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김정은 판문점행, 핵보유국 지위 굳히려는 의도”

[주간 北미디어] 北 매체, 美 굴복 인상 줘 내부 주민 결속…제재 해제 기대감 높아질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호응해 판문점으로 향한 것은 미국이 북한에 굴복하고 있다는 인상을 줘 흔들리고 있는 내부를 결속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3일 데일리NK·국민통일방송이 진행하는 ‘주간 북한미디어’ 분석에서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은 ‘최고영도자 동지께서와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우리 측 지역의 판문각 앞에까지 오시어 다시 한번 손을 잡으심으로써 미국 현직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 영토를 밟는 역사적인 순간이 기록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태 전 공사는 “지금 김정은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핵무기를 완성하니 트럼프가 싱가포르와 하노이에 이어 판문점에까지 찾아와 만나자고 애걸복걸하는 듯한 모습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려 하고 있다”면서 “이번 판문점 상봉 후 아마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도 조만간 풀어주겠구나’하는 기대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특히 태 전 공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제안에 김 위원장이 즉각 호응하고 나선 것은 ‘뜻밖’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김 위원장이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최근 미국이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또다시 생각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지만,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다’고 언급한 것과는 어긋난 행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하노이 회담 후 미국과 북한의 입장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김정은이 세 번째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미국이 계산법을 고쳐야 만나겠다’고 한 약속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태 전 공사는 또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다녀온 뒤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여러 정상에게 김정은의 의중을 전달하는 중재 역할을 한 상태”라며 “적어도 시진핑으로부터 각 정상들을 만난 정형을 통보받은 후 다음 걸음을 옮기는 식으로 체면은 세워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시진핑의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움직인 것을 보면 시진핑의 방북 당시 많은 것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제재를 해제하지 않고 지금의 대화와 제재 병행 전술을 유지할 것이고, 중국도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북한에 많은 경제원조를 하지 않게 되면 결국 힘들어지는 것은 북한 주민들뿐”이라면서 “남과 북의 주민들이 평화로운 환경에서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평화의 시대, 통일의 시대로 가려면 김정은이 핵무기만 포기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핵무기를 포기하면 미국이 공격할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외부위협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지켜줄 사람은 오직 김정은뿐’이라는 인식을 주민들에게 심기 위한 목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주장이다.

한편, 그는 이번 판문점 회동에서 하노이 회담 당시 북측 협상팀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박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에 이어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 외무성 통역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에 주목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본보는 앞서 지난 4월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당 조직지도부에 대미·대남 부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 대한 비판과 처벌을 통해 통일전선부의 사상을 검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한 바 있다. 이밖에도 일부 국내 언론은 이들이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을 지고 혁명화 조치를 받고 있다거나 지방으로 추방됐다는 등 다양한 ‘설’을 제기했다.

태 전 공사는 “하노이 회담 실패의 원인을 왜 밑의 사람들에게 넘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물론 수령절대주의 국가에서 수령이 회담 실패의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언제나 수령과 대중은 운명의 공동체라고 주장하는 북한에서 일이 잘못되면 밑의 일꾼만 처벌하는 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미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다음은 태 전 공사의 분석 내용 전문]

안녕하십니까. 태영호입니다.

지금 세계는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미북 정상의 깜짝 만남에 대해 ‘비핵화의 시계’, ‘평화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고 환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30일 아침 트윗을 통해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만 해도 김정은이 절대 판문점으로 내려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김정은이 4월 12일 시정연설에서 ‘최근 미국이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또다시 생각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지만,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의 근본 방도인 적대시정책 철회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으며 오히려 우리를 최대로 압박하면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물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중시하지만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완전히 합의해야 제재를 풀어주겠다’고 하고 있고, 북한은 ‘단계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합의하고 이행하자, 낡은 영변을 내놓을 테니 제재를 풀어달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결국 김정은이 세 번째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미국이 계산법을 고쳐야 트럼프를 만나겠다’고 한 약속과 다른 것입니다.

