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법 한국영토 내 규정 철폐해라

조영황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9월 25일 돌연 사의를 밝혔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서로 상이한 인권에 대한 견해, 그리고 인권위 운영에 대한 의견 차이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인권에 대한 위원들의 견해차가 매우 심해 북한인권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발표가 계속 지연되어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의사 표시가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상식적인 입장에서는 초등학교 학생의 일기장 검사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는 의견을 발표한 인권위가, 극심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북한의 상황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 혹은 이와 관련해 위원들 간에 내홍이 극심하다는 것 자체가 사실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또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에 아직 존재하는 각종 인권침해와 차별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견해들도 내놓는 인권위의 모습과, 한마디로 직무유기가 아니냐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권위의 행태에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본말전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北인권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태도

그러나 필자는 인권위 내에 본말전도가 일어났다는 판단에 대해서는 아직 유보적이다. 그것은 국간인권위원회법에 인권위가 다룰 대상을 크게 둘로 나누어 하나는 인권분야와 다른 하나는 차별분야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 곳곳에 아직도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차별은 북한인권문제와 같이 거칠고 폭력적이기 보다는 꾸준한 개선이 요구되는 분야로서 당연히 지엽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차별개선과 같은 세부적 접근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한반도에서 가장 대규모로 그리고 가장 야만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이다.

한 예로 지난 9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탈북한 동생을 만났다는 이유로 현재 공개처형의 위험에 처해있는 양심수 손정남(48)씨를 구출해 달라는 동생 손정훈(42)씨의 청원을 각하했다. 그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기관(국정원, 통일부, 외교통상부)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정보수집의 한계”를 느끼고 있고, 또 무엇보다도 “현재 법률상 북한주민에 대한 인권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룰만한 그 어떤 법률적인 제도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정책을 지상명령으로 받들고 있는 부처들의 태도는 노무현대통령의 친김정일 정책으로 보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법률의 미비’로 북한인권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루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태도는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당치 않은 주장인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인권위는 지금까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한 기존의 법률을 개정 내지는 폐기할 것을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 사형제, 양심을 내세우는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제 등이 그것이다. 만일 법률이 미비하여 북한인권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룰 수 없다면 인권개선을 위해 법률개정을 요구해야 할 텐데 그런 소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자의적 해석에 적당한 구실 찾기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조에 “이 법은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적용한다”는 조항이 있다. 다른 한편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는 북한 주민의 지위에 대해 “외국인이면서 동포이며 준(準)외국인 수준의 특수한 법적 지위를 가진다”고 정의해 헌법상 대한민국의 미수복 영토인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를 한국영토 내의 외국인 인권차원에서 거론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듯 보인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현 참여정부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동등한 위치에서의 정부로 인정하고 북한체제 자체를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로서는 더 이상 손정남(48세)씨의 문제를 정부차원에서는 제기할 수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쯤 되면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공식적 언급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한다는, 그리고 어느 경우에나 적당한 구실을 댈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영토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자행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범죄를 다룰지 말지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기관이 이런 식의 자의적인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한 국가의 정상적인 기관이 아니다. 만일 사법부나 검찰, 경찰이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업무영역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고 생각해 보라!

예를 들어 사법부는 중대한 범죄에 대하여 판결을 내릴지 말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검찰은 범법자를 기소할지 말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경찰은 범인을 잡을지 말지에 대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게다가 이런 공권력 기관의 장과 핵심간부를 정치적으로 임명한다면? 더욱이 현 정권의 과거사 밝히기의 핵심 영역중의 하나가 과거 정권이 사법부와 검․경을 권력의 시녀로 삼아 인권탄압을 자행 혹은 방조했다는 것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이 임명하는 역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모두가 정부의 대북유화정책에 맞추어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공식적 언급을 억제하여 왔고, 나아가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 예를 들어 언필칭 햇볕정책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6자회담 성공을 위해, 남북화해를 위해 김정일의 야만을 방치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취임한지 불과 한 달밖에 안 된 조영황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한겨레신문의 기획의원인 홍세화씨가 찾아가 아무런 주저 없이 “70~80년대 납치·고문·살인 등 이 땅에서 인권이 참담하게 유린되던 시기에는 권력 편에 서거나 침묵하고 경제성장을 말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북한 인권을 주장합니다. 흥미로운 일이지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독립기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이라면, 홍세화씨와 같은 정치적 편견을 그 자리에서 부정하고 나왔어야 할 것이다. 홍씨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오류임을 말할 것도 없지만, 현재 북한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지난 정권들과는 정치적으로나 나이 상으로도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모를 리 없으면서 말이다. 즉 북한인권에 대한 공식적 언급을 정치적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와 여권, 친여언론에서 그것을 반대하는 인간들인 것이다.

북한인권 상황 정기보고 의무화 해야

김정일 정권의 인간성에 대한 범죄를 방치했을 경우, 인간의 가치와 존엄 자체에 심각한 회의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엔이나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 등은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인권선언을 하고 있다. 즉 김정일정권과 정상적인 인간을 나눌 필요가 제기된 것이다. 하물며 같은 동포의 입장에서 인권주무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침묵한다는 것은 북한동포에 대한 범죄행위를 방조함은 물론, 그 자체가 한국인의 야만성을 인정하는 모욕적 자해행위인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난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은 의도적으로 방조하고 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인권향상을 위하여 노력한 정권으로 국민에게 비치는 한편,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공식 언급 자체가 마치 정치적 행위인 것처럼, 따라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여러 의견이 가능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생존권이 인권보다 더 중요하다느니, 민족공조가 자유보다 더 중요하다느니, 아니면 외세에 대항하기 위하여 김정일정권의 인권유린은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 있다는 궤변들이 그것이다. 야비하다면 지난 정권들보다 훨씬 더 야비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필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없애자는 주장은 친북좌파세력의 함정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차별현상개선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또 다른 주요임무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필자는 인권위 자체를 폐지한다거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나 위원들의 개인적,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느니, 다음 두 가지가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 확립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첫째, 대한민국 국민과 한국영토 내의 외국인에 한정된 업무범위의 제한을 철폐하고,
둘째, 한국 내의 한국국민의 인권상황, 외국인의 인권상황, 북한동포의 인권상황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그 상황과 개선 정책을 보고할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첫째는 인권이 국경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가치로서 대한민국도 선진국이 되려면 이제 더이상 국내의 문제에만 시선을 돌릴 것이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의 인권상황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국가”란 ‘국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독립성에 기반 해 가장 권위있는 공식기관’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이유는 이제 북한인권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할 것인지 여부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차라리 그 개선을 위하여 다양한 의견을 구하는 것이 더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영황국가인권위 위원장의 사의는 이처럼 정치화되기 쉽고 또 이미 정치화된, 따라서 독립기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근본취지와도 배치된 현 상황이 빚어낸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