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폭파사고로 남편 죽었는데”…비행사 아내 집단 항의, 왜?

김정은 1호 편지 받은 아내만 군관 배치·평양 소환에 반발..."안 될시 합당한 대우 해달라"

김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4월 평양방공을 책임지는 공군부대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최근 전투기 공중 폭파사고에 희생된 제2항공 및 반항공사단(공군 제2사, 함경남도 덕산) 소속 비행사 아내들이 부당한 처우 개선을 호소하면서 간부 부장(장교 인사부장)에게 집단 항의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12일 데일리NK 군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 10일 2015년 당시 사고로 사망한 212호 비행사 차영일의 아내 리 모 씨가 인민군 소좌 군사칭호를 부여받고 인민무력성 사적관 강사로 임명돼 평양으로 소환된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같은 부대에서 폭파사고로 희생된 비행사 아내 5명이 바로 당일 저녁 6시 간부 부장 사택 주변에 진을 치고 있다가 귀가하던 부장에게 몰려들었고, 급기야 몸싸움까지 벌어졌다는 전언이다.

그렇다면 2015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차 비행사는 훈련 중 비행기 동체 결함으로 폭파사고로 전사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필로 된 위로의 편지를 그의 아내 리 씨에게 내려보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편지에서 차 비행사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아들을 당(黨)과 혁명에 무한히 충직한 사람이 되도록 잘 키우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최고사령관의 편지에 공군2사 정치부, 간부부에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로의 뜻만 있는 것 같았지만, ‘밑에서 알아서 이 가족을 잘 돌봐줘야 한다’는 지시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그들은 아내 리 씨를 바로 군관으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리 씨 나이가 30대 초반에 불과했고, 또 2살배기 어린 아들을 키워야 하는 처지였다. 때문에 아들이 7살 학교 갈 나이가 된 올해 간부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져나왔다. 차 비행사보다 먼저 폭파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10여 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리 씨의 ‘평양 소환’ 소식에 바로 집단행동을 취한 셈이다.

간부 부장은 일단 ‘차별성’을 거론했다. “1호(김 위원장) 방침 대상자(차 씨)와 여러분은 처지가 다르다”는 점을 내세웠다. 또한 “아이들은 모두 혁명학원(남자-만경대혁명학원, 여자-강반석혁명학원)에 들어가는 배려를 받지 않냐”라면서 그나마 최선을 다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이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군관을 못 시켜줄 거면 합당한 대우를 해달라” “전투비행사 공급 노르마(공급기준량) 만큼이라도 배급을 줘야 먹고 살 것 아니냐” “안 되면 중앙당에 청원편지를 올리겠다”는 요구조건을 내세웠다고 한다.

결국 공군2사 간부부에서는 이런 항의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는 형태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한편 이번 집단 항의 사태는 이웃 주민들에게 삽시간에 퍼졌다. 이에 일부 주민들은 “비행사에게 시집가면 가문이 팔자 고친다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최고지도자 눈에 안 들면 그냥 젊은 과부가 되는 건데 그걸 누가 바라겠냐”는 식으로 당국의 처사를 비판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