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으로 소화하지 못할 독약은 뱉어야”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15일 남측에 보낸 통지문에서 “개성공업지구에서 우리가 그동안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측에 특혜적으로 적용했던 토지 임대값과 토지 사용료, 노임, 각종 세금 등 관련 법규들과 계약들의 무효를 선포한다”고 말했다. 북측의 임금 지대 인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나가라는 말이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6·15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6·15의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라고 했다. 그 동안 개성공단에 입주한 것은 북측의 특혜이지만 이명박 정권 하에서는 그런 특혜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도 달러 수입 창구이기 때문에 함부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우리의 판단을 겸연쩍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북한의 일방통행 외교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성공단 철수가 북한에게 한 해 최소 3400만 달러의 손해를 가져올 것이 분명한데 북한이 이렇게 강경 일변도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속셈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데일리엔케이는 신의주로 나온 평양시 외화벌이 관계자와 19일 전화통화를 통해 개성공단에 관한 북한 당국의 속내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 관계자와 나눈 개성공단 관련 부분 통화 내용이다.

-북한이 개성공단 계약 무효화 통지문을 보냈다. 북한에 달러를 공급하고 있는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서 북 당국이 이처럼 경직된 자세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성공업지구(개성지구)와 관련해 이미 2007년에 장군님(김정일)께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당 간부들의 말에 의하면 장군님께서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이 주는 독약을 보약으로 소화해 내야 한다’고 하시면서 ‘어차피 보약으로 소화 못할 독약은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동안 개성지구를 그대로 둘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지고 논의가 많았는데 명백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장군님이 독은 뱉어내야 한다고 말하면서부터 분위기는 바뀌었다고 한다. 외화 수입을 우리가 보는 (정치적) 손해 이상으로 보상하면 놔두고 그렇지 않으면 나가라는 것이다.

중앙당 내부에서도 개성지구 문제가 골치 아픈 것 같다. 대체로 ‘경제부분 일꾼들은 개성공단을 절대로 없애면 안 된다’는 쪽이고 중앙당 내부에서도 개성지구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말이 많은 것 같다.

-북 지도부가 개성공단이 독약이라고 생각할 만한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가?

개성공업지구쪽 일을 맡아보는 사람들에 의하면 지난해 12월달에 그곳 노동자들을 상대로 처음으로 조사를 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을 상대로 ‘앞으로 남조선 기업들에서 계속 일을 할 생각이 있는가? 왜 그런가?’ 하는 식으로 솔직하게 의견이나 들어보자고 물었더니 다들 정직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국에서 물어보는데 노동자들이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정치는 빼고 가자고 하니까 대다수 노동자들이 솔직하게 더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 나가고 싶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남조선 기업에서 일하면 먹는 문제도 해결해주고 또 일하는 환경도 좋다. 대우도 잘해주니 노동자들이 다들 여기서 더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이런 대답이 큰 화근이 된 것 같다.

이런 일이 중앙당에 보고되면서 노동자들이 남조선 기업들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고 황색바람이 단단히 들어가고 있다고 보고된 것 같다. 중앙당에서 힘있는 간부들이 ‘개성지구 때문에 숱한 사람들을 망친다’고 야단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니 경제일꾼들이 소리 내기도 어렵다.

-개성공단 폐쇄 여부와 관련 북 주민들의 생각을 알고 싶은데?

다른 지방 사람들은 개성지구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신의주 사람들이 무슨 개성에 관심이 있겠나. 세관 열고 닫는데만 관심이 있지. 개성지구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전혀 없으니깐 그저 미지근한 소문들만 돌 뿐이다. 그런데 평양은 다르다.

-평양과 개성이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가?

평양사람들은 개성지구 문제를 가지고 마치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떠들고 다닌다. 개성하고 가깝고 개성공업지구가 평양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서 그런 것 같다. 간부들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의견들이 대단하다.

평양시 주민들은 대다수 개성지구를 없애는 데 반대하고 있다. 평양 시장들에는 개성지구 물품들을 몰래 파는 전문 장사꾼들까지 있다. 그리고 여기서 흘러 나온 돈이 평양 간부들 뒷주머니로도 흘러가는데 왜 그걸 없애자고 하겠나? 그쪽(남한)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개성지구에 붙어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 이다.

-경제일꾼들은 왜 목소리를 내지 못하나?

경제일꾼들은 개성공단 문제를 우리(북한)와 미국과의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어차피 미국과의 관계는 해결해야 하고, 미국과의 관계만 풀리면 남조선 문제도 풀리겠는데 공연히 개성지구를 없애서 손해 볼 필요가 없다고 한다.

옛날부터 우리가 세게 나가야 외교에서도 큰 이익을 본다고 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안 좋다고 한다. 남조선에서도 이명박 패당이 들어서서 발톱을 세우고 미국도 로켓발사에 대해서 제재만 말하니까 그쪽 담당자들이 어디서 남조선하고 협력하자고 말이라도 꺼낼 수 있겠는가?

-앞으로 개성공단이 어떻게 될 것 같냐?

어차피 달러 문제다. 개성지구에서 보내온 외화가 우리가 보는 (정치적) 손해보다 더 크면 굳이 없애려 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요구를 못이기는 척 들어주기라도 하면 넘어갈 문제다. 그것은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