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식량난 진실②] 北 1, 2차 쌀값폭등 모두 시장통제 때문

◆ 북 식량상황과 쌀 값=북한의 식량상황을 현실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지표는 ‘시장곡물가격’이다. 바꿔 말해 최근 일부 대북지원 단체가 주장하는 ‘대량아사 위기설(說)’ 역시 ‘시장곡물가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북한의 시장은 2002년 7.1조치 이후 상설화, 대형화 되어 현재는 전국 시(市), 군(郡)단위까지 현대적 시장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2005년 이후 북한의 교통(버스, 화물차)과 통신망(장거리 전화)이 조금씩 정비되어 북한 내부의 곡물가 평균화 현상을 촉진시켰다. 때문에 ‘시장가격’은 외부에서 북한의 상황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통계’가 된다.

5월 말 현재 북한의 시장 쌀값은 kg당 북한 돈 2천원대 중반이다. 옥수수 역시 kg당 북한 돈 1천5백원 전후로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5월에 비해 2~3배 가까이 폭등한 가격이다. 일반노동자들의 월급이 북한 돈 3천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살인적인’ 가격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식량가격이 북한의 식량고갈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결과인지는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많다. 북한의 내부소식통들은 “국가가 시장 통제에 나서면 식량도매꾼들이 더 날뛰어 쌀 값이 치솟는다”고 전한다.

◆ 2005년 제1차 쌀값 폭등은 장마당 통제 탓=과거 북한의 식량가격 동향을 분석해보면 북한의 식량가격 폭등이 북한 내 식량 고갈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아주 미약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2005년 12월 ‘제1차 식량가격 폭등’부터 2008년 5월 ‘제2차 식량가격 폭등’까지, 북한의 식량가격은 북한의 작황현황이나 외부사회의 식량원조량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현상을 정밀히 분석해보자.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북한 당국은 당초 1kg당 북한 돈 0.08원이던 공식 쌀값을 무려 550배나 높은 44원으로 조정했다. 하지만 당시 농민시장에서는 이미 쌀 1kg에 북한 돈 100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던 터라 개인적으로 식량을 구매해야 하는 북한주민들에게 실질적 의미는 크지 않았다.

‘7.1조치’ 당시 kg당 100원대 초반을 기록하던 쌀값은 그때부터 정확히 3년 6개월 만인 2005년 12월 ‘1천원 고지’를 뛰어넘게 된다. ‘제1차 식량가격 폭등’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2005년은 북한의 식량보유량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던 때였다. 한국농촌진흥청은 2005년 북한의 식량생산량이 1992년 이후 최대치인 454만 톤으로 추정했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0년만의 대풍’이라고 선전했다. 또 그 해 한국에서만 50만 톤의 쌀을 원조받았다.

그런데 왜 그해 12월 ‘제1차 폭등’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북한 최초의 ‘시장왜곡 현상’ 때문이었다. 식량부족으로 가격이 폭등한 것이 아니라, 거래통제로 말미암아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북한당국은 200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아 ‘국가배급제 복귀’를 선포하며 전격적으로 장마당 식량거래를 금지했다. 식량난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자, 김정일 정권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호언장담했던 ‘국가배급제’는 두 달 만에 말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국가가 약속한 식량배급이 나오지 않자 주민들은 안전원(경찰)들의 단속을 피해 개인들간 암거래로 식량을 구해야 했다. 암시장(black market)의 거래가격은 언제나 정상시장(open market)보다 높은 거래비용을 요구한다. 2005년 12월 함경북도 지역의 쌀값이 kg당 북한 돈 1천원을 뛰어 넘었다.

당시 북한 돈 1천원이면 장마당에서 국수 4~5 그릇을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2005년 여름까지 함경북도 기준으로 쌀값은 1kg당 600원대, 옥수수 값은 300원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 장마당 자유거래, 쌀값 하락 불러=2006년 봄, 북한당국이 장마당 통제를 풀어놓자 시장에서 다시 식량거래가 성행했다. 한국에서 보낸 ‘원조쌀’이 자루째 장마당에 진열되는 진풍경(?)이 등장했다.

