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백 칼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절망·고통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

평양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북한 주민들이 참배하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 함경북도 청진에 한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라남 도자기 공장 운전수로 이름을 걸어 두고, 휘발유를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이것저것을 팔아 가계에 보탰다. 아이는 안타깝게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부모는 아이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가 일을 했다. 집에서 혼자 노는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궁리 끝에 시장을 떠돌던 아들 또래 꽃제비(부랑아)를 데려와 아들을 돌보게 했다. 어느 날 아들이 방 벽에 걸려 있던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부수고 말았다. 3대 위인(김일성, 김정숙, 김정일)이 그려진 달력을 가위로 오리고, 잘랐다. 아들과 함께 놀던 꽃제비 소년이 보위부에 신고했다. 보위부가 들이닥쳤을 때, 쓰레기통에는 부서진 초상화와 갈기갈기 오려진 초상 달력이 담겨 있었다. 그날 밤, 가족은 사라졌다. 인민반장도 가족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한 달 후, ‘사라진 가족은 최고 존엄 모독과 국가 전복음모죄로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최근 함경북도 청진 소식통이 데일리NK에 보내온 소식이다.

함경남도 요덕 수용소에도 한 가족이 있었다. 수용소의 규칙 때문에 네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생활했다. 수용소에 온 지, 반년이 되던 어느 날, 한자리에 모여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부모가 열심히 일해 ‘표창’을 받은 대가였다. 다음 날, 근로 시간이 됐는데도, 가족들이 근로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수용소 관리원이 집에 찾아갔다. 일가족 네 명은 방안에서 죽어 있었다. 아버지가 부인과 자녀 둘을 목 졸라 죽인 후, 자신은 흉기로 목을 찔러 자살한 것이다. ‘정치적 문제로 수감됐기 때문에 바깥 세상으로 나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에 절망하고, 관리소 생활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자살한 듯 하다’는 소문이 수용소에 돌았다. 수용소 당국은 ‘죽을 죄를 지은 것을 살려준 은혜도 모르고 반역행위를 했다’며 비판했다. 가족의 시체는 신속하게 처리됐다. 지난 8월 함경남도 소식통이 보내온 소식이다.

두 사건은 북한에 여전히 정치범 수용소가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가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 당국은 지난 5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열린 북한 인권에 관한 보편적 정례검토(UPR)에서, ‘북한에는 정치범이나 정치범 수용소라는 표현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 주민이 바깥세상에 숨죽여 가며 전해오는 소식은 북한 당국의 주장이 명백한 거짓임을 증명한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최종 보고서에서 8만 명에서 12만 명에 달하는 정치범이 적어도 4개의 대규모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고 밝혔다.

최근,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이달 말 뉴욕에서 열리는 제74차 유엔총회에 제출한 ‘북한 인권 상황 보고서’에서, ‘북한에 여전히 정치범 수용소가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으며, 수많은 정치범들이 최악의 여건 아래 수감돼 있다’고 밝혔다. 퀸타나 보고관은 또 북한 정부에 ‘관리소’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청했다. 국제감시단이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방북을 허용할 것도 촉구했다. 특히, ‘북한의 인권 상황에 개선의 조짐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평화 회담에 인권 문제가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이번 보고서에서 지적된 북한의 인권 문제들이 향후 평화 협상에 포함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세상에는 매일 수많은 문제가 쏟아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영국의 브렉시트, 강제징용 배상문제, 한국경제침체, 조국 장관후보자의 자녀 부정입학, 북미 비핵화협상 등, 모두가 중요한 문제다. 자연히 많은 사람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안타까운 것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 문제가 우리의 눈과 마음에서 멀어져 있다는 점이다.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철저히 폐쇄된 국가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고, 고통과 절망을 이기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이 문제 만큼 해결이 시급한 문제도 드물다. 다만, 철저히 폐쇄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노력으로 그들이 하루빨리 풀려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