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나아가려는가?

김정은의 6번째 신년사가 공개되었다. 일제히 언론과 연구기관에서는 신년사 분석과 더불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전망과 함께 그동안 경색된 남북관계의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은이 2018년은 남북한 모두에게 의미 있는 해로서 북한의 공화국 창건 70주년과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러 민족사에 큰 획을 그어야 한다고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올해 신년사에는 김정은의 성격을 반영한 듯,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 변화를 보였다. 신년사 구성과 대외관계와 남북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주장과 제안을 구분하여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일찍이 올해 신년사는 많은 부분에서 예견된 것이 사실인 만큼 지난 5개의 신년사의 내용을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서의 입지를 국제 사회에 주장할 만큼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완성도를 달성한 것은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핵과 미사일을 가진 북한에 대해 미국은 동북아 안정을 해친다는 반면 김정은은 비로소 전쟁억지력을 가졌다고 한다. 이에 김정은은 평창동계올리픽을 기점으로 핵과 관련한 군축회담이나 6자회담과 같은 국제사회와의 협상이나 관계를 역으로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김정은의 정책적 지향은 신년사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국산화’의 용어접근법을 사용하여 분야별 성과와 과업을 제시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군사(핵) · 대외관계에서의 ‘국산화’ :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을 비롯한 미사일의 완성도를 상당부분 진전시켰다. 작년에 시험 발사한 것을 기초로 앞으로 최소 2번, 최대 5번 정도의 실험이 이어진 뒤에는 더 이상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는 소강상태에 이를 것이다. 더 이상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으로 핵과 미사일의 완성도를 달성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4월에서 5월 사이에 있는 한미 군사훈련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군사 분야, 특히 핵과 미사일의 국산화에는 1970년대 중국의 핵 실험에 대한 북한의 평가에서 그들의 의중을 알 수 있다. 중국이 1973년 6월에 5메가톤급(히로시마 원폭의 150배)의 핵실험에 빗대어 북한은 스스로 핵 실험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은은 ‘핵’을 국산화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일반국가의 수장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할 것이다. 또한 그는 ‘핵’으로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전쟁억제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협상카드를 하나 더 획득하게 되었다.

경제·사회분야에서의 ‘국산화’ : 경제 부문별 생산방식의 현대화와 품목의 다양화를 국산화로 이룩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철제철연합기업소의 무연탄 생산의 정상화는 국가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의 성과라고 하였고, 기계공업 부문은 뜨락또르(밭 가는 기계)와 화물차의 개선으로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기후에 농산물 수확에 덜 민감하도록 효율성을 높였다고 평가하였다.

