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외환딜러’ 인기직종 급부상

▲ 2002년 6월 발행된 北 오천원권

북한의 인플레이션 행진이 끝이 보이지 않게 계속되고 있다.

평양 암시장에서의 달러 시세는 ▲2003년 11월 1달러당 950원, ▲2004년 5월 1,245원을 기록했다. ▲올해 2월에는 2,200원, ▲5월 말 현재 2,630원이다. 최근 석달 동안에만 430원, 채 2년이 되지 않은 사이 3배가 뛰어 오른 것이다.

과거에도 북한 암시장에는 달러를 바꿔주는 환전꾼들이 있었다. 그러나 요새는 대강 흥정을 해 달러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환율정보를 교환하면서 적정 환율을 책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외환딜러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은행에도 돈 떨어져 중앙에서 타와야

최근 북한의 경제사정에 대해 중국을 방문한 북한 사사(私事)여행자를 통해 들어보았다. 북한에서는 공무가 아닌 개인적인 목적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사사여행자’라고 부른다.

지난 28일 중국 선양(沈陽)에서 만난 북한 사사여행자(비공무 여행자) 정현수(가명, 46세)씨는 “지금 북한의 공장은 20% 정도만이 겨우 가동중이고 이것도 국가적 투자가 있는 몇 개뿐”이라고 사정을 전했다. 정씨는 선양에 살고 있는 삼촌을 만나기 위해 정식으로 여권을 발급받아 국경을 건넜다고 밝혔다.

평북도 동림군 소재 지방 산업공장에서 설비지도원으로 일하는 정씨는 “7.1 경제관리 조치 이후에도 대부분의 지방 산업공장은 멈춰있고, 우리 군에서 제일 큰 ‘8.28 광산기계공장’도 채굴설비를 생산하는 몇 개 직장(생산라인)만이 가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 큰 공장들은 가동되는가?

“계획은 내려오지만 전기가 없고 생산에 필요한 자재도 없다. 게다가 행표(어음의 일종)는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다. 공장마다 갑작스레 독립채산제가 실시하여 자기 종업원들을 먹여 살리느라 바쁘게 되면서 현금을 구하거나 물물교환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 노동자들에게 식량과 돈은 어떻게 공급하는가?

“공장에서 물건이 나와야 식량을 바꾸겠는데, 쌀도 못 주고, 노임은 서너 달 밀렸다. 노동자들에게 줄 노임은 부기장(재정관리자)들이 은행에서 타오는데, 은행에도 돈이 떨어져 중앙에서 타와야 하는 식이다. 물가가 너무 올라 이젠 월급이 고작 1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정씨는 최근 북한에서 인플레가 극심한 이유에 대해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달러를 끌어모으기 위해 당국에서 무리하게 신권을 찍어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고있다”고 전했다. 북한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자 지금 북한에서는 ‘달러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확산돼 암달러상도 급증하고 있다.

고급 외환정보, 중국 통해 유입

평양시의 경우 <고려호텔>, <보통강호텔> 앞과 <류경상점>, <경흥상점>, <창광상점>을 비롯한 외화상점과 귀금속 수매상점 앞에는 ‘할일 없는 사람’처럼 늘상 서있는 외화장사꾼들이 목격된다. 신의주의 경우 <압록강호텔> 앞과 역전광장 외화상점 앞에 ‘딜러’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가만히 서있다 외국인이나 돈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가 “사려고 하는가, 팔려고 하는가?”하고 묻는다. 달러를 사려는지 팔려는지 묻는 것이다. 가격이 맞으면 ‘아지트’로 데리고 가 교환한다. 내놓고 장사하면 보안서나 보위부에서 단속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하는 ‘합리적인 환율’은 중국에서 핸드폰을 통해 수시로 전해진다. 국제환율이 0.1%만 뛰어도 금방 환율이 달라진다. 전산시스템이 미비한 북한에서는 외환정보를 알지 못해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달러대 원화의 조율이 안돼 딜러들과 다투는 모습도 가끔 목격된다.

일련번호 이어진 5000원권 돈 다발 들고 달려오는 某 기관

북한 인플레의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출장차 중국 단둥(丹東)에 나와 있는 평양 거주 화교 리우젠핑(劉建平, 가명, 48세)씨를 만나보았다. 그는 창광거리에 있는 모 국영상점을 인수, 매출액에서 7:3으로 이익을 나누기로 하고 장사를 하고 있으며 외환 교환도 해주고 있었다.

