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의 미래와 한반도 운명에 부쳐

김정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김정일 사망 후 여러 각도에서 북한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겠지만 핵심문제는 향후 ‘김정은의 운명’이다. 왜?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을 이어받은 ‘수령의 후계자’이다. 당총비서, 국방위원장, 최고사령관의 후계자가 아니라 수령의 후계자이다. 수령은 영도자이다. 그래서 ‘영도자 김정은’은 인민군 대장 자격으로도, 당중앙군사위 명령서로도 통치가 가능하다.


김정일도 김일성 사망후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북한을 통치했다. 수령의 자격(후계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미국과는 물론 다르고 중국과도 한참 다른 이 개념을 이해해야 김정은의 운명, 북한체제의 운명을 짐작할 수 있다.


당직(당총비서), 국가직(국방위원장), 군사직(최고사령관)은 북한을 통치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다. 북한을 통치할 수 있는 충분조건은 당과 인민의 영도자(지도자)이다. 따라서 먼저 ‘수령의 후계자’가 되어 북한의 당과 인민을 ‘영도하는 지위’를 갖는 것이 배타적으로 중요하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당총비서직이다. 당총비서직은 당과 인민에 대한 영도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로(수단)이다. 국가직(국방위원장)은 좀 심하게 말하면 물려받지 않아도 그만이고, 한참 있다가 물려받아도 북한을 통치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아직도 이 부분을 모르거나 적어도 혼동하고 북한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당총비서직은 개정 당규약 21조에 따라 김정은이 추대될 것이다. 또 22조에 따라 군사분야의 전반적인 문제를 지도하는 당중앙군사위위원장직은 당총비서가 갖는 ‘당연직’이다. 많은 언론들이 앞으로 ‘김정은이 어떤 지위를 차지할 것이며, 권력 승계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관심을 갖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으로 김정은의 권력승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승계를 하면서 북한당국이 어떤 종류의 선전을 할 것이며, 어떤 행사를 통해 승계할 것이냐만 관심거리일 뿐이다. 언론은 권력 승계가 순조롭게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의 문제에서 떠나야만 비로소 속칭 ‘야마’를 바로 잡게 된다. 


언론은 사안의 핵심 초점(焦點)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올바른 보도를 할 수 있고, 그것이 정론이 된다. 그렇게 해야 대한민국의 앞날과 북한의 미래, 한반도의 미래를 향해 올바른 여론형성을 할 수 있다. ‘멍청한 언론, 투미한 언론’으로는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요즘 영향력 있는 언론사가 종편에 올인하는 바람에 이 문제가 한국사회의 바른 여론 형성에 간접 영항을 미치고 있다. 유능한 기자들의 능력이 분산되고,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다.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언론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이는 일종의 사회적 재난이 된다).    


북한의 권력 승계 문제와 관련하여 앞으로 초미의 관심거리는 당 조직비서(조직지도부장) 자리다. 김정일의 후계자 시절이 바로 ‘조직비서 시절’이다. 김정일은 조직비서 자리를 통해 김일성을 이어 당과 인민의 지도자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김정일이 당총비서가 된 다음에는 조직비서 자리가 아직도 공석이다. 말하자면 김정일이 겸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김정은은 ‘영도자’이기 때문에 조직비서가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총비서로 바로 가야 한다. 그래서 조직비서 자리를 비워두느냐, 아니면 채우느냐, 누구를 채우느냐, 어느 시기에 채우느냐, 이것이 관심이다. 이것이 파악되어야 북한 권력의 실세와 권력 판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권력승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가장 중차대한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김정은의 영도력’이다. 이것이 의문이다. 김정은의 영도력에 북한의 미래와 2400만 인민의 운명이 걸려 있다. 이 문제에 향후 대한민국 대북정책의 좌표가 걸려 있으며, 한반도의 미래가 걸려 있다. 미국과 중국이 아무리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희망’한다 하더라도 북한 내부에서 발생할 문제까지는 ‘관리’할 수가 없다. 