또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방법이 국가의 정상으로서 무게 있게 제안한 것도 아니고, 트윗으로 약간 놀음끼가 보이게 ‘실현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라는 식이어서 과연 북한의 최고 존엄이 위신 없이 응하겠느냐는 생각도 했습니다.

더욱이 최근 북한을 방문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오사카에서 진행된 G20 정상회의에서 여러 정상에게 김정은의 의중을 전달하는 중재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김정은이 적어도 시진핑으로부터 각 정상을 만난 정형을 통보받은 후 다음 걸음을 옮기는 식으로 시진핑의 체면은 세워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판문점에 내려왔습니다.

김정은이 왜 판문점에 내려왔을까 하는 의문이 잘 풀리지 않고 있었는데, 1일 노동신문을 보고서야 그 의도가 짐작되었습니다.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들의 보도 내용을 보니 김정은의 목적은 비핵화 과정을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북한에 굴복하고 있다는 인상을 줘 흔들리고 있는 북한 내부를 다시 결속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언론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께서와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우리측 지역의 판문각 앞에까지 오시여 다시 한번 손을 잡으심으로써 미국 현직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 령토를 밟는 역사적인 순간이 기록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을 북한 언론이 크게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당시 중국 언론은 닉슨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려 중국 영토에 첫발을 대던 장면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닉슨의 중국 방문을 ‘백기를 들고 찾아온 방문’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을 고립시키려던 미국은 중국의 수소탄 실험 성공(1967년) 이후 ‘중국과 싸울 필요가 없다’며 닉슨독트린을 발표(1969년)했고, 먼저 중국을 찾았습니다(1972년). 김일성의 발언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신이 핵무기를 완성하니 트럼프가 싱가포르, 하노이에 이어 판문점에까지 찾아와 만나자고 애걸복걸하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주려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김정은을 만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양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번 판문점 상봉 후 북한 주민들 속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제재도 풀어주겠구나’라는 기대감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전에 만나자고 제안하니 김정은이 오후에 내려온 것을 보고, ‘바쁜 쪽은 김정은이다’, ‘김정은이 시진핑의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움직인 것을 보면 시진핑 방문에서 많은 것을 얻어내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제재를 해제하지 않고 지금의 대화와 제재 병행 전술을 유지할 것입니다. 시진핑이 미국 눈치를 보면서 북한에 경제원조를 하지 않게 되면 결국 힘들어지는 것은 북한 주민들뿐입니다. 남과 북의 주민들이 진정 평화로운 환경에서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살 수 있는 평화의 시대, 통일의 시대로 가려면 김정은이 핵무기만 포기하면 됩니다.

‘핵무기를 내려놓으면 미국이 공격한다‘는 북한의 주장은 미국이라는 외부위협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이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사람은 김정은뿐이라는 인식을 북한 주민들에게 심어주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미국이 왜 북한을 공격하겠습니까?

그리고 노동신문을 보니 하노이 회담 때 나왔던 김영철, 김혁철, 박철, 김성혜에 이어 통역이었던 신혜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외부에서는 하노이 회담조가 비판을 받고 혁명화를 갔다느니 지방으로 추방되었다느니 하는 소문이 많이 돌고 있습니다.

하노이 회담 실패의 원인을 왜 밑의 사람들에게 넘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수령절대주의 국가에서 수령이 회담 실패의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언제나 수령과 대중은 운명의 공동체라고 주장하는 북한에서 일이 잘못되면 밑의 일꾼만 처벌하는 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북한 노동신문의 모든 제작은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지도를 받는다. 때문에 노동신문을 통해 북한 정권이 의도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과장과 선전의 거품을 제거하고 들여다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동향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데일리NK·국민통일방송은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와 노동신문 중 특색있는 기사에 대한 분석을 통해 북한의 속내와 민낯을 파헤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