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上]지식인들이여, ‘北붕괴 실제상황’을 준비할 때 됐다

Ⅰ.
북한은 이 세계에서 경제가 가장 낙후된 곳 중의 하나이지만, 비대한 군대, 핵, 화학, 세균무기를 쌓아놓고 이를 돈벌이(강성대국)에 이용하는 특이한 집단이다.

또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간판을 걸고 있지만, 21세기에 강제수용소를 내치(內治)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한마디로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지배집단이 내부폭력으로 인민을 착취탄압하고, 호전적 언행으로 주변국가로부터 원조를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조공(朝貢)을- 강요하여 연명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다면, 그리고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공분(公憤)이 없다면 이 세계의 어느 국가도 이 시대착오적 골치덩어리와는 아무 관계도 맺지 않고, 다만 이 집단이 망했다는 소식을 외신으로 듣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지금 자생적 시장경제인 장마당의 확산과 막대한 외부 원조로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황폐화된 공공경제와 부패 그리고 비대해진 군대로 인해, 3정(三政:세금, 군대, 식량)이 극도로 문란해져 유민(流民)이 넘쳤던 조선말기보다 더 암담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구한말에는 나라의 개혁을 위하여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는 목소리는 자유롭게 나올 수 있었지만, 북한은 수령주의라는 거칠고 천박한 사슬이 인간정신을 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북한인민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소리가 오래 전부터 안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II.
그러나 놀랍게도, 북한 스스로 호언장담한 것처럼, 지난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고서도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다. 도리어 동북아의 이 편집증 집단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의 군사, 경제강국과 상대하여 이들의 코를 꿰어 ‘당당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은 일단 조상을 잘 만나 얻은 듯한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북한이 무슨 행악을 저지르더라도 불과 40km 거리에서 한국의 수도 서울을 시간당 10만발의 대포알로 초토화 시킬 수 있어, 군사적 압력수단으로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너무나 큰 희생을 요구하여 현실적인 선택 가능성에는 속하지 않는다.

북한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는 중국은 북한이 어떤 행패를 부려도 자국의 이해를 위해 국가기밀에 속할 만큼 막대한 원조를 북한에 하고 있다(중국의 대외원조 총액의 40% 정도로 추정). 또한 북한과 중국의 밀무역 성행은 공식무역을 통한 액수만큼으로 추정되어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북한의 핵확산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북핵폐기를 위한 군사적, 경제적 압력 수단을 사실상 갖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6자회담은 현재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언론들은 흔히 미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표현을 쓰지만, 설사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더라도 북한을 다루는 연장통에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연장’이 없는 상태에서 “인내의 한계”란 표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는 모두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세하고 싶겠지만 아직 독자적인 행동능력도 영역도 확보하고 있지 못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이처럼 주변국의 취약점을 정확히 보고 있는 김정일은 미끼를 던져 주변 이해관계국의 코를 꿴 후 낚시줄을 당겼다 풀었다 하며 ‘안 주고 받아내기’ ‘조금 주고 많이 받기’ 등의 게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간단히 말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외국이 더 안줘도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이 먹고 살만큼 주어 왔으므로- 살 수 있으므로 북한과의 인내심 경쟁, 독기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는 쪽은 지도자의 임기가 한정되어 있고 여론의 눈치를 봐야하는 미국이나 한국이라는 것이다.

III.
이런 이유로 김정일이 내치(內治)는 엉망이지만 “외교에는 천재”라는 둥의 북한의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조금만 주의해 살펴보면 김정일의 외교실력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붕괴를 부정적으로 보는 주변국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파산지경에 이른 기업에게 거액의 대출금을 물린 은행이 부도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속 융자를 해주는 것을 보고, 그 기업의 사장이 뛰어난 자금 유치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붕괴 가능성으로 붕괴를 피해서 먹고 사는’ 희한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우리는 미국이나 한국의 고위인사들이 김정일을 만난 후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아 왔다. 즉 김정일이 영민하고 결단력 있고, 국내외 정세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지닌 뛰어난 지도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전대통령,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노무현 대통령 등 친북좌파들은 물론, 클린턴 시절 국무장관을 역임한 올브라이트 여사도 이런 반열에 속하고 있다.