모든 문제는 자기 내부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은 조금만 역사인식을 가져도 알 수 있다. 수학으로 치면 방정식, 인수분해에 해당한다. 중국이 아무리 김정은 체제의 붕괴를 막고 싶어도 북한 내부에서 터져나오는 수많은 모순들의 폭발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고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아무리 커진다 해도 김정은의 새 지도부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김정일이 직접 한 말이 있다. “미제(美帝) 간첩 열 마리보다 내부에 스며든 소련 개(스파이), 중국 개 한 마리가 더 위험하다”.(참, 김정일스러운 표현이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에 미칠 영향력은 한정된 경제분야이며, 주로 북한의 대미(對美) 대한(對韓)방패역을 하면서 외교적으로 지원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상 · 정치 분야에서 간섭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리고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의 노선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다 떨어진 주체의 깃발과 선군사상을 이어갈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2012년 신년공동사설은 온통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위대한 김정은 영도자를 전당 전군 전국이 무조건 결사옹위하자”는 내용으로 도배를 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김정은 체제는 내부에 친중파가 생겨서 이들이 북한 새 지도부를 이끌어갈 가능성이 있다” 운운하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현 시기 김정일 사망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1948년 한반도 북쪽 지역에 김일성 정권이 수립된 후 63년간 지속된 계급독재·수령독재 체제가 김정일의 사망으로 곧 종언을 고할 것임이 분명해졌다. ‘김정은 체제가 지속가능한가, 아닌가’를 묻는 사람은 북한의 기아(飢餓)문제를 따지기 전에 자신의 ‘역사인식의 기아문제’부터 먼저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김정은의 권력은 더이상 수령주의가 가능하지 않다. ‘어버이 수령 김일성’과 (수령의 후계자)’김정일 장군님’으로 북한의 전체주의 수령체제는 현실에서 끝났다.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의 후계자인 ‘영도자’로 표현은 되었지만, 그가 ‘영도’할 수 있는 대상이 이제 별로 없다. 영도를 하려면 수령-당-인민대중의 수직체계가 유지되어야 무슨 ‘거느리고 이끌어 갈(領導)’ 게 아닌가?


김정은이 영도할 인민대중은 시장에 가있다. 지금 북한은 함경도 양강도 자강도 평안북도 주민들은 거의 시장을 매개로 하여 먹고살고 있다. 주민들의 머리 속에는 자신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는 ‘어머니 당’ ‘어버이 수령’의 존재는 벌써 사라지고 흔적도 없다.


이제 김정은은 평양에 사는 일부 특권층을 ‘영도’할 수 있을 뿐이다. 이 특권층도 김정은과 이해관계로 묶여 있을 뿐 사상적 동지로 묶인 것은 없다. 지도자와 동지 관계가 아니라, 거래관계일 뿐이다. 물론 이들마저 모두 사라질 가능성은 없지만, 만약 이들도 사라지고 나면 김정은이 영도할 사람들은 없어진다.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개, 소, 닭 등등이 남게 되면 이들을 영도해봤자 김정은은 영도자가 아니라 ‘축산업자’가 된다.        