이때 북한 당국은 식량거래 통제를 접고, 규격화, 제도화 사업을 꾀하며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시장을 상설화하는 조치로 전환했다. 당시 평양의 선교구역 장마당의 경우 판매품목에 따라 상인들에게 유니폼까지 갖추도록 지시했고, 식량이나 음식을 파는 상인들은 앞치마와 머리수건까지 두를 만큼 변화가 빨랐다.

이 시기 북한의 식량가격은 2007년 상반기까지 안정세를 유지했다. 2007년 4월부터 쌀 가격은 kg당 7~8백원대, 옥수수 가격은 kg당 3~4백원대를 유지했다. ‘제1차 식량가격 폭등’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가격이 매우 안정됐던 이 시기에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을 선택한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됐고, 한국을 비롯한 외부사회의 원조는 차단되었다.

2006년 역시 평안남도 일대가 수해 피해를 입었고, 핵실험 이후 외부원조도 끊긴 상황이었지만, 시장의 쌀 가격은 2007년 여름까지 안정세를 유지했다. 시장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 국방위원회가 통제 나서자, 4100원으로 천정부지=올해 4월, 북한의 쌀값이 1kg당 2천원을 훌쩍 넘었다. ‘제2차 식량가격 폭등’이 도래한 것이다. 식량가격의 상승세는 사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2007.10.4) 이후 한국의 대선이 끝날 때까지 북한의 쌀값은 이미 1kg당 1천원을 넘고 있었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기점으로 대남공세를 본격화하기 시작한 3월에는 쌀 1kg가 북한 돈 2천원에 근접하더니, 4월 초에는 평양을 비롯한 전 지역의 쌀값이 3천원까지 육박했다. 심지어 함경북도 청진에서는 5월 3일~4일 이틀 동안 쌀 1kg가 ‘4천100원’까지 치솟았다.

이 시기 역시 북한당국의 시장통제 조치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부터 ‘39세 여성 장사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12월부터는 평양을 포함한 전지역 ‘45세 여성 장사금지’로 확대됐다.

2008년 1월, 북한 당국은 ‘국가의 식량이 유출되어 밀거래 된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이동할 때 소지할 수 있는 식량을 10kg 이내로 제한하며 다시 장마당 쌀 판매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안전원(경찰)뿐만 아니라 보위부 요원까지 동원되어 시장을 샅샅이 통제했다. 5월 3일 청진 수남시장의 쌀값이 4천원을 넘을 당시, 함경북도는 국방위원회가 주관하는 검열로 시장통제가 정점에 달했다.

‘제2차 식량가격 폭등’이 2005년 12월 1차폭등보다 더 천정부지로 뛴 이유를 북한 소식통들은 쌀이 갖고 있는 환금성(換金性)과 투기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 식량은 제1의 투기품=북한에서 쌀은 ‘군량미’ ‘애국미’ ‘군수경제용 배급미’ 등으로 서류상 용도전환이 용이해 부패한 당, 군 간부들이 외국의 지원미 등을 쉽게 식량도매상에게 넘길 수 있다. 또 쌀은 그 어떤 재화보다 환금성이 뛰어나고 가장 수요가 많기 때문에 최고의 투기대상이 된다.

식량도매상들은 간부, 외화벌이 기관, 화교자본 등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화교들은 돈을 대고, 외화벌이기관은 운반과 판매를 책임지며, 간부들은 서류를 조작하여 국가통제를 피해간다.

북한 내부소식통들은 식량가격이 오를 조짐이 보이면 식량도매상들이 시장에 쌀을 풀지 않는다고 말한다. 3일 평양의 한 소식통은 “올봄 식량가격이 폭등했으나 소매상들의 숫자나 시장의 매대 숫자는 거의 줄지 않았다”며 “이같은 현상은 식량 도매상들이 시장의 공급물량을 의도적으로 조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매상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올봄 북한의 식량가격 폭등은 시장을 통해 살아가는 주민들을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는 북한당국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국가의 통제정책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식량도매상들의 행태가 식량가격 폭등을 더욱 부채질 했다는 것이 북한 내부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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