물가, 환율은 급등하고 지역별로도 종잡을 수 없는 비균질성을 보여주고 있다. 십 수 년 째 가동율 20%에서 헤매는 공장· 기업소들도 아예 일손을 놓은 것 같다.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했다. 사람들 사이에 각자의 생존을 위한 폭력사태가 더 늘었다. 공안 당국에 실탄이 지급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박남기 당 재정계획부장, 김동운 39호실장, 최익규 당 부장 해임설이 나왔다.


지난해부터 대남전략은 군사도발과 협상 유화(宥和)책이 전략전술로써 조화와 상호연계성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복선이 없다. 단선적이면서 또 뒤죽박죽이다. 문제의 심각성 수준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히 지금 북한 통치권 컨트롤 타워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하지만 북한 통치권 스스로가 자신들의 컨트롤 타워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무시하거나 방기(放棄)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번 화폐개혁의 실패와 시장 재가동은 지금까지 불연속적으로 나타났던 시장통제의 실패와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이번 사태는 역사적으로 60년 된 북한식 수령절대주의 체제가 현실에서 붕괴되는 전조(前兆)로 보아야 한다.


만약 향후 임의의 시기에 북한체제가 전환된다면, 지난 90년대 동유럽 공산권 붕괴에 이어진 북한내 대아사 시기(95~98년)를 붕괴의 1단계로 잡을 경우, 이번 화폐개혁 실패는 붕괴 2단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2단계와 마지막 3단계인 체제전환까지 그 시간은 더욱 짧아질 것이다. 왜 그런가?


북한체제는 1950년대 말에 김일성 1인 독재체계가 세워지고 1960년대 말부터 유일체제(수령절대주의)가 본격화되었다. ‘어버이 수령’ 김일성의 지시와 말씀이 곧 당과 국가의 정책이 되었고, 이후 ‘김정일 장군님’도 마찬가지였다.


이같은 수령절대주의는 김일성 사망 후 3백만 명이 굶어죽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엄존했다. 김정일은 서관히 농업비서를 공개처형 하면서 자신의 식량난 책임을 돌리고, 심화조 사건 등 극도의 공포정치로 수령절대주의 체제를 지켰다. 당시의 주민들은 굶어 죽어가면서도 그것이 김정일의 책임인지조차 몰랐다.


‘당시에 북한이 왜 붕괴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바로 이 수령절대주의에 대한 권위가 북한사회에 엄존했던 것이 결정적이었고, 두번째는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았으며, 마지막으로 클린턴 미 행정부의 북 포용정책이 가동되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후 주민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시장을 조금씩 개척했고, 또 배급 능력을 상실한 당국은 2002년 7.1조치를 내리면서 대도시 중심으로 제한적인 시장을 허용했다.


이후 시장에 대한 당국의 통제와 이완이 되풀이되면서 시장에 의존해 먹고사는 주민들이 늘어났다. 당국은 비사회주의 검열을 하면서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 2002년 7.1조치는  당국이 시장을 ‘허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에 대한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쥐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를 ‘갑(甲)’이라고 한다면 시장은 ‘을(乙)’의 지위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을’의 지위는 점점 커졌고, 돈을 가진 ‘개인들’이 늘어나면서 화폐는 당국의 통제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령절대주의 체제는 수령-당-대중의 지시-복종 수직관계로 묶여 있어야만 유지된다. 이 수직체계를 유지시켜주는 결정적인 매개는 국가의 공급(배급제)이며, 핵심은 식량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돈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서, 다시 말해 수령의 지시를 듣지 않고 돈의 말을 듣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또 다시 말해 수령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의 생존능력을 믿는 ‘개인들’이 늘어나면서, 이 수직체계가 근본부터 깨어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11.30 화폐개혁의 목적을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김정일이 ‘돈의 말을 듣지 말고 장군님의 말을 들어라’며 가진 자의 돈을 강제로 빼앗아 버린, 아주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화폐개혁을 ‘시장에 풀려 있는 돈을 국가가 회수해서 계획경제에 투입할 목적’이라는 분석은, 경제논리에만 얽매인 시야가 좁은 분석일 뿐이다. 지금 북한에는 스스로 경제를 재건할 수 있는 자원도 능력도 없다. 


11.30 화폐개혁은 빠른 시간 내에 실패하고 말았다. 또 북한이 처해있는 여러 조건들을 감안하면 이미 실패는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급속하게 실패가 확인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화폐개혁의 실패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 있다. 그것은 이번 화폐개혁의 실패가 북한 주민들의 인식에서 뚜렷하게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따라서 국가의 실패, 김정일의 실패라는 사실을 주민들이, 다시 말해 ‘시장에서 먹고사는 개인들의 자격’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장이 재가동되었다는 점에서 이같은 주민들의 인식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11.30 화폐개혁 이전까지 북한당국은 비록 시장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 비록 힘이 떨어졌지만 국가가 ‘갑’, 시장과 주민은 ‘을’이었다. 그러나 이번 화폐개혁의 실패로 인해  앞으로 갑과 을의 위치가 점차 바뀌면서 국가는 시장과 주민에 대한 능동성, 주동성을 빠르게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기는 더욱 어렵게 되었고, 국가가 시장에 끌려가는 현상이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북한에서 수령절대주의 체제의 경로이탈이 본격화 됐다”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그리고 7.1 조치 이후 시장과 수령절대주의 체제간의 균열이 벌어져가는 아주 예민한 임계시기에 김정일은 무리한 ‘김정일식 화폐개혁’으로 스스로 수령절대주의의 동맥을 자른 것이다. 김정일은 스스로 시장과 돈에게 자기 분을 이기지 못했던 것 같다. 북한 현대사 60여년을 관통해서 볼 때 이번 화폐개혁 실패-시장 재가동은 북한체제의 분명한 ‘경로 이탈’이다.


이 이탈된 체제는 앞으로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정일의 통치권 누수현상이 심각해질 것이며, 김정일은 고삐를 놓친 마차(馬車)를 타고 달리는 꼴이 될 것이다. 김정일은 이 ‘마차’를 통제할 현실적인 능력이 없다. 애꿎은 마부들만 족치게 될 것이다. 그 첫번째 희생된 마부가  아마도 박남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 통치권의 컨트롤 타워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김정일 스스로가 각성된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 내부적으로 김정일의 무리수가 계속 나올 수 있다. 그 무리수는 결국 보위부, 보안원을 동원한 김정일의 폭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핵폐기와 개혁개방을 강제하는, 즉 김정일에게 ‘개혁개방으로 나올래, 핵을 갖고 그냥 앉아서 망할래? 둘 중 택하라’는 과감한 전략을 전개해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또 한편, 한국에 와있는 1만8천명 탈북자들에게는 역사적인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이제부터 탈북자들은 북한민주화문제, 북한에 개혁개방 정부를 수립하는 문제에 대해, 정말로 실현가능한 방안을 수립하고 실천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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