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北 ‘미사일 게임’ 파국으로 치닫는가?

▲ 대포동 2호 미사일 구조 <자료=한국일보>

북한의 대포동 2호 시험발사에 대한 주변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사일에 연료 주입이 완료됐다는 소식이 이어지면서 주변국의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은 외교적 노력과 함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예 연장을 요청했다. 정부 당국자는 19일 “앞으로 2,3일 정도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외신은 북한이 미사일 연료주입까지 마쳤거나 그 전 단계에 와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발사가 가능한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라는 극단적인 시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위에서는 자폐에 가까운 행위라고 비난하지만, 김정일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미사일 발사 움직임 왜 노출하나?

북한은 미사일 실험 발사 움직임을 노출하는 것만으로 세계적 이목을 끄는데 일단 성공했다. 미국은 지난 달부터 주변국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저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쏟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미국의 주목을 받는데도 성공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실제 발사하든 하지않든 미국의 관심을 북한으로 돌리는 효과를 보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금융조치 때문이다. 북한은 先금융조치 해제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6자회담에 복귀하라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김계관 부상이 지난 4월 초 일본 토쿄에서 열린 동북아협력대화(NEACD) 국제회의장에서 힐 차관보를 만나지 못해 밤새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북한은 금융조치에 대한 위기감과 달러 고갈에 따른 불편을 조속히 해결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 일단은 미국과의 양자 협상을 위해 미사일로 승부수를 던지는 셈이다. 결국 북한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미국을 향한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는 대미(對美)용 핵무기 시스템의 완성을 뜻한다. 실제 이 미사일은 군사용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해 미국을 향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김정일 정권은 지구상에 존재하기 어렵다. 결국 정치적 협상을 위한 것이다. 미사일은 북한 핵 위협을 상승시키는 기폭제다. 그만큼 대가가 커진다고 생각한다.

체제 내부 결속 효과도 있다. 경제제재가 가속화돼 북한 지도부를 중심으로 위기의식이 높아지면 김정일은 이를 돌파하기 위한 보다 강경한 수단이 필요하다. 북한 체제가 미국과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속셈이다. 미사일은 북한 사회의 이완을 막는 주요한 매개로 볼 수 있다.

◆미사일 발사 북한에 손해인가?

미사일 발사에 따른 손익계산은 김정일이 할 것이다. 따라서 ‘보통국가’의 계산법과는 그 방식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김정일식 계산법이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외부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국제적 고립과 압력을 자초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정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먼저 김정일은 미국의 군사공격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충격적인 전술을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상황에 따라 그 강도를 조절할 뿐이다.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김정일이 견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다룰 마땅한 수단이 제한돼 있다는 점도 있다.

지난해 2.10 핵 보유 성명도 마찬가지다. 이미 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선언이 ‘치명적 도발’로 인식되지 않은 것이다. 미사일을 발사해도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강경수단은 안보리 결의나 미사일 요격, 발사지역에 대한 폭격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는 중국의 반대로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의장성명 수준의 상징적 결의는 실질적 효과가 기대되기 어렵다. 유엔 경제제재가 성사되기도 쉽지 않지만, 경제제재를 발휘해도 중국이 뒤를 봐준다면 그 효과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2.10 핵 보유 선언 당시에도 미국은 ‘외교적 고립’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미사일 발사 조짐이 관측돼도 미국의 반응은 똑같았다. 그러나 사실 북한 입장에서 외교적 고립이 더 악화될 것도 없다. 이미 폐쇄된 사회이고 자국민의 고통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금융조치가 강화되는 조건에서 미국과의 양자협상장으로 끌어내려는 김정일식 위험한 도박이다. 미사일을 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 효과는 절반 이상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민주당 힐러리 상원의원은 대북 특사 파견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의도대로 양자협상에 응할 것인가?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는다는 것이 2기 부시행정부의 기본 전략이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의 의도대로 양자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경제제재를 한층 강화하는 것이다.

또 동해안에 미 해군전력 추가 배치, PSI 훈련강화 수순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미국의 군사적 대응조치를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일단 1998년 대포동 1호를 발사할 때의 북한과 테러전쟁 시대의 북한은 미국에게 전혀 다른 존재다. 이춘근 박사는 “미사일 발사는 폭정의 전초기지가 핵무기 시스템을 완성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지난 1998년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약, 북한이 대포동 2호를 발사해 그 궤도가 미국 본토를 지향한다면 미국이 강조한 ‘필요한 사전 예비조치’로 요격과 발사지 폭격이 가능할 수도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를 계기로 미국의 대북 불신은 더욱 강해졌다. 물론 북한이 시험발사 움직임을 노출하고, 전격적으로 6자회담 복귀 등을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할 수도 있다. 이때도 물론 북한의 핵 포기에 대한 구체적인 선행조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전제가 없는 한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수준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통해 북한 김정일의 통치자금 및 대외공작금이 말라버릴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전문가들은 북한의 발사 가능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지만, 발사할 경우 미국의 대응이 핵심 관건이라고 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김태우 박사는 “북-미 관계가 악화되고 대북압박이 가속화될 것이다”면서 “북한이 잃을 것이 너무 많아 실제 발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발사할 경우 미국의 요격이나 제재가 예상된다는 것.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미국의 무력대응은 쉽지 않다”면서 “미북관계가 악화되고 경제제재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대화를 위한 전략인 만큼 미국이 실제 군사적 대응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미사일 게임은 미국을 끌어들여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성공하지 못하면 북한이 실패한 게임이 된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 제재가 취해지지 않으면 북한 입장에서도 손해 볼 장사는 아니다.

만약, 미국이 예상과 달리 미사일 발사를 치명적 위협이라고 해석해 군사적 대응에 나설 경우 북한은 매우 어려운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경제제재는 봉쇄 수준으로 강화되고, 군사적 대응과 압박이 높아지면 북한의 미래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이런 상황이 오면 미사일 발사는 김정일의 중대한 판단 착오로 기록될 것이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