경제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각 경제 부문별 성과의 원인이 과학기술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과 경제와의 관계는 교육과 의료분야와의 관계와 같은 원리인 것이다. 경제와 관련된 학술지인 경제연구와 학보(철학, 경제)에 지난 5년간 개제된 논문 수는 1,500편이 넘는다. 이 수는 다른 분야의 논문과 비교해 엄청난 양이며 대부분 과학기술을 통해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같은 환경의 요소로부터 경제 부문에 민감도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북한은 꽤 오래전부터 ‘핵-경제 병진노선’을 주장하며 군사 분야와 경제 분야의 발전을 동시에 지향하였다. 그러한 관점에서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핵’을 비롯한 군사 분야의 완성은 최강의 국가 방위력을 마련하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장군님과 수령님의 염원을 풀어 들인다는 대목에서 선대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업적으로 평가하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업적과 리더십을 보이는 분야는 경제 분야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핵을 보유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경제 분야의 성과는 국정지지율을 확보하는 데 필수조건일 것이다.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목표점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계획을 추진하고 완성하기까지는 가야할 길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은 전력공업 부문, 농업 및 수산업 부문, 기계공업 부문 등 생산에 필요한 기계 설비는 대체재를 통해 차선책을 마련하는 과정과 수정을 반복함으로써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혹은 이미 원재료(raw material) 혹은 핵심 부품을 대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대체재가 부재한 경우는 현대화된 기업소의 확대와 규격화는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결국 김정은은 과학기술을 기초한 양산체제의 구축과 국유시장의 확대를 통해 만족할만한 인민경제의 향상을 기대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정치 분야와 경제 분야의 ‘국산화’를 통해 계획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김정은은 비사회주의 현상을 경계하고 통제를 강화할 것임을 예고하였다. 군사의 내실화, 경제의 대체화, 정치의 통제강화는 ‘국산화’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으며 북한의 자생력을 기반으로 성과를 올린 현실에서 김정은은 대외관계에서 분야별 한계를 타개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북미대화의 포석은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개혁개방 전후에 중국의 모습과 유사하다. 문제 해결의 방식을 외주화(outsourcing)함으로써 기존의 방식을 부정하지(혹은 사장시키지) 않고 상대적으로 큰 부작용 없이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빗대어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 혹은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나아간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정말 북한이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나아가는 것인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발생한 시장지향적 경제정책이라는 지배적인 경제패러다임의 변화는 1980년대 후반에 사회주의 국가들의 드라마틱한 붕괴로 투영되었다. 또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포기는 국가와 시장과의 새로운 관계를 찾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중앙의 계획은 경제와 사회 발전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였고, 시장 경제는 실패한 사회주의의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노동당에 의한 정치적 통제의 종식이 갑작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재작동하고 적응하는 방식은 명확하게 다양하였다. 좀 더 시장지향적인 경제로의 적응은 동유럽국가들이나 구소련과 같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중앙집권적 특징을 보이는 국가들은 적게는  65% ~ 95%에 해당하는 국가 부분(GDP)에 있어 부분별 강력한 고통을 경험하였다. 한편 덜 엄격한 계획 경제시스템을 가진 폴란드나 헝가리의 경우에는 적응이 수월하였다. 이 국가들은 개혁의 많은 부분들이 이미 구소련의 영향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난 상태였으며 사적부문의 요소들이 이미 계획시스템과 함께 공존하며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반대로 미얀마,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과 같은 아시아에 사회주의 개발도상국들의 체제전환 과정은 동유럽 국가들의 그것과 다르다. 이러한 차이점은 광의의 관점에서 구조와 역사적 상황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명령에 의해 작동하는 국가 부문 중 몇 개의 부분은 덜 견고하여 초기 단계에 중앙집권적 계획시스템 내에서 개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베트남의 경우, 非국가부문이 중앙계획기간에도 GDP에 의미 있는 요소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체제전환이라는 지향점을 나아가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 초기단계에서 변화의 대부분이 국가 장치들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중심이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 후반기에 많은 변화들은 사적 부문을 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형태는 1970년대 라오스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시장지향적인 개혁과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것 사이의 균형은 고르지 않으며 몇 개의 현상들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베트남은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추진한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는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그 상황에서 경제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좀 더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확립하는 데 필연적인 요소가 아니다. 중앙에 집중된 군에서 나온 정치적 파워에 의해서 경제정책을 추진한 미얀마의 예에서 볼 수 있다. 결국 국가마다 가지고 있는 구조와 역사에 의해 변화의 방식과 요소와 순서가 달라지지만 국가별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헝가리, 폴란드, 구소련과 같은 동유럽 국가들은 강한 정치적 변화 하에서 큰 경제적 변화를 경험하였고, 몽골, 베트남, 중국 그리고 라오스의 경우는 약한 정치적 변화 속에서 강력한 경제적 변화를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미얀마, 캄보디아의 경우는 약한 정치적 변화가 약한 경제적 변화를 경험하였는데, 이 부류에 북한이 포함된다.

김정은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북한의 변화는 적은 정치적 변화 하에서 약한 경제적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지 모른다. 경제 분야에서 선대의 할아버지(김일성)과 아버지(김정일)이 쌓은 업적에 준하는 공을 세우고자 할 것이며 그것이 미얀마와 같이 적은 정치적 변화 속에서 이루기를 원할 것이다. 변화에 초기조건이 열악할수록 변화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부족한 조건에서 오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체제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체제의 내구력과 시간의 함수에서 계산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러한 때 우리는 남북한의 ‘특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특수 관계’와 북한이 생각하는 ‘특수 관계’는 차이가 있다.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양측의 관련한 사설이나 연구 및 현상들은 서로 상이한 의미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북한이 말하는 ‘특수 관계’는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가로 나뉜 특수한 관계로 통일에 대한 접근 또한 이 구조 속에서 지속하도록 끊임없이 개념 정의와 범위를 수정해오고 있다. 반면 우리는 분단 당시의 기억에 남아 있는 ‘특수 관계’에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통일은 비용에 비해 그 실익이 엄청나게 크거나 비용이 미비할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 접근법이 이데올로기적인 해석으로 나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은 남북 관계,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된 국가로서의 입지를 국제 사회에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상대와의 관계를 현실에 맞게 개념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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