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환] “부시, 북한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

지난 14일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면담을 갖고 돌아온 강철환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를 17일 <데일리엔케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서양 속담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은 국내외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인터뷰 도중에도 계속 전화가 울려댔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가에 초점을 맞춘 기자의 질문에도 그는 시종일관 북한 수용소 해체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리고 부시 미국 대통령보다 우리나라 노 대통령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고 말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40분간 면담했다. 체니 부통령을 비롯해 일부 관리들이 배석했지만, 둘 사이에 매우 솔직한 대화가 오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서 받은 인상은?

너무 솔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적잖이 놀랐다. 부시 대통령은 불의를 미워하고 어려운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강하다. 대화하는 도중 계속해서 북한 주민들을 걱정했고 그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되기를 희망했다.

기독교적 신앙심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대화 상대방을 매우 편안하게 해줬다.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워낙 편하게 대해줘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었다. 뭐랄까… 텍사스 동네 아저씨를 만난 기분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처음 이 책(평양의 어항, The Aquariums of Pyongyang, 한글판 ‘수용소의 노래’)을 읽게 된 동기는.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전 국무장관이 추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강 대표 책을 읽고 부시가 받은 느낌은 무엇이라고 했나.

부시 대통령이 나탄 샤란스키의 ’민주주의론(The Case for Democracy)’을 읽고 저자를 직접 백악관으로 초대한 일이 있다.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내 책은 철학이나 이론서적이 아니라 체험기다. 받은 느낌도 ‘쇼킹(shocking)’에 가까울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부시와 면담, 특별한 정치적 해석은 옳지 않다

-온전히 개인적인 만남이었나.

지난번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가했을 때 부시 대통령이 세미나 참가자 중에 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지만 이미 한국으로 돌아온 뒤였다. 다시 백악관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주변에서는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기도 하는데.

정치적 의미는 없다. 주위에서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다. 부시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수용소 체험자를 직접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곳 현실을 체험한 사람을 보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

북한 현실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내가 그다지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설명하면 “충분히 알고 있으며 우려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질문도 상황을 파악한 상태에서 묻는 것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과 김정일에 대해 자꾸 설명하려고 했을 때 부시 대통령이 왜 언짢아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김정일에 대한 표현은 어떠했는가.

이미 언론에 알려진 대로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수차례 김정일을 ‘폭군’이라고 명명한 바가 있다.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눴나

대화의 대부분은 내가 의견을 말하고 부시 대통령은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 주민에 대한 연민, 북한 지도층에 대한 분노, 과연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에 대해 나의 의견을 물었다.

부시, “북한 인권 개선 위해 노력하겠다” 약속

나는 “북한 핵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이슈이지만 북한 주민의 입장에선 핵보다 인권이 우선한다”고 말했다. 탈북자와 수용소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부시 대통령은 “동의한다”며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북한 인권문제가 중요한데 많은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에 대해서 어떻게 언급했나.

“북한 인민(people)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임산부와 어린 아이들이 굶고 있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정권보다 인민들에게 관심이 있다”면서 “북한 정권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는 노 대통령에게도 했다고 한다.

-북한인권 개선 방안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있나?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방법론에 대해 몇 가지 물어온 것이 있으나 밝히기는 어렵다. 이미 신문에 밝혀듯이 탈북자 문제와 수용소 문제는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부시 대통령에게 전했다.

-부시 대통령이 ‘한국민들이 왜 김정일의 인권유린에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질문했다는데.

유엔인권결의안에 세 차례나 기권하고 북한과의 대화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또한 한국 내 여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것 같다. 나는 한국의 TV들이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국내 TV 방송의 도덕 불감증을 지적했다

97년도까지만 해도 북한 내 인권유린 실태를 TV에서 여러 차례 다뤘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자취를 감췄다. 진실에 눈을 감는 방송은 방송이 아니다. 한국 TV가 이런 도덕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인권문제를 체제문제와 연결시켰나.

그렇지 않다.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의 표현 중에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나 또한 그런 방법이나 수단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 면담 후 국내 탈북자들의 반응은.

모두들 면담 소식을 듣고 좋아했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많이 상처를 받았다.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그대로 전하고 싶지만 우리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탈북자를 면담하고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니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노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면 만날 의사가 있는가.

당연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만나자는데 못 만날 이유가 없다. 개인적으로 노 대통령은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북한을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정책을 쓰는 것이다. 참모들이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들이 정말 환영하고 고마워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대담/정리=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