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호 대표] “북한관이 보수-진보 시금석”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
1992년 8월, 수년간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겠다고 인천과 울산 등지에서 활동하던 한 청년이 좌파잡지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하고 공개적으로 노선을 전향했다.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이론과 인간관에 회의감이 들었다”는 그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며 당시 대표적 시민운동단체이던 <경실련>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오늘, 그는 ‘자유주의’의 깃발을 들고 다시 시대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제대로 된 자유주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 보수-진보의 기준은 여느 국가들과 다르다며 “북한문제에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가 하는 것이 보수-진보를 가르는 시금석”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뉴라이트(New Right)’라는 이름으로 주목 받고 있는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를 만나보았다.

몰락해가는 주식을 상종가, 유망종목으로 착각

– 어떻게 해서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연세대학교 81학번으로 입학했고, 우리 세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운동권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던 1980년에 고3이었는데, 우리 반 친구 중 한 명이 가져온 타임, 뉴스위크 등 외국잡지에 실린 광주의 상황을 보고 한국 언론매체에는 보도하지 않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1985년 입대했다가 1987년 제대하고 곧바로 인천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89년부터는 전국적 단위에서 노동자 정당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에 울산지역 책임자로 내려가 조직을 구축했습니다.”

– 민족문제를 우선시 한 운동권의 다수파 NL계열이 아니라 계급문제 중심의 PD계열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당시 북한에 대한 입장은 어땠습니까.
“당시에도 북한체제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주체사상 관련 서적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내용이 이상하고 엉성하다는 느낌뿐이었습니다. 특히 수령론이나 세습문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죠.”

– 90년대 초반에 사상 전향을 하게 된 것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보면서 입니까.
“꼭 그런 것 만은 아닙니다. 내면적 갈등은 학생운동을 하던 기간에도 있어왔습니다. 사실 당시 운동권은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주창되고 할 때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었죠. 이미 사회주의는 자체 모순으로 인해 몰락해가고 있었는데, 여하튼 사회주의권의 급격한 붕괴를 보면서 ‘그동안 국제적 시야도 좁고 참 편협하게 살았구나’하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어찌보면 한국 학생운동은 몰락해가는 회사의 주식을 상종가, 유망종목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거죠.”

우리 세대를 일탈시킨 건 ‘분단’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추진위 울산책임자였던 신대표는 당시의 고민을 ‘고백’이라는 글로 적어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줬는데 자신도 모르는 새 그것이 복사, 회람되고 잡지에도 실리게 되었다고 한다. 신대표의 글은 당시 이른바 ‘고백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본의 아니게 전향서 비슷하게 되어버린” 문제의 글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를 쓰고 ‘시민운동’으로 노선을 전향한다. <경실련>에서 신대표는 ‘통일협회’의 창립 등을 주도한다.

– PD계열의 운동권이었으면서 갑자기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노동운동을 정리하면서 보니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를 일탈시킨 요소가 ‘분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NL주사파의 급성장 요인도 청년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민족, 통일문제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굉장히 친북적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들었고, 여기에 대안을 제시해야겠다는 생각에 <경실련 통일협회> 창립에 참여했습니다.

– 지금 <자유주의연대>도 북한문제를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데, ‘자유주의’와 북한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저희가 종종 이야기하지만 한국에서는 한번도 자유주의가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분단과 반공 때문이었습니다. 분단 체제 하에서의 근대화는 개발독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선 산업화, 후 민주화’ 노선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서구의 근대화 과정과는 사뭇 다르죠. 그런데 여기에 대항한 한국의 민주화운동 세력은 ‘적의 적은 친구’라는 생각으로 사회주의를 신봉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자유주의가 설 땅이 없었죠. 지금 한국 사회 보수-진보는 구체적인 정책에 기반해 있기보다는 북한문제에 대한 입장에 따라 갈라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단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국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386은 반미친북을 민족화합이라 착각

지난 11월 23일 열린 <자유주의연대> 창립 기념 토론회에서는 과거 주사파로 활동했던 회원들이 지난 과거를 맹렬히 반성, 비판하고 “현재 열린당의 ‘386’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이러한 경향성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은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지금은 21세기이고, 우리도 많은 반성과 자책을 통해 변했는데, 이제 와서 과거를 들춰가면서 과거의 틀 속에서 논쟁하자고 달려드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신대표의 답변을 들어보자.

