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독재체제 구축과 스탈린 우상화 탈피

북한을 ‘스탈린주의 나라’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스탈린 사망 이후 북한 정권은 변화해 왔지만, 북한 정책과 국가 구조를 스탈린주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스탈린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소일(蘇日)전쟁(1945년 8월) 종결 직후 소련 당국의 지시에 따라 조선반도(한반도) 북반부에 스탈린의 개인숭배가 나타났다. 맨 처음엔 스탈린 뿐만 아니라, 몰로토브(당시 소련 외교 인민위원) 숭배도 있었고, 몰로토브의 초상화도 평양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1946년 들어 소련 지도자들 중에 스탈린의 초상화만 남았다.

1940년대 중기엔 소독전쟁 승리절과 10월 혁명의 날과 같은 소련의 명절을 기념하였고, 한반도나 아시아 문제가 아닌 스탈린의 연설까지도 번역되어 ‘정로’와 같은 북한 신문들에 게재되었다. 이 신문은 한글로 쓴 소련 신문을 읽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다가 스탈린이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임명 이후, 북한에서 스탈린 숭배 방식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문들은 “해방의 은인이시며 피압박 민족들의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에 대해 계속 게재했지만, “민족적 영웅 김일성 장군”에 대한 언급도 나오기를 시작했다. 특히 1946년 5월엔 김일성의 이름을 처음으로 스탈린 보다 앞에 게재하였다.

몇 년 동안 숭배 제도가 이렇게 유지되었다. 북한에서 수령 김일성과 은공(恩功)자 스탈린이 있었다. 공공건물 벽 스탈린의 초상화를 김일성 옆에 붙이게 되었고, 1949년에 스탈린의 70세 생일은 큰 명절처럼 기념되었고, 북한판 노래집들 맨 뒤에는 꼭 다음과 같은 ‘쓰딸린 대원수의 노래’가 나왔다 :

원쑤들을 물리치고 이 나라를 건져내어
빛나오는 새 력사를 밝은 앞 길 열어줬다
위대할사 노래마다 높이 불러
찬양하는 은인 우리의 쓰딸린 대원수
천추만대 길이 빛날 쓰딸린 대원수
크레물리 향해 만세를 웨친다
인류 태양 그대에게 영예 드립니다
오각별 찬란한 땅 삼천리의 이 강토
위대하신 그 이름 넓고 밟게 울려간다
영명할사 만백성이 한결 같이 떠받드는
이 나라 해방 은인 쓰딸린 대원수
후손만대 길이 떨칠 쓰달린 대원수

스탈린은 1953년 사망하였고, 3년 후 1956년 설립한 소련공산당 제20대회에서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가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난하였다. 물론 이는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 스탈린의 초상화들은 사라졌고, 소련 노래들도 편집되었다. 예를 들면, 원래 ‘우리의 축배’라는 노래에 “스탈린을 위하여” 건배하자고 했지만, 이제는 “당을 위하여”로 교체되었다.

1950년대 중기부터 김일성은 소련의 문화 영향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북한 당국은 “민족적” “우리식”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일례로 1970년대까지는 ‘쓰딸린의 거리’라는 이름을 가졌던 평양시의 거리는 ‘승리거리’로 개명되었다. 또한, 1967년 유일사상체계가 나온 이후 스탈린 뿐만 아니라 레닌, 마르크스, 엥겔스 등 공산주의 사상가들이 쓴 문서가 북한 도서관에서 사라졌다. 역시 김일성주의는 경쟁 사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원래 북한 사상체계에 스탈린의 위치는 김일성의 위치와의 비슷하였다. 이제는 북한에서 스탈린을 ‘전 세계의 가장 위대한 수령’ 김일성을 높이 모신 우호적인 소국(小國)의 지도자로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40년대 김일성이 일본을 쳐부순 스탈린에게 감사를 드렸다고 했지만, 이제 로동신문에서 반대로,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감사를 그렸다고 주장했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0년대 후반기 일제가 도발한 ‘하싼호사건’과 ‘할힌골사건’ 때에는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첫 사회주의국가를 옹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업적을 격찬하면서 이전 쏘련의 쓰딸린 대원수는 김일성 동지는 동방에서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 쏘련을 피로써, 무장으로 옹호하여주신 참다운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자이시며 공산주의운동의 귀감이시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로동신문 2012년8월 15일

김일성이 소련에 방문했을 때 스탈린은 이를 위한 건배를 제의한 적이 있었다. 요즘은 로동신문은 이 에피소드를 이렇게 소개한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공화국을 창건하신 이듬해에 이전 쏘련을 방문하시였을 때 있은 일이라고 한다. 그때 쓰딸린은 위대한 수령님을 환영하여 성대한 연회를 차리였다. 연회에는 당과 정부의 고위인물들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외교대표들도 참가하였다. 연회가 시작되자 쓰딸린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축배사를 하였다.

쓰딸린은 30대의 젊으신 국가수반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걸출한 령도자로, 위대한 영웅으로 높이 칭송하면서 우리 모두 열렬한 박수로 김일성동지께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리자고 하였다. 순간 연회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고 또 쳤다. 이윽하여 그는 “가장 젊으신 조선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건강을 위하여 잔을 듭시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최대의 존경심을 표시하였다.

로동신문 2012년 9월 11일

나아가, 북한 당국은 일본 제국 멸망이 연합군이나 소련군의 업적이 아닌 김일성의 소위 ‘조선인민혁명군’의 업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체로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조직은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로동신문에서 ‘일제를 쳐부순 김일성’에게 스탈린이 감사를 드린 글까지 게재하였다.

해방 후 어느 해 이전 쏘련을 방문하신 위대한 수령님께 쓰딸린 대원수는 연회석상에서 우리 모두 열렬한 박수로 김일성동지께 감사를 드리자고, 가장 젊으신 조선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건강을 위하여 잔을 들자고 하였다. 그것은 외교관례를 벗어난 최대의 존경과 가장 높은 칭송이였다.

이 사실은 청일, 로일, 태평양전쟁을 거쳐 피비린내 나는 악명을 떨쳐온 일본제국주의를 력사의 시궁창에 처넣으시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신 김일성동지이시야말로 걸출한 업적과 특출한 령도력, 고결한 품격과 뛰여난 자질을 지니신 희세의 위인이심을 웅변으로 력사에 전하고 있다.

-로동신문 2015년 4월 13일

스탈린은 무시무시한 독재자였지만, 김일성에게 구원자나 다름없었다. 1940년에 김일성이 만주국 탈출하고 스탈린의 소련에 망명을 받은 것이었다.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가 된 것도 스탈린의 결정 때문이었다.

김일성은 일생에서 많은 사람들을 배신하였고, 스탈린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5년 스탈린이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임명했을 때 김일성이 단순하고 믿을만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결국 그렇지 않았다. 독재자를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 교훈이 다시 한 번 드러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