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 망국을 향해가는 盧 대통령 경축사

우리에게 광복절은 무엇인가?

필자가 어린 시절, 매년 광복절이 돌아오면 주위에서는 주로 “해방의 감격”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국민 대다수가 바로 해방의 감동을 직접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광복 61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해방의 감격’을 실제로 경험했던 세대는 70세가 넘어가고 있다. 따라서 광복절 경축사도 굳이 광복절이 아니고 다른 때에 해도 상관이 없는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광복절에 계속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요구’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이 근자에 태평양전쟁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는 말은 들을 수 없다. 일본을 패망시킨 국가와 패망으로 해방된 국가와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해방을 스스로 쟁취하지 못했다면 다시는 망국의 길을 걷지 않겠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맹세를 하루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이 과거로부터 배울 줄 아는 사려 깊은 국가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상을 혼동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이제 을사보호조약(1905년)으로부터 100여년이 흐른 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지금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힘은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 경제력에서 세계 11위인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되었고, 한국군은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주변의 열강들도 과거처럼 한국의 운명을 쉽게 좌지우지 하지는 못한다. 어느 측면으로 보나 지금의 한국이 1세기 전의 조선과는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다. 심지어는 바로 100년 전의 상황이 지금과 흡사하다는 말조차 나온다.

그것은 비록 한국이 지난 60년 동안 ‘건국-한국전쟁-산업화-민주화’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지만, 현 정권이 이에 기여한 바는 전혀 없을뿐더러 1세기 전 집권세력의 무능과 독선, 오만을 빼 닮았다는 것이다. 일구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도 망하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국민의 우려가 정당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도록 모아 놓은 것이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주장은 그 자체로는 구구절절 옳은 듯 하지만 대상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진행형 위협인 북한은 일관된 신뢰관계?

이점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하여는 경축사에서 다음의 인용문들을 보면 된다.(아래의 문장들은 언급 대상을 직접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적절히 변형하였으나 문맥에 변화는 없다.)

“국민의 자존심도 중요하나, 감정을 자극해서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다.”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도 이제는 넘어서야 한다. 지난날 고통 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관용과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긴 시야로 지난날을 용서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과거에 대하여 진심으로 반성하고 다시는 과거와 같은 일을 반복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하게 증명해야 할 것이다.”

냉철한 국민이라면 첫 번째 문장은 ‘한미동맹’을 위한 것이고 두 번째는 ‘한일관계’요, 셋째는 ‘북한정권’에 대해 대통령이 발언 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요, 일본은 선린관계를 구축해야 할 인접국가이고, 북한정권은 6․25 침략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사상자와 이산가족을 남기고, 근자에는 자국민 300만을 굶겨 죽이면서도 재래식 무기, 핵과 미사일, 비대칭무기 등으로 한국을 ‘현재진행형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말과 후박이 전도되면 개인이건 국가건 망하는 길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 같은 발언을 전혀 다른 상대에게 사용했다. 노 대통령은 필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과 일본보다 북한정권과의 우호관계를 중요시 하고 있는 듯 하다. 서로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자존심도 억제해가며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야 할 대상은 북한정권이요, 과거의 잘못을 따져야 할 대상은 일본이요, 주권을 돌려받아야 할 곳은 미국이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하다.

대학(大學)에 “후하게 해야 할 자에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해야 할 자에 후하게 할 자 없다(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없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노무현 정권의 행태를 보면 어쩌면 그렇게 후하게 해야 할 상대를 박하게 대하고, 박하고 엄격하게 대하여 상대에게는 후하게 대하는 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본말(本末)과 후박(厚薄)이 전도되면 개인이건 회사건 국가건 간에 망하는 것이고, 바로 망국의 이유를 되새기고 다시는 그런 길을 걷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광복절에 대통령의 언행 상당수가 바로 망국의 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러한 것일까?

박하게 대해야 할 자에는 원래 자기 자신이, 후하게 대해야 할 자에는 자신에 대한 비판자가 속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광복적 경축사를 보면 여기서도 후박의 전도가 일어남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날 분열과 대결의 역사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나라와 국민이 하나로 통합된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과거 대결과 반목의 역사에서 비롯된 감정의 응어리는 씻어내야 한다.”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자주와 동맹, 친미와 반미 등 사사건건 편을 갈라 현 대한민국을 찢어 놓은 인물은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다.

“민주주의 원리의 핵심은 상대주의와 관용이다. 규칙에 따라 결론을 내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게임은 바로 진리의 상대주의에 있다. 집권당이 5차례 완패하여도 대통령이 ‘절대적’인 “역사의 민심”과 ‘상대적’인 “시류의 민심”을 구별하여 선거결과를 애써 무시하면서도 마치 국민을 상대로 훈화하듯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실로 참기 어려운 일이다.

한 인간의 말과 행동이 심하게 어긋날 때가 위험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이 격차를 한 숨에 만회하기 위해 어떤 무모하고 경솔한 행동을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지도 20% 대통령이라고 무시하지 말라. 언젠가 나도 뜰 날이 있다“고 집권당 대표에게 한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특히 대통령이 지난 3년 반의 실정으로 자신감보다는 콤플렉스에 잠겨 현실보다는 역사를 통치행위의 무대로 생각할 때가 더욱 그러하다. 우리 국민들이 경계하고 또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때이다.

홍성기/아주대 특임교수(철학박사)

홍성기(洪聖基)
-서울출생(1956)
-경기고, 서울대 독문과 졸업
-뮌헨대 철학석사
-자르브뤼켄대 철학박사(논리학, 동서비교철학)
-아주대 특임교수(현)
-주요논문 : <용수의 연기설><괴델의 불완정성 정리 비판>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