조폭세계에서 두목의 위치는 어떠한 내부규제도 받지 않으므로 그는 자유롭고 솔직하며, 개방적이고 결단성 있는, 한마디로 ‘스마트’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래서 여성들 중 조폭두목에서 이상적 남성상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이 점은 이미 전체주의 연구가 한나 아렌트에 의해 간파되었으며, 올브라이트 이외에 독일의 작가 루이제 린저가 그녀를 호탕하게 환대해준 김일성에게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김정일에 대한 올브라이트류(流)의 이런 멜로드라마가 불필요한 자기비판으로 이어지고- 즉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을 색안경을 쓰고 보아 왔다는- 나아가 ‘북한 제대로 알기’ 혹은 이른바 ‘내재적 접근’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내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진정 망상’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방식으로든 그의 입장에서는 이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서 김정일 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언급하면, 그것은 주관적 희망사항과 객관적 사실판단을 혼동하였다는 비판을 듣게 된다. “극우”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IV.
그러나 필자는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준비하는 것이 앞으로 정부와 지식인, 연구소, 시민단체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물론 우리는 당장 내일, 내달, 내년에 북한정권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런 예측을 할 수 있는 방법론도, 또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것은 설사 현재 북한의 지배집단 내에서 극렬한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해서 미국의 북한문제전문가 에버슈타트는 김정일 정권이 2000년쯤 붕괴하리라는 자신의 예측이 빗나가자, 그 이유를 이런 종류의 예측은 과학(science)의 영역이 아니라 예술(art)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장탄식 한 것이다.

그러나 김정권 혹은 김정권 아류(亞流)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붕괴되리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다. 5년 내라면 “혹시”라고 말하겠지만, 10년 내라면 “아마도”, 그리고 15년 내라면 “틀리면 열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현재 북한정권이 얼마만큼 안정되어 보여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으로 김정권이 붕괴되리라는 점은 좌․우, 진보․-보수의 이념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정권은 개혁․개방을 해도 무너지고 안 해도 무너지며, 김정권을 돈과 물자로 도와줘도 무너지고 안 도와줘도 무너지며, 김정일이 제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줘도 무너지고 안 물려줘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김정일 정권은 백약이 무효인 고질병에 걸렸고, 바로 김정권 자체가 고질병인 것이다. 왜 그럴까?

북한은 90년대 중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의 결과, 마치 유럽의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우선 ‘고난의 행군’을 한 주체는 김일성에 의해 북한정권이 수립된 이후 지금까지 북한을 통치해온 지배집단이 아니라 배급제에 의존해온 북한인민이었다는 점이 극히 중요하다. 그 결과 호의호식하는 지배집단은 -비록 당보다 군이 우선시 되는 선군정치를 내세웠다고 해도- 바뀌지 않았으나, 배급을 기다리다 굶어 죽은 북한의 기층세력은 바뀌지 않을 수가 없었다. 즉 중국과의 밀무역과 장마당이라는 시장을 통해 생존기반을 스스로 구축해야만 한 것이다.

반면에 지배층은 조상을 잘 만나 얻은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를 업고, ‘내 배째라’ 식의 통큰 협박을 통해 외부의 원조를 갈취하고 그 분배를 장악함으로써 과거 통제경제 시기의 지배력을 대치하는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이것이 김정일의 이른바 ‘광폭정치'(통 큰 정치)인 것이다.

물론 북한의 지배집단과 기층집단의 ‘물질생산기반’은 전혀 이질적이지만 서로 간에 연관관계를 맺고 있음은 물론이다. 원조물자는 지배층과 군대에 우선 분배가 되지만, 경제의 순환과정에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고, 또 기층인민에게 장마당을 통해 판매됨으로써 공급부족의 북한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또 장마당을 통한 가내생산품과 밀수품의 유통은 규제권을 갖고 있는 높고 낮은 권력자들에게 뇌물이 지불되면서 지배세력의 유지 ·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굳이 말해 북한의 지배집단과 기층집단 간에 물질생산에 있어서, 좋게 말하자면, ‘역할분담’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북한 현지로부터 나오는 서로 상이한 두 개의 그림들, 즉 활력과 무기력, 곤궁과 여유는 지배집단과 기층집단간의 일시적 균형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인다.