리우씨는 북한의 어느 무역회사가 매월 막대한 북한 원화를 달러로 바꿔가고 있다고 증언했다.

– 어떤 회사와 거래하고 있나?

“그에 대해서는 나도 정확히 말해줄 수 없다. 그냥 전화로 ‘○○무역관리국’이라고 하면서, 면담을 청한다고만 알려왔다. 이런 일은 북한과 상대하는 상인들끼리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에 주저없이 동의했다. 저녁 9시에 <보통강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나는 비서와 함께 호텔 로비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 그들과 어떤 협상을 했나?

“8시 50분이 되어 호텔 주차장에 들어선 벤츠는 ‘평양 50-000’의 번호판을 달았다. 50으로 시작하는 번호판은 평양택시사업소 소속인데, 북한의 기관 사람들이 은밀한 일을 할 때는 이런 차를 랜트해서 갖고 나온다. 인사를 나누니 그들은 비서를 내보내고 조용히 토론하자고 하더라. 협상내용은 매달 북한 원화를 줄 테니 10만 달러로 바꾸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 따른 사례와 내 장사에 필요한 투자환경을 담보 하겠다고 했다.”

– 그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나?

“처음부터 강요반(半), 의무반(半)으로 못을 박는 것으로 보아 그저 무역이나 하는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정부에서 혜택도 주겠다, 사례도 5%씩 더 주겠다고 하는 걸 보니 급(級)이 좀 높은 사람들로 보였다. 나중에 거래를 하면서 보니 그들이 가져온 돈은 오천 원권을 100장씩 묶은 다발이었고, 계산하기 쉽게 화폐번호가 쭉 이어져 있었다. 은행에서 통째로 들고오거나 화폐를 제조하는 곳에서 막 들고 올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춘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 실례지만, 그렇게 바꾼 북한 원화로 무엇을 하나?

“신의주에 사는 동생에게 그 돈을 주어 황해도에 가서 해삼과 금을 사게 하고 내가 중국에 들어가서 그것을 판다. 그렇게 벌어들인 인민폐로 다시 달러를 사서 북한에 들어온다.”

– 세관에서 달러가 통과할 수 있는 액수가 한정되어 있을 텐데?

“어차피 북한은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달러의 액수는 한정되어 있지만(1000달러),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달러는 액수나 출처를 문제삼지 않는다. 특히 내 여권은 보위부 외사국 소속 국가공무원의 신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세관을 통과할 때 세금면제는 물론이고 물품검사도 받지 않는다.”

‘장군님의 방침’ 걸고 화폐를 막 찍어낸다

리우가 거래하는 무역회사는 순수한 무역기관이 아니라 해외공작자금을 마련하는 기관으로 추정된다.

심각한 외화난에 처한 북한은 오래 전부터 무기판매, 마약, 위조화폐 등으로 외화벌이를 해왔다. 그러나 이런 고수익(?)사업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많은 구설수를 낳았다. 최근 핵문제 등으로 더욱 국제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무법적 외화벌이에 제약을 받게 되자 북한은 요즘 궁여지책으로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달러를 끌어모으는 데 진력하고 있다.

고위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노동당 통전부, 작전부, 대남사업부의 활동자금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매월 지급될 외화 전량을 조달하지 못하게 되자, 김정일은 통전부를 비롯한 대남부서들도 자체로 외화벌이를 해 자금을 보충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유력기관들이 손쉽게 달러를 벌 수 있는 방법은 해외에 내다팔아 달러로 바꿀 수 있는 개인 소유의 물건을 수집하는 것이 우선이다. 개인 소유의 달러를 시세 보다 높게 쳐서 끌어들이는 방법도 동원한다. 어떤 경로이든 북한 화폐를 자꾸 찍어내는 방법이 결부될 수 밖에 없다.

중앙당 35호실 산하 외화공작조는 주민들이 갖고 있는 골동품과 금, 달러를 주민들로부터 수집하기 위해 막대한 원화를 해당 국가기관에 요구한다. ‘장군님의 방침’을 걸고 하기 때문에 그를 저지할 만한 사람도 없다.

무절제한 화폐의 남발과 특수기관들의 ‘돈 장사’가 가뜩이나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북한의 인플레이션 불길을 부채질하는 기본 요인으로 되고 있다.

중국 선양(沈陽) = 권정현 특파원 kjh@dailynk.com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