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손님 위해 온반 준비’ 김정숙 여사 모습을 바라보며…

김정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마중나온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와 인사하고 있다. 2018.9.18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김정숙 여사가 친히 청와대 참모들에게 평양온반을 대접했다고 한다. 청와대 대변인실에 따르면, 설날에 먹는 떡국 대신 “평양에서 오실 손님을 생각해 온반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문득 “손님”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국어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아봤다. 손님은 “다른 곳에서 오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전해지면서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학수고대하는 마음에서였을까? 김정은을 향해 높임말까지 깍듯이 써가며 청와대의 의중을 전한 듯하다. 대통령의 부인이 김정은을 가리켜 ‘오실 손님’이라 표현한 것이나, 청와대 대변인실은 마치 대단한 일인 양 언론발표까지 한 게 못내 거북하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김정은은 평양에서 오실 손님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다른 곳에서 오는 사람을 높여 부른다는 ‘손님’으로 그를 맞이할 수 없음은 그가 결코 높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정숙 여사의 온반 사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다. 언론기사를 찾아보니 지난 2016년 설날, 양산집으로 찾아온 모 일간지 기자에게 평양온반을 대접했다고 한다. 당시 인터뷰 기사에는 문재인 전 대표가 실향민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똑같은 온반인데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실향민의 애환을 담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평양에서 오실 손님을 생각하는 의미가 담겼다니 그저 아이러니하다.

대통령이 실향민이라면 명절이 얼마나 가슴 미어지는 아픔의 시간인 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고향 땅을 밟았으면 하는 실향민과 탈북민은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북녘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 생각에 명절만 되면 죄스럽고 한 맺힌 마음 때문이다. 탈북민은 명절이면 삼삼오오 모여 평양온반이 아니라 두부밥과 옥수수 국수 등을 나눠 먹으며 그나마 설움을 달랜다. 그들에게는 여럿이 함께 있어도 가슴 사무치도록 외로운 날이 바로 명절이다. 그런 명절에 실향민과 탈북민의 슬픔을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독재자를 기다리며 음식 정치를 하니 그저 기가 찰 노릇이다.

김정은의 폭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의 안위를 생각해서 탈북민은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평양에서 오실 손님을 생각하며 온반을 준비했다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 탈북민은 어떤 존재인지 묻고 싶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자 신(新) 이산가족으로 살아가는 탈북민들이 우리 곁에서 그토록 아파하며 눈물짓는데 정작 그들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먼저’라며 그리도 외치던 자들이 여러 사람을 해치는 단 한 사람에게만은 왜 그리도 관대한지 잘 모르겠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김정은이 마치 “평화의 전령사”라도 된 듯하다. 환한 미소를 짓는 김정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교육용 교재는 그를 최고의 지도자로 미화한다. 그동안 우리가 북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악마화’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북맹(북한 문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소리친다. 평양 려명거리의 즐비한 아파트와 택시, 평양 시내에서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사회주의 지상낙원이 저편에 존재하는 양 호들갑을 부린다.

‘평양시민’과 ‘북한 인민’이라는 말로 구분되듯 평양 밖에는 또 다른 북한이 있다. 말 그대로 김정은이 독재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인권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런데도 평양에서 오실 손님을 오매불망 기다린다는 그들은 분명 우리네 삶과는 다른 시간대를 사는 것 같다. 사람들은 아파하는데 한쪽에서는 홀로 높은 자리에 앉아 만세를 부르라 하고, 또 한쪽에서는 그를 평화의 사도로 칭송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 했는데 정작 사람은 없다.

핵을 가진 채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김정은 정권은 달라진 게 없는데 마치 평화로운 세상이 도래한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권력에 눈멀어 분단을 악용하는 ‘김정은 바라기’가 되는 건 아닌지. 평화팔이를 하며 ‘당신들의 평양, 그들만의 평화’는 아닌지 되묻고 싶다. 가짜 평화는 아름다운 고문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혹하다. 김정은의 독재가 변하지 않는 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인권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 땅에 평화는 없다. 그 열쇠는 김정은이 가진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그를 상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바보야 문제는 정은이야.”

굳이 사족을 하나 달면, 북한노래 중에 <기다려다오>라는 곡이 있다. 중국에서 김일성과 함께 조국광복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김정숙은 1937년 양강도 신파 나루터를 통해 다시 국내로 들어온다. 북한 문헌을 살펴보면 당시 김일성은 김정숙에게 조국에 돌아가 군자금을 마련하고 신파군(현재 김정숙군)에서 지하혁명조직망을 확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김정숙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김일성의 귀환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노래가 바로 이 곡이다. 가사 중에는 “오산덕에 백살구꽃 만발할 때에 장군님을 모시고서 돌아가리라. 기다려라 기다려 기다려다오 광복의 그날 오면 다시 만나자”는 구절이 있다. 탈북민들은 이 노래를 “장군님 대신 부모님”으로 “광복을 통일로” 개사해서 부른다. 통일의 그 날이 오면 고향 땅에서 부모님과 재회한다는 절박한 소원을 노래에 담은 것이다. 명절이면 함께 모여 눈물로 부르던 이 노래가 불현듯 생각났다. 김정숙은 김일성을 생각하며 노래를 만들었고, 또 다른 김정숙은 김정은을 생각하며 온반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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