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 전작권 이양 대비 ‘안보공약’ 내놓을 때

▲ 주한 미2사단 CH-47 도하장비 운반장면

한국의 보수진영이 전작권 이양 문제를 둘러싸고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됐다.

한미연합사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최선인 점은 분명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바램대로 가주지 않고 있다.

전작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미국이 먼저 전작권을 가져가라고 요구할 수는 없으나, 한국 정부가 가져가겠다고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대환영인 것이다. 특히 9.11 이후 세계 정세가 변한 조건에서는 말이다.

한국의 보수세력 입장에서는 알 카에다의 테러보다 김정일의 남침이 더 위협적일 것이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를 통한 테러를 제1 위협요인으로 생각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김정일의 남침은 그 가능성도 높지 않거니와 당장 꺼야할 눈 앞의 급한 불도 아니다.

미국은 김정일 남침위협보다는 김정일이 핵물질을 테러집단에 수출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보수세력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첫 번째 지점이다.

게다가 미국은 이라크 문제의 장기화로 군인들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때문에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넘겨주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즉 필요할 때 주한미군을 한국에서 빼내 다른 분쟁지역에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미국은 전작권을 한국에 넘겨 줌으로써 주한미군 유지비용을 한국에 더 많이 부담시킬 수 있는 명분을 갖게됐다. 이것이야 말로 일석이조이고, 울고 싶은데 뺨때려준 격이다. 그래서 한국이 가져가겠다고 하는 시기보다 더 빨리 가져가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노무현은 정말 한심한 대통령이다. ‘전작권은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가져와야 하는 것이지, 전쟁 가능성이나 핵실험과는 무관하다’며 ‘현실적 조건’보다는 ‘이념적 자주’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사실 현재 전작권은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노 대통령 입장에서나 비자주적이지 국가적으로는 실익이 큰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런 측면에서 노 대통령은 한국의 국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복무하는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한국의 국익과 미국의 국익이 대립될 때 한국의 대통령은 응당 한국의 국익 편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무엇이 정녕 한국의 국익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대매국노’는 아니라 하더라도 전략적 이익에 ‘무지한’ 대통령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노 대통령은 최근 MBC 100분토론에서 ‘한국 방위의 핵심적 위치에 어떻게 남의 나라 군대를 둘 수 있느냐’며 배타적 자주국방의 관점을 드러냈다. 동맹과의 공동안보를 통한 방위유지는 누가봐도 한국에게 큰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허울뿐인 자주를 위해 실속을 모두 내다버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국익을 앞세우는 행위를 비난할 근거는 희박하다. 전작권 문제에 사활을 건다면 보수 진영이 작정하고 미국의 태도를 규탄하거나, 때론 반미 투쟁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승만은 한-미 상호 방위에 대한 미국의 확약을 따내기 위해 반공 포로를 석방하고, 박정희는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 철수 계획을 밝히자 핵무장 카드를 던져 반(半) 협박성으로 주한미군을 주저앉혔다. 한국의 역대 지도자들은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미국과 투쟁도 하고, 협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보수는 미국의 한반도 방위공약을 약화시키지 않는 목표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 진영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보수가 정권을 잡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반미투쟁이라도 나서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미국의 바지가랭이라도 붙잡고 늘어저야 하는 것일까?

이승만, 박정희는 정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보수는 재야일 뿐 안보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

노무현 정권도 전작권 반환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여기에 미국까지 동의하는 상황에서 이를 되돌리기는 역부족이다. 양국의 합의사항을 무력화시키는 운동이나 반미투쟁의 현실적 후과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보수 진영에서 내오는 유일한 방법은 한국의 정권이 바뀐 뒤에 미국과 재협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실현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한번 이양된 전작권을 미국이 다시 책임지라는 재협상을 미국 국민(의회)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의 대다수가 자기들의 자식이 외국에 나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을 찬성할 리가 없다. 이는 매우 당연한 요구이다.

아프간이나 이라크도 9.11 때문에 마지 못해 국민들이 양해해 준 것이다. 그러한 전쟁을 하지 않으면 미국에 더 큰 테러가 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민들은 전쟁을 승인해줬다.

대다수 미국 국민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전쟁에 말려드는 것을 싫어한다. 과거 한국 정부의 반 협박으로 전작권을 담당한 미군이 이미 덫에서 나온 조건에서 다시 말려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에 미국 정부가 나설 이유가 없다.

시효 미확정 요구도 현재로서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이양 시기에 까다로운 조건을 붙인다 해서 이양속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타임테이블 대로 이양을 추진할 것이다.

이제 작전권 이양은 한-미 양국 정부에 의해 기정 사실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전작권 이양으로 돈도 손해보고 안보 불안이 더 커졌지만 우리가 대통령을 잘못 뽑은 대가로 받아 들여야 할 때이다. 대신 보수 진영은 전작권 이양 이후에도 한-미 동맹이 유지, 강화될 수 있는 현실적 안보공약을 내놓을 때가 됐다.

하태경/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