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터민 여성의 ‘쉼없는 도전’

“사선을 넘어 온 우리인데 무서울 게 뭐냐…죽기 살기로 적응을 위해 노력하면 나중엔 그에 따른 결실이 맺어진다.”

탈북민 김미선(가명.28.여)씨가 남한에서 ’악바리’로 살아가면서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던지고 있다.

김씨는 북한이탈주민후원회가 발간한 ’정착 성공사례 수기 모음’에 실린 ’내 운명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글에서 함경남도 고향을 떠나 경상북도 안동에 정착하기까지 5년의 경험과 감상을 솔직하게 담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응모한 이 수기에서 2003년 봄 탈북자 정착지원 시설인 하나원을 퇴소하고 안동으로 내려가면서 “사회에 나가서 직장에서 3년동안 버티겠다, 무식이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니 열심히 배우겠다, 내가 모는 자가용에 부모님을 태우고 내 고향으로 찾아가리라”는 세 가지 맹세를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제 앞의 두 맹세는 이뤘지만 세 번째 맹세는 “나의 의지와 조금은 거리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두 가지 맹세를 이뤘다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과정은 실로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다.

“매일 죽어라고 하루 12시간씩 열심히 일하고 한달 후 첫 월급 80만원을 받았다. 얼마나 감개무량하던지…바로 그 다음날 우체국으로 달려가서 통째로 적금을 넣어버렸다. 행여 내 결심이 흔들릴까 두려움에 3년 만기로 계약했다.”

부친이 먼저 남한에 입국한 터라 정부의 정착지원금이 적었고 그나마 탈북 브로커 비용을 내고 나니 “믿을 건 두 주먹밖에 없었다”는 김씨는 처음 6개월동안 식당에서 악착같이 일하면서도 매일 신문에서 외래어 등 모르는 단어를 찾아내 배웠다.

그렇게 남한 사회에 적응해나가면서 가족과 갈등도 겪었다. 부친은 김씨가 말투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 김씨의 청바지, 머리 염색, 심지어 화장에 대해까지 못마땅해 하며 “북에서는 다 굶어죽게 생겼다가 여기 오니까 벌써 그렇게 안일하게 산다”고 불만을 표했다.

김씨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내가 어차피 여기 한국 사회에서 적응해서 살아나가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아침마다 판잣집처럼 어깨며, 허리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이를 악물고 다니면서도 하루도 결근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영세민 아파트에 살면서 몸이 불편한 이웃을 볼 때마다 “‘나는 그래도 푸른 하늘도 바라볼 수 있고 건강한 두 팔, 두 다리로 걸어다니고 있지 않은가’라며 정신이 버쩍 들곤 했다.”

그는 “북한에서 그렇게 아등바등 해도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가 있으니 얼마나 소중한 나날들인가”라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김씨는 북한이 주창하는 ’주체사상’의 본질은 운명의 주인은 자신이고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라며 “북에서 주체사상에 대해 배웠지만 실제로 주체사상이 구현된 나라는 남한”이라고도 했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먹고 살려고 해도 목구멍에 풀칠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남한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면 적어도 그 대가는 “고스란히 나의 것”이기 때문에 남한 사회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다는 ’주체사상’의 뜻에 더 가깝다는 주장이다.

김씨는 처음 맹세를 지켜 식당에서 3년을 일해 3천만원이라는 “그 어떤 돈보다 가치있는 거금”을 모은 뒤 곧바로 “열심히 배우겠다”는 두 번째 맹세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먼저 운전면허를 땄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6개월간 전산 세무회계를 공부해 자격증을 땄다. 이어 각종 컴퓨터 활용 자격증도 따고 학원에서 평생의 반려자까지 만났다.

김씨는 “현재 임신 8개월이지만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며 “태교도 중요하지만 자식은 나서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면서 맛난 것 먹이고, 좋은 옷 입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부모가 부모로서 자식을 키움에 있어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면 사람답게, 남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손가락질을 안 받게끔 만들어야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김씨는 “메이커 옷만, 명품으로만 치장하고도 인간미는 도무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며,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돌볼 줄 알고, 말 그대로 사람 냄새나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남한에 정착했던 일부 탈북자들이 미국이나 영국으로 이민을 가지만 자신은 “맘먹고 악착같이 열심히 하면 우리가 쏟아부은 노력의 대가는 나타나기 마련”이고 “조상탓 하고 나라탓 하기에 앞서 본인이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면 다들 인정해주고 도와주는 데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난 5년간 택시를 탄 일이 열 손가락에 들지 않고 웬만하면 버스도 잘 타지 않으며, 옷은 사회복지관 ’아나바다 장터’에서 2천~3천원을 주고 구입한다는 김씨의 생활태도는 ’안동 간고등어’보다 짜고 속이 꽉 찬 느낌이다.

“진정으로 고마움을 알고 열심히 살아가면 언젠가는 우리가 꿈에도 바라는 통일도 이뤄질 것이고 나의 세 번째 꿈도 실현되리라고 생각한다.”

김씨는 10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아들이 이제 2개월됐다면서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을 전공할 계획이다. 탈북 여성의 인권 증진을 돕는 동시에 인간 자체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해 그의 꿈이 ’현재진행형’임을 분명히 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