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강정구-이종석의 私카르텔

▲ 왼쪽부터 송두율, 강정구, 이종석

강정구 교수는 2001년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생가인 평양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남겼다.

북한을 연구한 학자라면 만경대 정신이 김일성 사회주의 혁명정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강정구 교수는 바로 김일성의 정신을 이어받자고 호소한 것이다.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글귀는 국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으나 진보인사내에서는 확실한 눈도장이 되었다. 북한이 인정하는 확고한 통일인사가 된 것이다. 통일인사 서열에 있어 북한당국의 인정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이런 남북관계의 생리를 잘 아는 정부당국자나 진보인사들은 북한당국의 인정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장사로 치면 2001년 만경대 발언으로 강정구 교수는 돈벌이를 톡톡히 한 것이다.

강정구, 親北발언 막아줄 정치세력 믿고 있을 것

필자가 보기에 강정구 교수는 만경대 사건처럼 정치적 손익계산과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줄 강력한 정치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6.25는 통일전쟁, 맥아더는 민족의 원수라는 도발적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지금 재연되고 있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높아지고 검찰의 구속수사가 추진되자 강정구 교수 구출 작전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청와대 핵심인사와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의 공개발언, 여권의 물밑 작업은 결국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꽃(?)을 피웠다. 검찰의 독립과 중립성이 사라진 허울좋은 민주적 통제라는 명분을 씌워서 말이다.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는 북한관련 자료를 찾던 중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인 이종석씨의 정치학 박사논문을 보게 되었다. 이 논문은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로 93년 6월에 제출되었다. 이 논문의 심사위원 명단에 강정구 교수가 있었다. 두 사람의 특수관계가 그곳에 담겨 있었다.

90년대에 국내 일부 북한학자들 사이에서 북한연구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었다.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알려진 송두율씨의 내재적 방법론에 대한 강정인 교수의 비판으로 시작된 논쟁은 강정구, 이종석, 김연철 등 몇명의 학자들의 참여로 이어졌다.

당시 송두율, 강정구, 이종석 등 진보학자들은 반공반북의식과 자유민주주의 입장에서 북한을 연구한 기존 연구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며 제대로 된 북한연구를 위해서는 북한사회가 설정한 이념과 논리에 따라 분석하고 평가하는 내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즉 북한체제의 입장에서 접근하자는 것이다.

이종석, 강정구 감싸기 나서나?

이렇게 이들의 인연은 깊고 깊은 사이다. 송두율, 강정구, 이종석 등은 학문적 동지, 스승과 제자로 불리기도 한다.

국민들의 사법처리 요구와 규탄의 목소리가 높은 이때 강정구 교수에 대한 이종석 사무차장의 심정은 어떠할까. 학문적 입장과 대북외교 정책의 강력한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이들에게 한쪽의 위기는 자신의 위기로 다가온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위기의식과 생존본능, 강력한 사적관계의 작동은 공정하고 균형있는 처사를 흔들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이종석 사무차장의 영향력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주변으로부터 듣고 있다. 만일 이종석 사무차장이 위기의식과 개인적 관계를 넘지 못하여 강정구 교수 구하기에 나서고, 이것이 탄력을 받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등 핵심인사들에게 강력하게 작동한다면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강정구 교수의 개인적 처신은 물론이고 이종석 사무차장과 같이 특수한 신분관계에 있는 공직자들은 공과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처신해야 한다. 음지에서 강력한 힘을 공공의 영역으로 파급시키고, 균형감이 사라진 사적코드의 판단력을 합법적 지위를 이용해 해결하려 한다면 결국 그 불행은 노무현 정부와 핵심 참모 당사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보이지 않게 움직인다고 하여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흔적이 반드시 남기 때문이다.

허현준 / 前 한총련 중앙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