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투하 62돌…무게 4t 리틀보이 위력은?

1945년 8월 6일 새벽 2시. 미국의 B-29 폭격기는 서태평양 티니안 섬 기지를 출발해 일본 히로시마로 향했다. 그로부터 6시간 뒤 오전 8시 15분경 히로시마는 원자폭탄 리틀보이의 폭격으로 시커먼 잿더미로 무너져 버렸다.

미국은 3일 뒤인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 팻맨을 떨어뜨렸고 이후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써 1945년 8월 15일 태평양 전쟁은 막을 내렸다.

지름 71㎝, 길이 3.05m, 무게 4t의 폭탄 덩어리가 히로시마 도심 상공 580m에서 터졌을 때 반경 2㎞내의 건물은 거의 모두 파괴됐고 도시 60%가 새카맣게 타버렸다.

당시 34만2천의 히로시마 인구 중 폭심지에서 1.2㎞내에 있던 사람 중 50%가 즉사했고 그 해 말까지 모두 14만 명이 사망했다.

또한 나가사키에서는 24만 인구 중 3만5천명이 즉사하고 이후 7만 명 이상이 숨졌다. 현재까지 원폭 피해로 숨진 사망자 수는 25만여 명에 달하고 생존자 역시 화상, 기형출산, 암 등 후유증으로 시달렸다. 원폭 피해자는 일본 군국주의의 희생자이자, 인류가 만들어내 최악의 무기인 핵무기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6일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 된지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핵무기가 폭발한 날이다. 이날도 원폭 투하 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히로시마 평화추모공원에서는 피폭자들의 넋을 기리는 열기가 뜨거웠다.

핵의 위험성은 1986년 체르노빌에서도 재현된 바 있다.

1986년 4월26일 옛 소련 땅 우크라이나에서 원자로 사고가 터진 것이다. 수도 키에프에서 북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체르노빌에 있는 4기의 원자로 가운데 하나가 폭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300배나 되는 방사능이 유출됐다. 이로 인해 12만 5천여 명이 방사능 피폭에 따른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300만 명 이상이 각종 질환을 앓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핵폭탄은 여전히 한반도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위력적인 핵무기 몇발로도 한국 인구의 4분의 1이 살고 있는 서울을 일순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무기를 북한은 개발하겠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고, 국제사회는 만류하기 위해 각종 혜택을 내놓고 있다.

북한 김정일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김정일 정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통일이 되면 핵무기는 우리꺼야’라는 철없는 이야기가 핵을 가지고 국제사회를 협박하는 김정일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