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 선거 치르는 ‘은둔의 왕국’ 부탄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은둔의 왕국’ 부탄에서 24일 왕정 종식과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는 첫 총선이 실시됐다.

25일 부탄 선관위는 “전체 유권자의 80%가 선거에 참여해 총 47개 하원의석 중 44개 의석을 부탄통일당(DPT)이 차지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DPT는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왕정시절 두 차례나 총리를 지낸 지그미 틴리가 주도하는 정당으로, 틴리 전 총리는 공화제로 전환된 부탄에서 다시 한번 총리직에 오를 수 있게 됐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작은 왕정 국가이다. 면적 4만 7000㎢, 인구 214만 명의 불교 국가인 부탄은 정당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왕정 국가였다.

1999년 처음으로 인터넷과 TV사용을 허가했을 만큼 현대화를 거부해온 은둔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장된 도로나 전기, 병원 시설이 없었으며 물건을 구입한다는 개념보다는 물물 교환을 거래의 주요 수단으로 삼아왔을 만큼 낙후한 국가였다.

부탄의 민주화가 독특한 것은 국왕이 앞장서서 이 같은 여정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부탄의 국왕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28). 그는 미국 명문 사립학교인 필립스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와 정치학을 공부했다. 2006년 12월 왕위에 오른 그는 “절대군주제를 버리고 입헌군주제로 바꾸겠다”고 약속했고, 마침내 그 약속을 지켰다.

국왕은 선거를 앞두고 “이번 총선은 정당들 간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데 그 역사적 성과가 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총선에서 경쟁한 국민민주당(PDP)과 부탄통일당(DPT)은 상대 당을 ‘칭찬’하는 발언들이 이어지는 이색적인 선거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국민들 역시 이번 선거에 거는 기대가 크다. 투표소가 문을 열기 전부터 친구와 줄을 선 교사인 탄딘 왕모(28)는 로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부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어 설렌다”고 말했다.

선거 규정상 출생지에서만 투표를 하게 함으로써 국민들은 먼 고향땅을 다시 찾는 흥겨운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부탄 타임스’는 “올 해 나이가 65세인 체왕 데마씨는 투표를 하기 위해 14일 동안 600Km를 걸어 고향인 트라시양체를 찾았다”고 전했다.

물론 부탄의 민주화가 무조건 위로부터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990년에는 민주화 시위가 발생해 정부군이 무력을 사용 진압한 적도 있다. 당시 네팔족과 구르카족 등 소수민족은 왕정의 종족차별정책 타파와 왕권 축소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해 왔다.

그러나 국민들 대다수는 여전히 왕정에 대한 미련이 강하다. 이번 총선에 나선 후보자들조차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왕정복고주의자라고 부르고 “선거를 치루는 것은 가슴이 찢어질만큼 비통한 일”이라고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국민들 중 일부는 투표를 하는 이유로 “단지 존경하는 왕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인구의 60%가 티베트계인 부탄은 1959년 중국에서 티베트 폭동이 발생하고 중국 정부의 유혈 진압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는 사태가 빚어지자 중국과 국교를 단절하였다. 그러다 1984년부터 국경교섭을 다시 시작, 1998년 국경평화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부탄은 비동맹중립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1949년 국고보조금을 받는 대가로 외교권을 인도에 위임하는 인도-부탄 우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외교·경제정책을 인도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