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투고] 인권위 제작영화 ‘다섯개의 시선’을 보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두 번째 옴니버스 인권영화를 제작했다. 지난 영화에 대한 감동이 무척 컸던 터라 영화를 보기 전부터 설레임이 앞섰다. 탈북자 문제를 다룬 단편도 한 편 상영된다기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무척 컸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난 후 느낌이란 바람빠진 풍선과 같이 무엇인가 허물어지는 기분이다. 특히 탈북자를 다룬 단편은 인권영화라는 주제가 무색할 정도로 편협한 시각을 드러냈다.

이 영화는 2003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여섯 개의 시선’에 이어서 다시 같은 형식으로 제작한 인권주제의 옴니버스 영화다. 다섯 편의 영화 중에 “배낭을 멘 소년”이 탈북자의 인권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영화는 십여 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의 어느 외국 공관의 벽을 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한 소녀는 담을 넘지 못하고 출동한 공안에 붙잡히고 만다. 이 장면이 나간 후 스크린에는 글씨로 “0000 년에 북송 되었다가 재탈북해 중국 어느곳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다”고 씌여진다. 다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은 이제 남한이다.

이제부터 영화는 소녀 탈북자가 홀로 남한에 와서 외로이 살고 있다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이 소녀는 학교에서도 적응 못 하고 노래방 아르바이트에서도 주인이 임금을 떼어먹는 수모를 당한다. 남한 사회 적응에 실패하는 한 탈북소녀의 이야기는 장애인이나 외국인근로자와 같은 우리사회 마이너러티들의 이야기에 탈북자라는 소재만을 넣었다.

앞서 상영했던 장애 어린이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점이 없었다. 이들은 너무나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보통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기가 힘들다는 것이 일관된 흐름이다.

순진무구하고 착한 아웃사이더를 수용하기에 우리 사회가 너무나 냉소적이고 이기적이며 포용력이 부족하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최근 탈북자를 다룬 영화 중에 ‘태풍’이 있다. ‘태풍’은 탈북과정에서 겪는 한 소년의 불행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한국행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탈북자들이 당연히 거쳐야 하는 행보가 있다. 입에 담기도 거북하고, 보통 상식에 기초한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상상해내기도 힘든 보위부 감방에서의 심문과정과 이후 처리과정이다.

한국행을 시도했으므로 이 소녀는 당연히 정치범수용소에 가야한다. 혹시 나이가 어린 것이 감안됐다고 해도 최소 구류송행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나이도 어린데다 생긴 것도 예쁘장했으니 북송 후 보위부원들과 안전원들의 성적 괴롭힘은 얼마나 됐을까?

어린 나이에 최악의 인권유린을 당한 소녀는 그래도 운이 좋아 남한까지 오게 되었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부적응을 단순한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냉대로만 취급한 것은 못내 아쉽다.

인권위는 대한민국 영역 내의 문제만 다룬다고 변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탈북 소녀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아픈 기억들을 조명하지 못하고 현실의 피상만을 들춰내는 것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느낌이다.

인권위에게 ‘보위부’ ‘정치범 수용소’ ‘노동 단련대’ 등은 과거 우리 사회의 ‘반공’만큼이나 피하고 싶은 영역인가보다. 인권위는 이제 ‘인권’의 이름으로 또 다른 무관심과 차별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권은경/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