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비료도 제재대상이라 큰일”…식량난에 대북지원 움직임

함경북도 무산군 소
북한 함경북도 무산군 일대에서 소를 이용해 농사 중인 북한 주민 모습.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북한 당국이 모내기철을 앞두고 주민들에게 알곡 증산을 독려하고 있지만, 현재 북한 주민들은 비료 등 농업에 필요한 물품 부족을 호소하며 올해 농작에 걱정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대북 식량 지원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와 구체적인 움직임도 나오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함경도 지역 북-중 국경 인근에 거주하는 한 북한 주민은 8일 데일리NK에 “지금 농사를 해야 하는데 잘되지 않고 있다”며 “땅에 영양이 없어 비료를 써야 하는데 (비료가) 제재대상이 되니 큰일”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 북한 주민은 “지금 비닐 박막은 (중국에서) 들어오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비료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면서 “중국 세관에서는 비료가 화학물질로 만든 것이라며 이쪽(북한)에 못 들어오게 막고 있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 등 무력도발 이후 한국 정부의 대규모 비료 지원이 끊긴 데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무역거래가 어려워지고 외화수입이 줄어들면서 중국에서 값싼 비료를 수입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이렇듯 대북제재로 인한 농자재 수입 차질뿐만 아니라 만성적인 가뭄과 홍수 등 기상악화 상황까지 이어지면서 북한 주민들은 식량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발표한 ‘북한의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에서 “장기간의 가뭄과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온과 잦은 홍수, 농업 생산에 필요한 투입 요소의 제한 등이 작년 가을 작황에 극심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상기후 현상으로 지난해 수확량이 크게 줄기도 했지만,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가 비료와 농기계 등 농업 생산에 필요한 물품 수입까지 제한하면서 의도치 않게 북한의 식량 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올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도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 전망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국제구호단체들의 인도적 지원 움직임도 일고 있다.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은 지난 6일(현지시각) 북한 식량부족에 대한 긴급행동계획을 마련해 가뭄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 관개수 공급에 필요한 물펌프 15개를 긴급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국제구호단체인 한국JTS(Join Together Society)의 이사장인 법륜스님은 지난 3일 대량의 옥수수 지원을 위해 방북한 뒤 7일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통일부. /사진=데일리NK

한편, 우리 정부는 북한의 식량부족 사태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지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국제기구가 북한 식량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 같은 동포로서 인도적 차원에서 우려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식량(지원)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대북 식량 지원의 내부적 검토는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앞으로 관계기관 협의 등 여러 가지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현 단계에서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일각에서는 국제기구가 대북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함에 따라 정부가 대북 지원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의 실질적인 수용 여부가 관건이지만, 적어도 정부로서는 대내외적으로 인도적 지원 이슈를 꺼내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청와대는 7일 이뤄진 한미정상 간 전화통화에서 최근 발표된 유엔 WFP와 FAO의 보고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백악관은 “두 정상은 북한의 최근 진행 상황과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 달성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밝혔을 뿐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식량 제공 지지 발언 등 인도적 지원과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와 백악관 발표에서 미묘한 온도차가 드러난 가운데,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8~10일 방한 계기에 열릴 한미 워킹그룹회의에서 양국 간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