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무모한 수소폭탄 실험 관전법

‘설마’가 현실이 됐다. 북한이 수소탄이라고 콕 짚어 명명한 4차 핵실험을 굳이 수소탄까지는 아닌 거 같다며 평가절하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더러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다. 결국 북한은 그동안 그렇게 핵 개발에 성공해 왔지 않은가.

핵 안보의 ‘피로감’은 그 지점에 있다. 사실상 한국은 별반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 그럼에도 추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핵보유국이 갖고 있는 피로도 못지않게 핵 약소국이 떠안아야 하는 무기력감이 더 현실적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북한은 끊임없이 전조의 시그널을 외부에 공개해 왔다는 점이다. 이미 2010년 5월 12일자 노동신문은 “핵융합 반응을 성공시켰다”고 발표한 바 있거니와 불과 한 달 전 작년 12월 10일 김정은의 육성으로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이 됐다”고 보도했으니 말이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지난 해 10월부터 불과 며칠 전까지 함경북도 풍계리 일대 핵 시설 부근에 수상한 굴착공사가 진행 중이라며 핵실험이 임박한 징후로 보인다고 조심스럽지만 꾸준히 관측해 왔다.

이제 남은 문제는 관련국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와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분석 정도다. 북한의 속내는 일관되다. ‘핵-경제 병진’을 통한 강성국가 건설. (‘강성국가’란 선대 ‘강성대국’의 김정은 버전이다.)

3대세습 후 김정은이 총력을 기울인 것은 당연히 권력 안정화였다. 고모부 장성택까지 잔인하게 숙청하며 자신의 집권을 공고히 해 오지 않았던가. ‘당의 유일영도 체계’에 대한 공개적인 집착은 김정은의 절박함과 처단의 공포가 담긴 조치였다.

외부인은 잘 몰라서 그렇지 ‘당의 유일영도 체계’는 누구도 예외 없는 북한 사회 통제의 주축이며 준거가 된다. 특권층 150만 명부터 일개 인민에 이르기까지 ‘수령의 명령’에 따라 일치된 행동에 일사불란해야 한다는 강령은 북한사회를 1인에 집중시키는 유일한 통로다. 그 노정의 끝에 4차 핵실험이 자리했다.

대외적 의미는 어떤가. 한마디로 수직적 핵확산의 종결점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독점적으로 누려왔던 절대 권한, 곧 자기들 외 그 누구도 핵무기를 보유해선 안 된다는 마지노선의 공통분모는 바로 수소폭탄이다. 이제 북한은 이 지점에 다다른 것이다.

북한 스스로 4차 핵실험이라고 말하지 않고 수소탄 실험이라고 밝힌 것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는 뉘앙스다.

중국의 대북 외교는 완전히 실패했고, 그런 중국에 북한 문제를 아웃소싱한 미국으로선 경제제재를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란 인식을 가져야 할 사건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이 대북방송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식의 징벌(?) 논의는 별로 중요한 고려사항이 못 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상황이란 거다.

최선의 대북 핵억지는 북한의 핵 의지와 노력을 최대한 더디게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라크, 시리아의 핵 개발 시도를 초기(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를 1981년 6월, 시리아 원자로 2007년 9월)에 과감히 독자적으로 폭격해 버린 이스라엘이 보여준 것은 보복이 아니라 상대의 핵 개발 의도와 능력을 분쇄하기 위한 결단이 어때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후세인의 핵 개발 계획은 20년 이상 지연됐다.

핵 개발은 그 어느 국가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다. 정작 폭격을 받은 이라크, 시리아는 피해를 당하고도 모른 척 해야 했다. 두 군데 예외적인 곳이 이란과 북한 핵이었던 거다.

핵 자원인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그것도 매장량 세계 2위라니) 핵 개발은 그저 시간과 돈의 함수일 뿐이다. 핵 기술 또한 고난도 첨단 테크놀로지가 요구되는 분야가 아니기에 기술장벽도 낮은 편이다. 더구나 북한은 언제나 공개적으로 핵 개발을 천명해 왔다.

국제정치 이론에서 말하는 핵 동기이론 등 온갖 이론적 이해도 북한 핵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그리 높지 않다. 일관되게 핵 보유를 추구하는 국가를 억제시킬 방법은 보상, 동기제거 등을 통한 관여(engagement)정책이었으나 북한에 대해서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가장 곤혹스러울 당사자는 중국이다. 이젠 수소탄까지 보유한 예측 불허의 북한을 이대로 용인하느냐, 미국과 같이 강력한 대북제재나 심지어 정권교체까지 고려하여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용단을 내리느냐.

이상적이기는 이참에 한국주도의 통일이 동북아 안정의 유일한 해법이지 않을까라는 공감대가 강대국 사이에 확산된다면 위기 속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동북아 안보지형도의 유일한 안정은 통일된 한반도에서 동북아 다자안보기구를 설치, 관리하는 거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외에는 유례없는 길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면 돌파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실패했지만 KEDO는 좋은 사례이다.

이제까지 북한의 미사일과 핵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평면적이었다. 안보리 결의와 규탄, 대북 경제제재. 그래서 바뀐 것이 있던가. 유일하게 북한이 가장 아파했던 것은 미국 재무부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자금에 대한 동결처리였다.

북한 핵 문제는 이례적이고 비정형적인 모습으로 확산일로 걸어 왔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핵 레짐은 갈림길에 들어섰다. 핵 원료와 핵 기술을 모두 보유하여 자체적인 핵 확산의 마지막 능선을 넘는 북한을 관리할 방법은 없다는 자괴감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북한이 이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굳이 조건부 성명,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관련 수단과 기술을 이전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선제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보인다.

물론, 과연 북한이 자체 비확산의 금지선을 지킬지 신뢰도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말이다.

북한의 수소탄 보유에 맞서 한국, 일본, 대만 등이 핵 보유를 표방하고 나서는 것은 미국과 중국으로선 최악의 상황이다. 물론 그것을 용인할 G2가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북한으로선 그 상황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동북아가 제2의 중동이 되는 것, 강대국이 모여 있는 동북아시아의 안보가 진흙탕에 빠질수록 운신의 폭은 넓어지게 마련이니까.

김정은 이후 북한경제가 악화일로를 걸었다면 오늘의 핵 실험은 한참은 유예됐을 것이다. 김정은식 경제관리가 성공적이라는 내부평가가 없이 무모한 핵 실험 강행은 일어나지 못했다.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핵 모험주의와 경제개선의 병행이라니. 말 그대로 핵 무력과 경제 병진건설의 현실화다.

5월 예정된 36년 만의 7차 당대회의 성공을 예견하는 축포는 정확히 김정은 생일(1월 8일)을 이틀 앞두고 울려 퍼졌다. 자꾸만 북한의 시간표는 거꾸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