물론 김정일도 인민대중을 제대로 영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민대중을 상대로 한편으론 거짓 프로파간다를 하면서, 한편으론 극심하게 두들겨패면서 ‘영도’했다. 김정일의 죽음도 인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열차 안에서 죽은 것처럼 프로파간다를 했다. 너무나 빤한 일인데, 이런 낡고 오래된 구공산주의 프로파간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언론과 ‘지식인'(遲識人 아는 것이 늦는 사람들)이 있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주민들은 김일성 사망후 17년을 생사를 넘나드는 악조건 속에서 기어코 살아남아 이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모든 가치 있는 것이 그러하듯이, 사람들은 고생하며 스스로 성취한 것을 결코 버리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김정은이 ‘영도자’가 되려면 1)시장과의 전쟁에서 이겨서 수령-당-대중의 수직 영도체계를 복원하든가 2)자신이 시장으로 옮겨가서 영도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김정은이 1)을 하려면 나라의 문을 잠그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숙청하고, 두들겨패야 한다. 2)를 하려면 개혁개방 지도부를 만들고 개혁개방 마스터플랜을 제대로 만들어서 모든 돌다리를 하나하나 두드리면서 건너야 한다. 물론 2400만 인민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김정은의 영도를 따라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김정은은 둘 다 불가능하다. 1)을 하자니 나라의 문을 다 잠그고 사람들을 다 죽일 수도 없고, 2)를 하자니 지금의 인민들은 김정은을 무조건 따라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김정은 체제는 형식과 내용에서 오래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이며, 여기에 앞으로 권력 내부에서 터져 나올 문제, 시장화 진행에서 불거질 군(軍)의 불만과 내부 갈등, 쌓이고 쌓인 인민들의 불만 등이 ‘스물 여덟살의 영도자 김정은’을 포위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필자의 칼럼에서는 주로  ‘김정은의 운명과 한반도의 미래’를 다루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목적은 대한민국의 대북전략을 올바로 세우고 올바른 여론형성을 하기 위해서이다.  


13년 전 김대중 정부는 “지금 북한의 상황은 개혁개방으로 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우리가 도와주면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나갈 수 있다”고 진단하고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이 어설픈 진단과 시기상조의 판단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았다. 


햇볕정책이 가져다 준 후유증이 지금은 북한보다 남한에 더많이 남아 있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이전의 한반도 분단관리와 평화공존 대북정책에서 지난해 8.15를 기해 평화통일로 조정한 것은 비록 늦었지만 옳은 방향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대북전략의 큰 노선은 ‘개입(engagement)’과 ‘확장(enlargement)’이 되어야 한다. ‘개입’과 ‘확장’의 카테고리는 1)정보 2)경제(시장) 3)정치 4)군사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 칼럼부터 다룬다.


김정일의 사망은 시간적, 공간적 의미가 매우 깊고도 크다. 지난 60여년간 묶여 있던 한반도의 질곡을 풀고, 한반도의 진보, 아시아 공동체의 진보, 그리고 세계시민의 자유, 민주주의, 평화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걸림돌 하나가 제거되었다. 다만 사람들의 눈에 이것의 중요성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게 반드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데일리엔케이는 본격적으로 ‘김정일 이후’를 준비하라고 수차례 권유했고 그 방향도 제시하였다.


그런데 어제 조선일보에 “정부, 남북관계 완전히 새로 짤 기회”라는 기사가 나왔다. 남북관게 새로 짤 기회라니? 김정일이 1차 스트로크로 쓰러진 지 3년이 넘었는데, 아직 정부는 ‘김정일 이후 대한민국 대북전략’ 플랜을 안 짜놓았다는 말인가?


국민들은 김정일이 사망하면 정부가 당연히 이후 프로그램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기자들이 “향후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면, 정부는 “우리는 오래 전부터 김정일 이후 프로그램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하면 된다”고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일정 기간 지나 북한이 진정되면 ‘김정일 이후’ 플랜을 진행할 것이라는 답변이 ‘당연히’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남북관계 완전히 새로 짠다니?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린가? 정부가 그동안 김정일 이후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말이 아닌가? 이러고도 공무원들이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고 자식 공부시키고… 도대체 국민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는가?


우리는 왜 맨날 임진왜란 때처럼 관군(官軍)은 어디가고 의병(義兵)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해야 하나? 북한인권운동하는 젊디젊은 청춘들이 추운날 거리로 나서고 밤새워 일을 하는데, 우리 정부와 국회는 북한문제 하나 제대로 못다루는가? 왜 다른 나라들이 다하는 북한인권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는가?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과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정말 버리고 또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참담한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