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이제 北인권 위해 일어서자

▲ 지난 해 6월 명동성당에서 열렸던 ‘북한의 신앙자유와 6.25 순교자 현양을 위한 특별 기도회’ ⓒ데일리NK

1998년은 가톨릭교회 2천년 역사상 가장 부끄러우면서도 자랑스러운 해로 기록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황청의 고해’라는 문건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역사상 처음으로 잘못된 과거사를 참회,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회와 고백의 핵심은 히틀러의 나치독일 치하인 1940년부터 5년 동안 다카우와 아우슈비츠라는 집단 수용소에서 약 4백만명의 신부, 목사, 지식인들과 약 6백만명의 유태인들이 독가스실에서 집단으로 죽어갈 때 가톨릭 교회가 침묵을 지켰다는 데 있다.

그들이 불가마속 잿더미로 사라지며 인종 말살극이 진행될 때 가톨릭교회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고, 인간존엄과 인간 생명의 위대함을 부르짖지도 못했으며, 방관자처럼 침묵하고 지켜만 봤다.

나는 금년 3월 22일 이곳 로마 성 베드로성당 앞 광장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을 알현해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북한의 인권과 종교의 자유 문제가 절박합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독일의 나치시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황님과 가톨릭교회와 한국 가톨릭교회의 음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북한의 인권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주셔야 할 절정에 와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교황님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시며 지극히 감동스러우면서 동감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잔악한 종교탄압과 공개처형, 정치범수용소를 통한 인종말살이 이 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가 있다. 그곳이 바로 북한이다. 북한에는 강철환 기자가 증언하는 것처럼 3대가 함께 투옥되는 요덕정치범수용소가 존재하고, 60년간에 걸친 철저한 종교탄압과 처형, 병마와 굶주림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인류 최악의 인간 죄악과 비극인 2차 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도 북한 땅에서는 이러한 참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계속 침묵하고 있으며, 그들은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다.

바티칸 ‘나치학살 방관’ 참회

박해와 굶주림과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죽어간 사람이 식량난이 극심했던 1995년부터 1998년까지 3년 반 동안만 해도 약 350만 명이나 된다. 황장엽 씨도 증언하기를 그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 중에는 정예 공산당원들도 약 5만명이나 포함됐다고 한다. 지난 60년간 고질적인 식량난과 기근으로 희망과 꿈도 없이 죽어간 영혼들까지 포함하면 독일에서 죽어간 6백만 유태인의 숫자를 능가할 것이다.

‘교황청의 고해’라는 세기적인 문건이 발표된 지 2년만인 2000년 3월에 한국 가톨릭 교회도 ‘쇄신과 화해’라는 이름의 참회록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참회록 3항과 4항에 추가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집단’과 ‘2천만 북한인민’은 분리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관한 언급이 빠져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김정일에게 참된 회개와 참회의 날이 하루 속히 찾아오고, 목마르게 기다리던 종교의 자유, 인간의 존엄과 인권이 북한 동포들에게 주어져야 하며, 그 바탕위에서 남북간 민족의 참된 화해와 일치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추가해야 할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화해와 일치의 대상은 2천만 북한 동포들이다. 김정일 공산정권은 그 대상이 아니다.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보아도 북한 김정일 공산정권은 회개와 소멸의 대상일 뿐이다. 4항에는 남한 사람들의 인권과 복지 문제에 대한 노력이 부족함을 반성하고 있지만, 북한 동포들이 60년 동안 짓밟혀던 인권과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우리들의 ‘무관심과 무력함’에 대한 반성이 빠져 있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한국 가톨릭의 화해 대상은 2천만 북한 동포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순교한 3명의 주교, 84명의 평신도 등109명의 순교자를 포함해 수많은 수도자와 평신도들의 마지막 행적과 참살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해온 것에 대해서도 반성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한국가톨릭교회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북한의 조선 천주교인협회 장재언 위원장에게 115억이 넘는 돈을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예비적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침묵의 북한교회가 죽음의 교회로 바뀌고 있을 동안 거의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고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화해위원회의 북한지원이 계속되는 동안 장충성당은 내가 방문했던 16년 전(1990 평양 IPU 총회참석)보다 오히려 더 죽어가, 어둡다 못해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미사전례도 사라지고 공소회장 차성근(율리오)도 제거,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톨릭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탄압과 참살은 교회의 지원이 있기 전보다 오히려 더욱 가혹해진 것이다.

북한 2천만 동포들은 화해와 용서와 사랑과 협력의 대상이다. 그러나 김정일과 그의 정권은 회개와 해체의 대상이다. 가톨릭교회는 2천만 형제자매들의 편에서 정의롭고도 복음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공산독재자들과의 화해와 일치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도 아니고, 성모님이 원하시는 것도 아니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최고의 가치요 교회의 존재 이유”로 말씀하시는 인간존엄, 인간생명의 정신에도 합치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일어서야 한다. 북한 땅에 메아리 칠 수 있도록 더 크게, 더 힘 있게, 담대하게 소리 높여 기도해야 한다. 세계를 향해서도 당당하게 북한 동포들의 비탄과 통곡의 기도를 전파해야 한다. 절망의 질곡에서, 질병과 굶주림에서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믿고 마지막 희망과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어야 한다.

역사에는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이 말할 때다. 세계는 순교의 피로 103위 성인을 탄생시킨 한국 가톨릭교회를 지켜보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 명성이 높았던 명동성당을 기억하며 한국 가톨릭교회를 지켜보고 있다.

북한 동포들의 인권과 종교의 자유, 북한교회의 재건을 위해서도 한국교회가 더 이상 침묵할 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그리고 훗날 크게 후회하기 전에…

김현욱/ 천주교 북한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기도회 회장(전 국회의원)

※ 7월 12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던 ‘제4회 북한인권국제대회’때 발표됐던 연설문을 요약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