V.
그러나 갈취한 외부원조를 착복, 분배, 유통하는 지배집단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기층집단간의 균형은 오래 갈 수가 없다. 외부원조의 지속은 외부의 정치경제적 환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변하지 않는 환경은 없기 때문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망하면 치아도 춥다)의 관계에 있다는 북한과 중국의 관계도 결코 변하지 않는 자명한 공리(公理)가 아니다. 중국이 김정일 정권의 붕괴로 인한 북한의 혼란을 두려워하는 공식적 이유는 첫째, 중국으로 쏟아지는 난민들에 의한 부담, 둘째, 동북 3성의 혼란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한이라는 완충지대의 상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평화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에서 중국의 북한전문가들의 발언을 전하는 바에 의하면, 중국인민해방군(PLA)은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역할에 대하여 냉전시대처럼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에 위급사태 발생시 북한난민에 대한 우려도 사실 검증된 가설은 아니다. 북한 군부의 내란 사태가 오래가리라는 이유도 불확실할 뿐더러, 내란이 없고 즉시 구호와 원조와 희망이 북한에 투입된다면 중국에 쏟아지는 것은 난민이 아니라 돈 많은 지배집단의 망명일 수도 있다.

따라서 만일 유엔과 관련국들에 의해 북한사태가 진정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면, 중국정부는 미래가 전혀 없는 김정일 정권에 자신의 미래를 맡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 한국의 북한 원조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적, 질적으로 과거 10년의 관행은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북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거의 분명한 현상태에서 북한에 무조건식 퍼주기는 불가능하다.

즉 외생변수에 의존하고 있는 북한의 지배집단은 외국의 원조가 줄어듦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상실할 위험에 처할 것이다. 북한의 현실에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지난 노무현-김정일 회담 시에 북한의 쌀값이 상당히 떨어진 적이 있다는 것이다. 즉 남쪽에서 무엇인가 선물을 가져올 것이고 그것은 쌀일 것이며 그렇다면 공급이 더 늘 것이라는 판단 하에 대상(무역 장사꾼)들이 미리 쌀을 풀어 이익을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북한의 기층집단이 지배집단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여실하게 보여준 실례다. 즉 북한의 지배집단은 무엇인가를 가져올 때에만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

그러나 원조가 현 상태로 유지된다고 해도 위에서 말한 ‘균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장경제는 북한과 같이 공급부족 상황에서는 본질적으로 팽창의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장마당을 통해 발휘할 수 있는 생산력이 현재 충분히 실현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배집단은 기층집단의 생산력 확대를 계속 인정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지배집단은 가능하면 장마당의 생산력을 일정한 수준 이하로 억제할 것이다. 노-김 회담 직후 장마당에서 장사할 수 있는 여성의 연령을 50세 이상으로 제한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외부원조가 증가하더라도 북한의 지배집단은 미래가 없다. 안병직 교수의 말처럼 “건달집단”이 놀고 먹을 수 있을 때 자기 혁신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김정일은 과거처럼 국가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공장을 가동시키기를 원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시절 경의선 시험운행을 빌미로 경공업 원자재를-예를 들어 신발생산을 위한-요구한 것도 통제경제로 회귀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의 기능도 비슷한 경우다. 스스로 공장을 세우고 돌릴 능력이 없으니, 한국의 기업에 인력을 대주고 통제하면서 국가의 경제개입을 늘리려는 것이다. 게다가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의 큰 차이를 이용하여 북한 근로자의 임금을 대부분 가로챔으로써 꿩먹고 알먹는 식이다.

그러나 북한이 한때 통제경제를 운영할 수 있었던 적은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 사회주의 블록이 존재했을 때다. 현대의 경제란 복잡한 분업체제를 이루고 있어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외국에 대해 개방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본격적인 공업생산을 이룬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이 20년간 손을 놓았던 생산체제를 외국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아 정비한다는 것 자체가 개혁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북한의 지배집단의 힘을 키우기 보다는 자생적 시장경제로 살고 있는 북한의 기층집단의 힘을 폭발적으로 키울 것이므로 김정일 정권이 망하는 길임은 누구보다도 그 스스로 알고 있다.(下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