“지금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치지 않는다고 본질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열린당의 386의원들은 자신들은 바뀌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을 비난하고 북한을 감싸려는 경향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민족화합’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민족화합에는 적극 찬성하지만 그런 식의 화합에는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식인이라면 최소한 이중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아야 합니다. 남한의 개발독재에 대해서는 문제를 못삼아 안달인 사람들이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한 북한의 전체주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는 이런 ‘일관성이 결여된 자세’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당 의원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북한의 인권이나 체제문제를 이야기하면 남북화해와 평화가 흔들리지 않을까, 그래서 화해와 평화가 우선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그것이 DJ 햇볕정책 이론의 헛점입니다. 남북화해협력과 평화유지, 그리고 북한인권과 민주화문제를 양자택일의 문제인양 생각하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단세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레이건이 힘의 외교를 펼쳤지만 동시에 고르비와의 협상을 추진했고, 그러한 투트랙(two-track)외교가 소련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외교는 강온을 적절히 배합해 나가야지 무조건 한쪽으로만 나가려는, 그렇게 단순한 과정이 아닙니다. 한쪽으로는 ‘서로 잘해보자’고 손을 내밀면서도 또 다른 한쪽으로는 공작도 하고 체제 경쟁도 하는 것이 진영대결의 ABC입니다. 그런데 DJ 정부 이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들이 경도된 정책을 펼치면서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수구냉전’으로 모는 태도…. 이것 참 문제입니다.”

투트랙(two-track)으로 북한 대해야

–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과 유럽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북한 붕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단호하게) 난 ‘있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1990년대 중반에 김일성이 사망하고 식량난과 탈북이 이어지던 때 ‘조기붕괴론’이 대두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성급한 판단이었습니다. 경제가 파탄났으니 이는 정치체제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자유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지요. 북한과 같이 극도로 폐쇄되고 억압적인 사회는 경제 위기가 정치적 변화로 전이되는 속도가 굉장히 느립니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북한은 서서히 붕괴되어온 과정이고, 지금이야말로 본격적으로 북한 붕괴를 대비해야 할 때입니다. 잘못된 것은 조기붕괴론이지 붕괴론 자체가 아닙니다. 그런데 ‘북한 붕괴론은 엇나갔으며 지금도 가능성이 없다’니 이 얼마나 뜬금없는 주장입니까.”

– 북한이 급속히 붕괴되었을 때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 우려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김정일 체제 아래에서 2천만 동포들이 고생하고 있고 김정일 정권의 존재는 계속하여 한반도에 불안요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계속 안고 살 것인가, 설령 일시적인 경제적 부담이 있다 하더라도 기꺼이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이러한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순차적 변화’이지만 역사는 희망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희망입니다. 희망을 갖는 것은 좋으나 그것으로 인해 현실을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북한동포들이 고생하고 있고 김정일이 핵으로 세상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우선 바라봐야 합니다.”

희망과 현실을 착각해서는 안돼

– 김정일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혹은 북한 체제를 하루빨리 전환시키는 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하면 ‘그렇다면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련이 망할 때 미국이 소련과 전쟁해서 이겼나요? 사회주의 체제를 전환한 국가 중에 전쟁을 통해 강제로 바뀐 나라가 있습니까? 그런데 왜 갑작스레 전쟁을 이야기하죠?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게 마련이지만, 숱한 가능성 가운데 딱 한가지만을 집어서 그것을 빌미로 모든 가능성을 봉쇄해버리는 것은 대단히 문제 있는 태도입니다.”

–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유주의연대>의 향후 계획이 있다면?
“일단은 계몽운동부터 시작할 계획입니다. 정권 주도세력, 다수 언론, 심지어 교과서에 이르까지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고, 전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문제는 쏙 빠지고 민족화합, 통일지량 등 미사여구에만 함몰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교과서가 가르쳐주는 않는 북한의 현실을 알자’라는 취지아래 ‘新북한바로알기’운동을 여러 매체와 방법을 동원해 진행할 예정입니다. 햇볕정책의 허구적 논리에 대한 비판도 하고, 특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활발히 할 생각입니다.”

New Right 에서 New Light 로

– 그럼 단순한 계몽운동입니까.
“정책적인 대안도 분명히 내놓을 것입니다.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 또한 과거의 반공주의나 체제경쟁논리에 함몰되지 않은 새로운 대북정책을 제시하겠습니다.”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하자 친여(親與) 및 좌파 언론매체들은 ‘일본 극우파와 닮은 꼴’ ‘한국판 네오콘’이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일부 언론의 지지와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한 비판, 혹은 시샘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신대표는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증거로 알겠다”고 말했다.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남한의 권위주의 정권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잔혹한 북한의 전체주의와 맞서지 않는 지식인은 엉터리 지식인”이라는 단호한 이야기를 들으며, 뉴라이트(New Right)에서 북한 땅에 자유의 깃발을 펄럭이게 할 새빛 – 뉴라이트(New Light)가 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대담 • 정리 =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