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도 대물림…차마 잠들지 못하는 그곳 이야기

두만강 돌부리에 걸려 더 이상 떠내려가지 못하던 탈북자의 시체 사진을 기억하는가?

1994년부터 본격화되었다는 북한의 식량난은 1997년 무렵 우리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북한주민 300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한 대북지원단체의 주장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탈북자들의 사진과 함께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사진뿐만이 아니었다. 1998년 KBS에서 방영된 꽃제비들의 모습은 ‘어떻게… 저런 일이 생길 수 있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올 만큼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 후 시간은 흘러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 사이 남북관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편, 북한은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악의 축’ 국가로 국제사회에 낙인찍혔다. 지금도 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 문제가 국제사회의 큰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북한사람들의 비참한 삶의 환경보다 남북관계나 미국의 대북정책 등과 같은 것들에 관심이 더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다.

바로 그것을 깨우쳐주는 책이 출판되었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는 중국에서 북한난민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경없는 의사회’ 회원 2명이 기록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다.

책의 저자들은 계층과 출신지도 다르고, 서로 얼굴도 모르는 세 명의 북한난민들이 들려 준 공통의 이야기를 책의 맨 앞장에 기록하고 있다.

“그곳은 불평등을 제도화하고, 폭력을 조직적으로 행사하여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철저히 억압하는 나라이다

그곳은 신을 믿거나 체제를 비판하거나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배지를 달지 않으면 곧바로 강제노역에 끌려가는 나라이다

그곳은 상습적인 거짓과 밀고가 또 하나의 인간 본성이 되어버린 나라이다. 그곳은 외국에서 보내오는 인도주의적 지원이 굶어 죽어가는 주민에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위 관리들이 착복하고 당을 살찌우는 데 사용되는 나라이다

그곳은 바로 북한이라는 나라이다.”

한순간도 편히 잠들 수 없는 탈북자들

열다섯 살에 탈북해 인신매매, 매춘 등 온갖 성적고통을 받아온 김태금의 이야기에는 탈북여성들의 비참하고 처절한 사연이 담겨있다.

중국의 가난한 농촌 남자에게 팔려간 후 도망도 쳐봤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성적 노예로 농락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나마 남자들은 몸이라도 팔아 살아남을 기회조차 없습네다”라고 자신의 처지를 위안한다.

“나는 한번도 행복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박복열의 이야기는 북한체제가 북한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력을 어떻게 망쳐놓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탈북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경험했을 노동단련대의 끔찍한 실상이 기록되어 있다.

좋은 성분으로 그나마 중산층 생활을 영위했던 고신경. 그녀는 아들 한명과 심장병을 앓는 딸을 둔 엄마이다. 죽어가는 딸에게 사는 즐거움을 잠시라도 맛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북한을 떠났다. 다행히 한국에 도착한 딸은 수술을 받아 병세가 호전되고 있지만, 아들 일복은 북송되어 소식이 두절되었다.

이들을 이토록 비참한 상태로 내몬 식량난은 ‘김일성 절대주의’가 빚어낸 결과였다. 수령절대주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여 스스로 사고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들에게서 자유를 빼앗았다. 그리고 생존할 수 있는 수단마저 앗아갔다. 그렇기에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수령절대주의의 잔학성이 고발되어 있다.

할아버지가 국군포로이기 때문에 적대계층의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태금은 “북조선에서는 불행처럼 직업도 대물림을 받는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거라고는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숙 찬양뿐이었다”고 말하는 복열은 북조선 사람들이 생각이 짧고 견해가 얕은 건 복종하고 따르는 것만을 강요한 체제 때문이라며 북한에 태어난 것이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

태금, 복열, 신경. 이들은 이제 남한에 정착하여 편안한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지만 지금도 제대로 잠들지 못할 때가 많다. 강간당했던 일이 떠올라 혼자 흠칫 놀라기도 하고, 노동단련대에서 고문 받았던 상처가 욱씬거려 밤새 고통스런 신음을 뱉어야 했으며, 두고 온 아들 걱정에 눈물로 밤을 지새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아마 북한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을 탈출한 가족 생각에, ‘내일은 뭘 먹을까’ 하는 걱정에 말이다. 숨어 지내는 탈북자들 역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 공안 때문에 옷을 벗지도 못하고 새우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북한사람들이 맘 편히 잠들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앞으로 10년의 세월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고 지켜보고 있을 때 그 시간은 앞당겨지지 않을까?

이유미/대학생 웹진 <바이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