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각종 대회 잇달아 개최…무슨 일 있나?

▲ 선군노선 관철을 궐기하는 주민들

새해 들어 북한당국이 각종 대회와 회의를 소집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1월 25일 ‘전국농업대회’가 진행된 데 이어 7일 중앙방송은 이달 말에 제3차 ‘3대 혁명붉은기 쟁취운동 선구자 대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6일 중앙방송은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중앙위원회 제47차 전원회의가 진행되었다고 보도했다.

잇단 대회소식들은 올해 북한이 직면한 정치문제, 특히 농사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시사하는 대목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1호 행사 너무 값이 없다’

북한은 지난 시기 대회를 당시 직면한 난관을 해결하는 주민결속용으로 활용해왔다. 특히 90년대 초에 각종 대회가 꼬리를 물고 열렸다. 당시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에 우려한 북한당국이 골간(骨幹: 당 군 정 간부)들을 장악하고, 주민들을 묶어 놓는데 이용했다.

가장 성대하게 열린 대회는 ‘중대장 대회’ ‘정치지도원 대회’를 비롯한 군부와 관련된 것들이다. 김일성 김정일은 대회가 열릴 때마다 꼭꼭 참석해 기념사진을 남겨주었다. 이런 행사를 ‘1호 행사’(김부자 참석행사)라고 부른다.

한편 1호 사진(김부자와 기념촬영)이 가문의 영광으로 치부되던 때라 간부들은 앞다투어 신청서를 내고 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미풍(美風) 선구자대회’와 ‘경공업대회’ ‘사로청 열성자 대회’와 같이 김정일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회의들이 더 많았다. ‘1호 사진이 너무 값이 없다’는 김정일의 지시가 나온 이후 대회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배급제 실시, 대외 선전용 및 농사 총력 재충전용

그 중 잘나가던 대회는 농업대회였다. 꼭 농사가 잘되어 열린 것도 아니다. 70년대 ‘농업사령관’을 자청했던 김일성이 먹는 문제에 관심을 돌리면서 74년부터 관례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식량의 국가적 독점을 체계화한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 이후, 주민들의 배급문제가 절박하게 나섰던 시대적 상황과 연관이 있다.

대회에 참가한 관리위원장, 리당비서들에게 노력영웅 칭호와 흑색TV를 안겨주고, 1호사진도 찍어주었다. 96년 식량난 책임을 지고 숙청된 서관히 前 농업비서와 평원군 영웅관리위원장의 집에 걸려있던 수십상(像)의 대회사진도 농업대회에서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이닥친 식량난은 농업대회의 맥을 끊어 놓았다. 그 동안 주체농법도 해를 거듭하며 토양의 질을 떨구고,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저하시키는 등 원인으로 농민들의 불만을 낳았다. 94년 김일성이 사망되면서부터 주체농법은 사실상 북한에서 용도 폐기되었다.

이번 대회는 94년에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지 근 12년 만에 재개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김정일체제가 안정감을 되찾는 분기점이라고 점칠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7.1 경제조치 이후 농경지의 부분적 소작화, 주체농법의 종말 등 본래 대회가 추구했던 성격에서 크게 탈선되었기 때문에 이번 대회가 주는 의미도 다르다.

우선 매 대회마다 찍어주던 1호 사진이 없다.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위원장과 박봉주 총리 등 고위관리들이 대거 참석해 결코 조촐한 행사가 아님을 증명하려 했지만, 김정일이 참석하지 않는 대회가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이번 농업대회는 △작년 농사가 괜찮았음을 대외에 선전하고 △올해 농사에 주민들을 총동원시키기 위한 재충전의 계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영진 기자 (평양 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